耶穌.天主兩敎辯論-崔炳憲

10론 04 교황을 변론함

솔석자 2016. 7. 29. 23:35


제 사장 교황을 변론함


  성경에 가라사대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은 나의 택한 바 중한 그릇이라 시온에 두어 터를 삼으니 보배롭고 견고하여 무릇 믿는 자가 급한 데 이르지 아니하리라"(사 28:16) 하고,

  베드로 가로되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볼지어다 내가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을 시온에 두노니 곧 택한 보배로운 돌이라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라"(벧전 2:6) 하고,

  바울이 가로되 "대개 지아비가 지어미의 머리가 됨이 또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됨과 같으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엡 5:23)  하고,

  또 가로되 "이 닦아 둔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하고,

  또 가로되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바니 그리스도 예수가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엡 2:20) 하고,

  예수 가라사대 "그러나 너희는 선생이라 칭하는 것을 받지 말라 대개 너희의 선생은 하나 뿐이니 곧 그리스도시오 너희는 다 형제라"(마 23:8) 하시고,

  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고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마 18:24) 하신지라.


  예수교회에서는 삼가 성경의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인 줄을 믿으며, 예수씨로 교회의 벼리(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가  되신 줄 아나니, 지금 교회의 머리 된 감독과 장로들도 또한 우리 주의 훈계를 좇아 스스로 겸손하기를 어린아이 같이 하며, 남의 웃 사람이 되고자 아니하여 모든 교우 보기를 다 형제같이 하느니라.


  천주교회에서는 말하기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생하는 아들인 줄 앎으로 예수께서 그 대답이 선하다 하사 복으로써 허락하시고 가라사대 '너는 베드로니 천국의 열쇠와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를 주셨다'"(마 16: 15~19) 하는지라.

  천주교회에서 망녕되이 이르되 "이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권세 주시기를 특별히 여러 문도(門徒)보다 더하사 홀로 베드로로 성회의 기초를 삼으시고 권세와 지혜가 구비함으로 베드로는 로마 교회의 으뜸 주교가 되어 거룩히 서로 전하니 역대 이래로 그 권세 위(位)를 이어 서는 자는 교황이 되고 그 권세를 좇아 교를 전하면 감히 배각(排却: 거절하여 물리침)할 이가 없다 하나니, 교황의 권세를 굳게 지키는 것은 베드로의 유업이라" 하는지라.

  처음에는 주교를 홀연히 세웠다가 홀연히 폐하기도 하더니, 강생(降生) 一千二百十六년에 이르러 비로소 작정하여 교황을 설립하고 주 예수를 대신하여 교회의 사무를 판리(辦理: 일을 판별하여 처리함)케 하였으니, 천주교회에서 이렇게 오해하여 교황을 설립함은 진리의 위반됨이라. 성경에 밝히 말씀하되 "예수께서는 집 모퉁이의 보배로운 돌이시오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하였거늘 이렇게 교황을 설립함은 교회에 머리가 많게 함이로다.


  예수교회에서는 해석하기를 예수께서 그 때에 베드로와 문답하실 적에 여러 문도가 함께 있는 고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무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대, 베드로는 여러 문도 중에 성품이 조급하고 영민한 고로 먼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이에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 하니, 예수께서 그 대답의 잘함을 기뻐하사 가라사대 "네가 진실로 복이 있도다 육신이 이것을 네게 알게 한 것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심이라 내가 예전에 네 이름을 베드로라 하였더니 이제 과연 굳게 믿고 의심치 아니하니 이름과 실상이 서로 합하여 진실로 부끄럽지 않도다 네가 이미 내가 생명의 근본 됨을 알았으니 나도 또한 네가 좋은 마음으로 내 도를 믿어 크게 쓰일 줄 아노라 내가 이 교회를 생명 근본에 세우리니 음부가 능히 이기지 못할 것이오 너로 하여금 내 도를 유대와 이방에 먼저 전하여 옛적 선지자로 더불어 성회에 처음 기초가 될 것이오 모든 사도는 뒤를 따라 행하며 회중 사람이 다 신령한 돌이 되어 신령한 집을 세우되 네가 먼저 놓은 돌이 될 것이오 여러 돌을 그 위에 더 놓으되 나는 집 모퉁이의 요긴한 보배 돌이 되어  서로 연합하여 이룰지라(엡 2:2) 내가 천국의 열쇠로 네게 주어 천당 문을 열고 닫게 하여 모든 사람으로 들어오게 하되 네가 전하는 도를 믿지 않는 자는 네가 구원을 얻지 못할 사람이라 하여 이것은 네가 땅에서 매인 고로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오 네가 전하는 도를 믿는 자는 네가 구원을 얻을 사람이라 하리니 이것은 네가 땅에서 푼 것인 고로 하늘에서도 또한 풀리리라."

  이로 좇아 보건대, 온전히 베드로를 가리켜 말씀한 것 같으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문도 모인 곳에 홀연히 이르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들은 평안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 같이 하리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시매 각 사람에게 기운을 불러 가라사대 "너희는 성신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오 뉘 죄든지 정하면 정하여 지리라"(요 20:21~23) 하셨으니,

  이로 좇아 보건대. 예수께서 후세 사람들이 이전에 베드로에게 한 말씀을 오해할까 염려하사 이 말씀을 거듭하셨으니, 이 권세를 홀로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주시지 않은 것을 밝히심이오, 여러 사도와 후세 제자들이 다 이 권세가 있음을 족히 증거할지니 다시 무엇을 변론하리오?

  만일 이렇게 해석함이 성경에 합하지 아니하거든 청컨대 베드로가 스스로 한 말씀을 볼지어다.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내가 집 모퉁이 요긴한 돌을 시온에 두노니 곧 택한 보배로운 돌이라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라"(벧전 2:6) 하였고,

  바울이 가로되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바니 그리스도 예수가 친히 집 모퉁이의 돌이 되셨다"(엡 2:20) 하고, 또 가로되 "이 닦아 둔 터 외에는 사람이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두지 못하리니 이 닦은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31) 하신지라.

  대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시오, 반석이시오, 교회의 머리가 되사 만유 위에 탁월히 높으시니 뉘가 능히 짝하리오.


  과연 천주교의 말씀 같을진대 예수께서 교회 설립하는 권세를 홀로 베드로에게 주사 성회의 터를 삼아 지혜와 권세가 구비하여 조금도 잘못함이 없고 음부의 권세가 능히 이기지 못하겠거늘,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 어찌하여 능력이 없어 세번이나 예수를 모른다 하였느뇨?

  사도 바울이 또한 가로되 "베드로도 가히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먼저 면책(面責)하였노라"(갈 2:11) 하고,

  또 가로되 "예수께서 전도하는 권세 주시기를 모든 사도에게 대소등분이 없게 하셨다"(갈 2:7~9) 한지라.

  이 말씀을 좇아 변론하건대 베드로가 홀로 성회의 터가 되지 못하며 홀로 권세 잡은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하며 또 베드로 스스로 한 말씀과 바울의 폄론(貶論)함을 보건대 명백하고 소연(昭然: 일이나 이치에 밝다)하여 일호도 의심이 없는지라.

  광서(光緖: 중국 청나라 광서제 때의 연호) 9년에 내가 거듭 중원에 놀새, 선중(船中)에서 법국(法國: 프랑스) 신부 세 사람을 만나니 그 중에 한 사람이 능히 영어를 통하거늘 내가 묻되 "귀 교회에서 이르되 예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선히 여기사 복을 허락하시고 또 가라사대 너는 베드로니 천국의 열쇠와 매고 푸는 권세를 주셨다 하니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뇨?" 

  저가 대답하되 "본 교회에서 이 말씀을 믿어 베드로로 근본과 머리를 삼노라"

  내가 또 이르되 "우리 예수교회에서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하거늘 귀 교에서는 베드로로 머리를 삼으니 그 그르지 아니함을 어찌 아느뇨?'"

  대답하되 "우리 성교에서 작정하는 권세가 있으니 이것은 천주께서 우리 성교에 큰 지혜를 주사 하여금 성경의 오묘한 뜻을 해석케 하시고 또한 큰 권세를 주사 그 시비와 가부를 작정케 하셨느니라."

  내가 또 묻되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귀교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셨느뇨?"

  저가 대답하되 "곧 이 말씀이니라."

  내가 말하되 "귀교에서 어찌 이 말씀 중에 이 뜻이 정녕히 있는 줄 아느뇨?"

  저가 대답하되 "본 교회에서 해석한 바요 작정한 바인 고로 안다" 하는지라.

  "슬프다 이 말이여! 귀교회의 믿는 것은 곧 귀교에서 스스로 해석하고 스스로 작정함이니 이것은 스스로 믿고 스스로 밝힘이라. 이러한 이치가 있느뇨?"

  저가 능히 대답하지 못하고 물러가니 대개 교화황을 자기 뜻대로 세우는 것은 성경 본의에 위반 됨이 또한 분명한지라.


  천주교 신부들이 항상 이르되 "천주의 주신 권능을 얻었다" 하여 스스로 교만하고 높은 체하나 교중 사람 중에 박학다문(博學多聞)한 자는 능히 성경의 오묘한 뜻을 아는 고로 시비를 변정(辨正: 변명하고 바로 잡음)하나니, 이것은 교인끼리 서로 불합함이라.

  참 학문이 있는 자는 스스로 교만함이 없나니 스스로 교만한 자는 참 도의 학문이 아니라. 그 교만함을 어찌 족히 믿으리오?

  어느 곳이든지 박학한 선비가 없지 아니하니 시험하여 양교의 저술한 글을 상고하면 각각 그 교의 장단과 시비를 가히 알지니라.


  예수교에서는 이르되 성경의 오묘한 이치를 반드시 부지런히 공부하고 길이 연구하며 성신께서 묵시하시기를 간구하여야 비로소 참 뜻을 얻거늘,

  천주교에서는 성경 읽기를 금지하되 주교의 허락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공부하는 자는 사죄함을 얻지 못한다 하며, 그 중 교인이 입교할 때에 먼저 맹세하기를 교회에 작정한 법대로 믿겠다 하고 성경을 연구하기는생각지 아니하니 혹 우연히 성경을 얻어 본 자 양심의 깨달음이 있으나 그 교의 작정한 법을 감히 거역지 못하나니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는 곧 이단을 믿는다 하여 신부의 저주함을 당하고 영영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여 교인 속박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누구가 성심으로 성경을 궁구하리오?


  예수교를 믿는 자는 이르되 "성경이 능히 사람에게 지혜를 준다 하여 반드시 사람마다 공부하고 형제끼리 연마하여 진리를 깨달으며 성심으로 기도하여 성령의 도와주심을 입나니, 마음에 감동함이 있고 말과 행실의 나타남이 있으며, 서책(書冊)을 저술하여 모든 사람으로 함께 유익함을 얻는지라.


  천주교에서 말하되 "성교인은 많고 예수교인은 적으니 이것으로 양교의 선불선(善不善)을 증거한다" 하나니 참 어리석은 말이라.

  세상 사람이 매양 불선(不善)한 것을 좋아하나니 이제 사람의 수가 많음으로 선불선을 작정할 수 없고 또한 양교인 중에 말과 행실이 성경 이치에 합한 자를 상고하건대, 실상은 예수교인이 많으니 이것은 양교에 크게 같지 아니한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