圣山眀镜
성산명경
<현대어 번역본>
崔炳憲 / 著
朴榮淳 / 譯
셩 산 명 경
미국이학박사 죠원시 교열
詩曰
道成天地敷神功 도로 이룬 천지에 신의 공을 폈으니
萬物生生化囿中 만물이 화유 가운데 생생하였더라
人獨其間靈性在 사람이 홀로 그 가운데 신령한 성품이 있으니
分明禍福五洲同 재앙과 복이 분명히 세상 모두가 같구나
이야기의 시작이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니 세계가 생겼고, 그 가운데 육대주가 있는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요, 또 오대양이 있으니 곧 태평양과 대서양과 인도양과 북극과 남극이며,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서 지구 사분의 일은 육지가 되고 사분의 삼은 물이 되었으며, 지구의 둘레는 칠만 오천 육백리 가량이고 직선으로 뚫는다면 이만 사천리 가량인데, 그 중에 사는 종족이 세 가지가 있으니 백인종과 황인종과 흑인종이요, 백인종 중에 아일랜드와 셈족과 함족이 있고, 황인종 중에 아메리카인과 몽골리아 인종이 있고, 흑인종 중에 멜라네시아(피지 공화국,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군도, 바누아투 공화국 등)인과 인도 인종이 있으니, 황인종은 아시아와 유럽 북편에 많이 살고, 백인종은 유럽과 북미주 북편에 많이 있고, 흑인종은 아프리카 땅과 태평양 섬 중에 많이 산다.
각각 자기 지방에서 성장하여 언어가 서로 같지 아니하며 풍속이 또한 서로 다른데, 국경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니 국제적인 상업행위를 하기 이전에는 드넓은 바다 밖에 어떠한 나라가 있는지 서로가 알지도 못하였었다.
한편, 아시아의 동방에 이름 난 산이 하나 있는데, 산수가 화려하고 토지가 기름져서 초목이 무성한데, 그 산 속에 깊은 동굴이 있고 그 가운데 절묘한 층대(層臺)가 있으니 경치가 아주 뛰어나 옛부터 도학(道學)에 배부르고 놀기를 좋아하는 한량들이 자연을 즐겨하여 자주 그 산중에 왕래하므로 산 이름을 성산(聖山)이라 하고 대(臺) 이름을 영대(靈臺)라 부르니 겹겹이 솟은 봉오리는 옥석(玉石)을 갈아 세운 듯, 잔잔한 시냇물은 폭포를 이루는데, 꽃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과 국화가 향기롭고 단풍이 붉은 가을철(三春花柳時 九秋楓菊節)에 시인과 화가들이 걸음을 멈추니,
옛 시에 읊은 대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별 난 세상 있어 인간 사는 데 아니네.
월만공산수만담(月滿空山水滿潭)이라. 빈 산에 달 차고 연못에 물 가득하니
바로 여기가 별천지인 듯 싶다.
강남 사는 진도라 하는 선비가 이 성산의 경치를 흠모(欽慕)하여 영대를 찾아가는데, 이 사람은 본래 유가(儒家)의 유명한 제자로서 공자와 맹자를 숭상하며 문장이 이백과 두보(李杜)를 압도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모르는 것이 없으며 필법 또한 뛰어나서 왕희지(王羲之)의 필체(筆體)와 유공권(柳公權)의 서법(書法)을 자주 논단하니 세상 사람이 진도의 문장 명필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때에 진도가 성산을 찾아가 영대로 올라가니 두견화는 만발하고 꾀꼬리는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데 가는 데마다 버들 빛은 청류장(靑柳欌)을 들여놓은 듯, 떨어져 날리는 꽃이파리들은 비단으로 수놓은 병풍 같으니, 삼십육궁(三十六宮)이 완전히 봄빛이구나.
동자(童子)더러 일러 맑디맑은 시냇물로 차를 끓이라 하고 홀로 층대 위를 거닐며 숱하게 많은 좋은 경치를 일일이 구경하고 있는데, 홀연히 동편 언덕으로 석장 끄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기에, 유심히 바라보니 파리한 얼굴에 누더기 가사(滄顔白衲)를 걸친 스님 한 분이 올라온다.
청한한 모양과 온유한 거동이 물어 볼 것도 없이 불교의 고승(法界道僧)이다.
진도를 보고 기쁘게 합장하며 인사하니 진도 또한 기꺼이 맞이하여 예를 갖추어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진도가 묻기를,
「대사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시며, 법명은 어떠하신지요?」
도승이 대답하되,
「소승의 이름은 원각이라 하며, 태백산 난야(蘭若)라 하는 암자에 있습니다. 소문에 듣자니 성산의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하기에 한 번 보기를 원하여 왔는데, 선생께서는 누구십니까?」
진도가 대답하여,
「저는 강남에 사는 진도라 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서부터 산수를 즐겨하여 성산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우연히 대사를 이곳에서 해후 상봉하니 나그네 같은 세상 천지에 뜬 구름 같은(逆旅) 인생으로서 이렇게 좋은 인연이 또 있겠습니까?
옛적에 진(晋)나라의 도연명은 혜련(혜원?)스님을 상종하였고, 송(宋)나라의 문장 소동파(蘇東坡)는 승천사에 교유(交遊)하더니, 이 유명한 성지에서 우리의 교제도 어찌 옛 사람들만 못하겠습니까?」
원각이 감사하며 말하길,
「오늘 뜻하지 않게 선생을 만나게 되었으니 비록 종교는 다르나 마음을 터놓기를 허락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도연명은 산승(山僧)을 이별할 때 호계(虎溪)를 지났으며, 소(蘇)문장은 십팔나한(十八羅漢)의 화상을 집에다 모셨다 하니 선생도 능히 그러한 운치와 정성이 있겠습니다 그려.」
피차에 큰 소리로 웃고 동자에게 다과상을 내어오라 하는데, 홀연히 보매 남쪽 방향에서 신비한 구름이 일면서 동쪽으로 상서로운 기운이 뻗치는가 싶더니 동안학발(童顔鶴髮)로 갈건을 쓰고 도복을 입은 청수한 품이 마치 파리한 학(鶴)과 같은 이가 올라온다.
오면서 혼잣소리로 ‘전에 성산이 좋다는 소릴 들었는데 오늘 와서 보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로구나’ 하고 대 위에 올라와 두 사람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하며 통성명을 하거늘 진도 대답하여 말하길,
「나는 강남 사람 진도라고 합니다. 선생의 존함은 어떠하신지요?」
도사가 대답하여 왈,
「나는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며, 세상 천지에 집없는 손(無家客)이요, 자연자재(江湖)하는 유발승(有髮僧)이라. 사람들이 날더러 백운(白雲)이라 부르지요.」
진도가 묻되,
「정처없이 다니셨다 하시니 많은 곳을 유람하셨겠습니다그려. 이 성산보다 더 나은 데가 얼마나 됩니까?」
도사 대답하는 말이,
「내가 소싯적에 공동산(崆峒山)에 올라가 광성자(廣成子)의 유적을 구경하고 상산(常山)으로 올라가 동원공의 불로초를 먹었으며, 동정호(洞庭湖)를 지나가다가 려동빈(呂東賓)이 놀던 곳을 보았으며, 서쪽으로 요지(瑤池)를 찾아가서 왕모를 만나보려고 하였더니 청조(靑鳥)새가 전갈하되 우리 낭랑(娘娘)이 동방삭(東方朔)에게 삼천년 반도(蟠桃:복숭아)를 세 번이나 잃고 분노하여 지금은 영산도장(靈山道場)으로 종적을 탐지하러 갔다 하기로 보지 못하고 왔지만, 내가 보기에는 청정하고 번화한 곳이 성산보다 더 좋은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때에 원각이 또한 쌍수로 합장하여 예의를 갖춘 후에 세 사람의 대화가 물흐르듯 하는데, 말을 마치지 못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웬 젊은이가 죽장에 짚세기를 신고 유유히 올라오는데, 그 기상이 늠름하고 청풍이 불불하다.
각각 일어나서 예의를 갖추어 자리에 앉은 후 통성명을 하는데, 젊은이가 공손히 말하길,
「두 분 선생과 대사의 존함(尊銜)은 들었습니다. 저는 근본(根本)이 고려(高麗) 사람으로 성은 을지(乙支)요 이름은 학(學)이라고 합니다.
학문에 뜻을 두어 서책(書冊)을 지고 스승을 찾아가는 도중에 호숫가를 지날 때였습니다. 어떠한 새가 오리같이 물위에 떠다니면서 입은 항상 하늘을 향하고는 고기들이 공중에 뛰어오르다가 우연히 입으로 들어오면 그것으로만 주린 창자를 요기하고 터럭만큼도 사사로운 욕심이 없이 천명을 순수(順守)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새를 보고 감동하여 혼자 ‘만물 중에 지극히 귀한 것이 사람이라지만 사욕을 이기지 못하여 제 욕심만 챙기고(肥己之事)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害物之心)은 생각지 아니하는 사람은 저 새만도 못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새의 이름을 어부더러 물은즉, '신천옹(信天翁)'이라 하기로 저도 성명을 고쳐 신천옹이라 하였으나 지금도 항상 사욕(私慾)에 빠져 죄를 지을 때가 많습니다.」
진도가 흔연히 웃고 가로되,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니 공부를 많이 한 선비인 줄은 알겠소만 하찮은 새를 보고 이름을 고친 것은 이상할 것 없겠지마는(容或無怪), 성까지 바꾼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소. 조상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 바에야 어찌 물려받은 성을 함부로 바꿀 수 있겠소. 망명하는 죄인 외에는 실로 해선 안 될 일인 듯 하오.」
신천옹이 답 왈,
「선생의 말씀이 오히려 이상스럽습니다. 성이란 것은 근본 조상 때부터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것이 아니고 사람의 그 때 형편과 경우를 좇아서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箕子)는 본래 자성이었으나 기(箕)땅에 봉(封)함으로 기(箕)씨가 되었고, 그 후 자손들은 혹 선우(鮮于)씨와 한씨도 되었으며, 노(魯)나라 전금(展禽)은 류하읍에 봉함으로 류하혜(柳下惠)라 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말씀과 같다면, 진나라의 강자아(姜子牙)를 어찌 려상(呂尙)이라고 했으며 레위를 어찌 마태(馬太)라고 하겠습니까?」
진도가 젊은 사람에게 능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는 자존심이 상하여 저녁 해가 서산에 걸렸음을 핑계삼아 동자를 분부하여 행장을 수습케 하는 것을 보고, 신천옹이 말하기를,
「옛날 향산(香山)에는 구로회(九老會)가 있었고, 죽림(竹林)에는 칠현(七賢)이 상종하고 죽계(竹溪)에는 육일(六逸)이 놀았으며, 상산(商山)에는 사호(四皓)가 있었더니 우리도 우연히 성산에서 개구리밥이 흘러가다 또 다른 개구리밥을 만나듯(萍水相逢), 우연히 만나서 마음을 터놓고 서로 어울리게 되었으니(肝膽相照) 이른바 백아(伯牙)의 거문고가 종자기(種子期)를 만나고, 영문(郢門)의 백설곡(白雪曲)이 지음(知音)을 만난 것 같습니다. 풍류의 아담함이 어찌 고인(古人)만 못하겠습니까?
오늘은 해가 저물어 가슴속 회포를 토론치 못하고 아쉽게 작별하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내일 다시 여기에 모여 경치도 구경하고 귀한 말씀으로 토론하여 저의 미련한(愚昧) 소견을 밝히 깨우쳐 주시지 않으시겠는지요?」
백운과 원각은 흔연히 응낙했는데, 진도는 재삼 주저하다가 만남을 허락하고 각각 촌락을 찾아가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으니, 궁금하구나.
이 네 사람이 가슴 속 회포를 어떻게 토론하였을까?
다음 회(下回)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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