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명경(聖山眀鏡)

성산명경02

솔석자 2018. 4. 1. 06:45

 

詩曰

萍場車笠不期來  마름마당의 걸립이 기약 없이 왔으니

管韻牙絃共一盃  관중의 운과 백아의 줄이 한잔 술을 같이 하였더라

四友論襟猶未了  네 벗이 논금하기를 오히려 마치지 못하여

夕陽山色倒靈臺  석양의 산빛이 영대에 엎드려지더라

 

  그 이튿날 아침에 신천옹이 일찍 일어나 생각하되,

  ‘어저께 성산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자품도 준수하고 총명도 절등하나 하는 모양을 보니 아무래도 하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아무쪼록 권면하여 구세주를 믿게 하리라.’

  이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조반을 마친 후에 즉시 영대를 찾아가니 아직 한 사람도 온 이가 없다.

  좌우를 돌아보니 하룻밤 사이 청산에 봄빛이 무르익어 동원도리(東園桃李) 복사꽃은 찬이슬을 머금었고, 한식동풍(寒食東風) 버들 빛은 석긴내(?)를 띄어(柳色靑) 시인묵객(詩人墨客)의 소회(素懷)를 돋우는구나.

  시편(詩篇)을 외우노라니 백운과 원각이 나란히 들어와서 신천옹을 보고 간밤의 안부를 물으니 신천옹이 답례(答禮)하여 말하길,

  두 분 선생은 기약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약속을 지켜 찾아주셨으니 믿음직한 군자시며 마음을 허락하는 어른들이십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도의 아니 옴을 한탄하더니, 조금 있다가 진도가 동자에게 차관(茶罐)을 이끌려 품자(品字)의 안경과 갈짓자 걸음으로 느릿느릿 올라오니 진중한 거동과 엄숙한 모양이 참으로 성현문하(聖賢門下)에 도고학자(道高學者).

  각각 일어나 예를 갖추어 인사한 후에 신천옹이,

  선생께서는 어찌 그리 더디 오셨습니까?

 

  진도가 대답하기를,

  젊은이는 옛 글을 보지 못하였소?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라 하였으니, 늦게 일어남은 춘곤(春困)을 인함이요, 공자 가라사대 '족용중(足容重)'이라 하였으니 빨리 오지 못함은 걸음걸이가 느리기 때문이라오. 그대 같은 젊은이는 힘만 믿고 가볍게 달리겠지만 노부는 일찍이 성문(成文)에 공부하여 훈계를 지키는 것과 아울러 기력도 차차 쇠패해짐으로 자연히 늦어졌소.

 

  신천옹이 가로되,

  선생의 말씀은 너무 이상합니다.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는 당현종(唐玄宗)이 양귀비에게 빠져 있음을 백낙천(白樂天)이 조소(嘲笑)한 말씀이요, 재아(宰我)라 하는 제자가 낮에 잠을 자거늘 공자가 꾸짖어 가라사대 '썩은 나무에는 가히 새길 수 없고 분토(糞土)의 담()은 가히 더럽게 할 수 없다' 하였으며, 일찍 일어나고 밤들게 자라 함은 유가서(儒家書)의 말씀입니다. 선생이 외모(外貌)로는 성현(聖賢)을 존숭(尊崇)하나 실상은 성현의 훈계를 범(犯)하셨습니다.

 

  진도 못마땅하여 말하길,

  젊은 사람이 어른을 논박(論駁)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오.

 

  신천옹이 또 가로되,

  공부자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으시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아니하신다' 하셨으니, 선생께서는 유교에 높으신 제자이시니, 두어 마디 말씀으로 소제(小弟)를 가르쳐 의심(疑心)을 파혹(破惑)케 하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이에 진도 왈,

  좋소!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가위(可謂) 유교(儒敎)를 강론(講論)할 만 하겠소.

 

  신천옹이 묻되,

  광활(廣闊)한 천지간(天地間)에 일월(日月)이 명랑(明朗)하고 만물(萬物)이 번성(蕃盛)하니 당초(當初)에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도 대답하기를,

  주역(周易)에 가로되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을 비롯하며, 지재(至哉)라 곤원(坤元)이여 만물을 생()하다' 하였으니, 건도(乾道)는 양()이 되고 곤도(坤道)는 음()이 되어 음양(陰陽)의 이기(理氣)로 만물을 생성(生成)한 것이라 할 수 있소.

  주부자(朱夫子)가 가라사대 '나의 몸은 천지의 기운(氣運)이요 나의 성품(性稟)은 천지의 이치(理致)라' 하고, 또 가로되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시니 사람이 그 가운데 태어나서 다 천지의 자식이 된다' 하시고,

  주렴계(周濂溪)가 가로되,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 되어 조화(造化)의 추기(樞機)를 이루었다' 하였으니, 태극의 이치로 량의(兩儀)와 사상(四象)이 생겼고, 오행(五行)의 기운으로 만물이 생긴 것이오.

 

  신천옹이 가로되,

  선생의 말씀이 일리(一理)가 있는 것 같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徒知其日 未知其二) 말씀입니다.

  주회암(朱晦庵)의 격치서(格致)에 가로되, '태극(太極)은 실상 이치(理致)뿐이라. 이치가 합벽(闔闢)하는 문틀과 지도리가 되어야 남녀(男女)와 만물이 생성(生成)하는 근본(根本)이 된다' 하고 또 가로되, '이치란 것은 정의(情意)도 없고 계교(計巧)도 없고 조작(造作)함도 없다' 하였으니, 태극 이치가 그렇게 정의와 조작함이 없다면 지혜(智慧)와 신령(神靈)도 없는 것이니, 어떻게 허령지각(虛靈知覺)이 있는 사람과 만물을 만들겠으며, 또한 건곤이기(乾坤理氣)와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만물이 생겨났다 하셨는데, 건곤음양(乾坤陰陽)은 당초에 어디서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진도가 반문하기를,

  그렇다면 그대는 천지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다 생각하오?

 

  신천옹이 대답하여 말하길,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의 조화로 천지만물이 창조된 것입니다. 음양오행은 천지일월(天地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가르쳐 말씀하는 것이지만, 천지오행(天地五行)도 하나님께서 만드심을 받은 물건으로 아무 권능(權能)이 없는데 어찌 만물을 생기게 하겠습니까?

  음양을 분석하여 설명을 하면, 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라 하며, ()는 양()이요 달()은 음()이라 하며,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이라 하며, ()과 여름()은 양()이요 가을()과 겨울()은 음()이라 하며, ()은 양()이요 밤()은 음()이라 하며, () 남쪽은 양()이요 산 북쪽은 음()이라 하며, 사람의 사는 것은 양()이요 죽는 것은 음()이라 하고, 짐승의 수놈()은 양()이요 암놈()은 음()이라 하니, 이로 좇아 보건대 음양이란 것은 물건이 있은 후에 이름을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천지일월과 낮과 밤, 추위와 더위 그리고 남녀 암수가 없다면 음양이기(陰陽二氣)라 하는 것을 어느 곳에다 붙여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물건이 생긴 후에 있는 음양이 물건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요, 또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五行)이란 것은 물질에 불과하여 사람이 날마다 쓰고 먹고 마시는 물건일 뿐입니다. 금석(金石)과 토목(土木)으로 집을 짓고, 수화(水火)로는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삼으니, 오행은 단지 사람에게 요긴한 물질일 뿐입니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한 곳에 두고 보아도 그것들이 그 형질을 스스로 요동할 수도 없고 쓸만한 그릇을 이루지도 못하여, 다만 사람의 손을 의지하여서만 내왕(來往)도 하고 그릇도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러한 물질이 어떻게 만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음양오행(陰陽五行)이 능히 사람을 나게 하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물체(物體)요, 다른 하나는 영혼(靈魂)입니다.

  물체(物體)란 것은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금목수화토 (金木水火土)같은 것이니, 아무 지각도 없고 영위도 없어 사람이 일용(日用)하는 물건(物件)이 되고,

  영혼(靈魂)이란 것은 형상이 없는 중에 허령감각(虛靈感覺)과 량지량능(良知良能)이 있어서 능히 물건을 제조(製造)도 하고 능(能)히 천지일월(天地日月)을 추측(推測)하여 헤아릴 수도 있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를 능히 부리며 배양(培養)할 수도 있는 것이니, 무지(無知)하고 무능(無能)한 태극(太極)이 어찌 능히 세계를 창조(創造)하였겠습니까?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셨다고 확신(確信)합니다.

 

진도 왈, 시전(詩傳: 詩經의 註解書))에 가로되 '하늘이 여러 백성(百姓)을 내셨다' 하고, 중용(中庸)에 가로되 '하늘이 명하신 것을 이르되 성품(性稟)이라'하고, 공자(孔子) 가라사대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리요. 사시(四時)가 행하며 만물이 생육(生育)한다' 하였으니, 하늘이 만물을 내신 것이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신천옹이 또 가로되, 정명도(程明道)가 말씀하되 '그 형체(形體)로써 하늘이라 하고 그 주재(主宰)로써 상제(上帝)라' 하였으니, 상제와 하늘이란 것이 엄연히 다른데, 유서(儒書)에는 분간이 없이 일체로 말씀하여 '획죄우천(獲罪于天)'이라고 했습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천생증민(天生蒸民:하늘이 인간을 내신다)'이라 하고, 유황상제강충우민(維皇上帝降衷于民:상제가 백성 가운데로 오셨다)'이라. '황의상제임하유혁(皇矣上帝臨下有赫:위대하신 상제가 굽어 살피심이 밝아)'이라. '상제임여(上帝臨汝:상제가 너와 함께 하신다)시니 무이이심(無貳爾心:두 마음을 품지 마라)' 하였으니, 심히 홀륜(囫圇)하고 몽롱(矇矓)합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상제(上帝:하나님)의 좌처(坐處)가 되고 땅은 상제의 발판이라' 하였으니, 천지(天地)는 집과 같고 상제께서는 집의 주인과 같으십니다. 집이란 것은 단지 주인이 지은 것에 불과하기에 아무 지각(知覺)도 없는 물건이요, 집안에 모든 것은 다 그 집주인이 처결(處決)하는 것인데도, 하늘이 만물을 낸다 함은 하나님의 집이 만든다 함과 같으니 어찌 그릇됨이 아니겠습니까?

  가령 황제폐하(皇帝陛下)께서 조칙(詔勅)을 내리셨는데 백성들이 말하기를 '궁궐(宮闕)이 조칙을 내린다' 하고 궁궐을 숭배(崇拜)하여 받들자 하면 이치에 합당(合當)하겠습니까?

  공자 가라사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앙화로써 갚는다(積善之家必油餘慶 積惡之家必有餘禍)'고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곧 하나님이신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늘천()자와 상제(上帝)란 글자가 어찌 같은 뜻이라 하겠습니까?

  그런 고(故)로 량인(梁寅)의 역주(易註)에 가로되 '()라 하심은 신()의 이름이요 신은 상제(上帝)의 령()이니 만물을 주재(主宰)하신다' 하고,   

  자하(子夏) 역전(易傳)에 가로되 '제자(帝者)는 조화(造化)의 주재(主宰)요 천지의 조종이라' 하고,

  또한 성경에 가라사대 '태초시(太初時)에 상제(上帝)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다'고 했습니다.

 

  진도가 능히 반대(反對)치 못하는지라.

 

  신천옹이 또 가로되,

  「'하늘이 명하신 것을 일러 성품이라 하고 성품을 거느리는 것을 도()라' 하였으니 사람의 성품은 어떠한 것입니까?

 

  진도 왈,

  공자 가라사대, '성품은 서로 가까우나 익히는 것이 서로 멀다' 하시고, 맹자 가라사대, '사람의 성품의 선한 것이 물이 아래로 가는 것 같아 사람은 선하지 않은 이가 없고, 물은 내려가지 않음이 없다' 하셨으니, 사람의 성품이 근본 선한 것이요,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물욕(物慾)의 교폐(交弊)함이라 생각하오.

 

  신천옹이 가로되, 공자 말씀에 '성상근야(性相近也)나 습상원야(相遠也)라' 하심이 고자(告子)의 말에 '사람의 성품이 물과 같아 동방으로 인도하면 동으로 흐르고, 서방으로 인도하면 서로 흐른다' 함과 같은 말씀입니다.

  성품의 선악(善惡)이 가르치고 익히는 데 있다 하심이니 실로 의심스럽습니다. ()의 아들 단주와 순()의 아들 상균이 다 불초(不肖)하다 하였으니, 요순(堯舜) 같으신 성인(聖人)으로 그 아들을 반드시 잘 가르치셨을 터이거늘 어찌하여 어질지 못하였으며, 고수(瞽瞍)같이 완악(頑惡)한 사람으로 그 아들을 반드시 잘 가르치지 못하였을 터이어늘 순()임금은 어찌하여 대 성인이 되셨습니까?

  이로 보아 의논하건대, 성품의 선악이 배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맹자 말씀은 사람의 선함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다 하셨는데 더욱 이상합니다. 물의 성품은 항상 아래로 가기 때문에 막는다 할지라도 낮은 곳으로 가게되어 있지만 사람의 성품은 그렇지 못하여 안으로 엄숙(嚴肅)한 부형(父兄)이 계시고, 밖으로 어진 스승이 있을지라도 항상 악한 길로 가는 자가 많사오니 어찌 물의 성품과 같다 하시겠습니까?

 

  진도 왈,

  공자 가라사대,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는 상등지혜(上等智慧),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는 그 버금이 되고, 곤이득지자(困而得之者)는 그 다음이 되고, 배워도 되지 못하는 것은 하우불이(下愚不移)라' 하셨으니, 사람의 기품이 날 때부터 맑고 흐림(淸濁)이 같지 못하여 맑은 자는 성인이 되고 흐린 자는 하우불이가 되나니,

  주부자(朱夫子) 가라사대, '오직 성인은 성품대로 하시는 자라. 넓고 넓은 하늘이시니 터럭끝 만치 더하지 아니하여도 일만가지 선함이 족하다' 하셨으니, ()임금 같은 이는 배우지 아니하여도 성인이 되심이요, 단주와 상균은 하우불이라. 가르쳐도 되지 못한 것이요, 또한 사람을 잘 가르쳐도 악한 길로 가는 것은 물욕교폐(物慾交弊)함이라. 사람의 천생이 어찌 악하다 하겠소. 정명도(程明道)가 가라사대, '성품은 곧 기운이요 기운은 곧 성품이니 사람이 날 때부터 함께 품부(稟賦)한 것이라. 성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물의 파도(波濤)와 같으니, 연못 속 물이 고요하여 거울같은 것은 물의 성품이요, 바람과 사석(沙石)을 만나 파도가 흉용(洶湧)함은 물결의 격동(激動)함이니, 곧 정욕(情慾)의 부림이라' 하셨으니, 사람의 성품이 어찌 물과 같지 않다 하겠소?

 

  신천옹이 대답하여 왈,

  선생의 말씀과 같다고 치면 성인은 배우지 아니하여도 생이지지(生而知之)함으로 고왕금래(古往今來)에 만사를 통달하겠고, 어리석고 둔한 자(愚蠢)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고 도덕을 힘쓴다 해도 하우불이(下愚不移)를 면(免)하지 못하는 것이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을 공부할 필요도 없고 스승이 가르칠 것도 없겠습니다. 어찌 민생(民生)으로 하여금 문명(文明)에 진보(進步)케 할 수 있겠습니까?

  안자(顔子) 가라사대, '()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이뇨' 하시고, 또 맹자 가라사대, '저도 장부(丈夫)요 나도 장부라' 하셨으니, 사람마다 힘써 행(行)하고 아니 행함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차별(差別)을 하셔서 사람의 현불초(賢不肖)를 분별하시겠습니까?

  또 물욕(物慾)이 성정(性情)을 요동(搖動)케 함은 물결이 사석(沙石)을 만남 같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성현(聖賢)의 마음은 물욕에 침노(侵擄)함을 이기고 요동치 아니합니까? 바람과 사석을 만날 때에 요동치 아니하는 물결도 있습니까? 어리석은 자의 성품은 물욕이 침노하고 성인의 성품은 물욕이 침노하지 않습니까? 어떤 물에는 바람이 불고, 어떤 물에는 바람이 오지 않습니까? 성인의 성품과 악인의 품성이 같지 않아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까?

 

  진도가 능히 대답하지 못하여 묻되,

  그러면 그대는 사람의 성품이 어떻다 생각하오? 군자와 소인의 성품이 같으며, 하우불이(下愚不移)도 능히 성인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신천옹이 답 왈,

  사람의 천성(天性)은 본래(本來)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 지우현불초(智愚賢不肖)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같은 것이기 때문에, 머리터럭 한올만큼도 등분(等分)의 우열(優劣)이 없는 것이며, 그 사람의 지혜와 어리석은 것은 기질청탁(氣質淸濁)과 심재유무(心才有無)에 달린 것이니, 어찌 그 성품에 있다 하겠습니까?

  그런즉 사람이 세상에 날 때에 성현과 완악한 자를 하나님이 작정(作定)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생이지지(生而知之)라 함은 더욱 어리석은 말씀입니다. 배우지 않고도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성현군자도 다 공부함으로 되어지는 것이니,

  공부자(孔夫子)도 배우기를 싫어 아니하시며 가르치기를 게을리 아니하사 주역(周易)을 보실 때에 위편(韋編)을 삼절(三絶)하셨으며,

  맹자(孟子)의 모친은 아들을 가르칠 때에 세 번을 이사하였으니,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도학(道學)을 공부(工夫)할 때에 천명(天命)을 좇아 양심(良心)으로 행하는 자는 성현이 될 것이요, 공부할 때에 천성을 버리고 정욕을 좇는 자는 완악한 소인이 되나니, 사람마다 자유(自由)할 권리가 있어 청불청(聽不聽)과 행불행(行不行)에 있는 것입니다.  작지불이(作之不已)면 내성군자(乃成君子)라 하였으니, 누구나 천명을 순종하여 힘써 배우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도가 듣기를 마치고 말하기를,

  그대의 논리가 이치에 맞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꼭 성인이 된다고 볼 수는 없소. 우리가 암만 공부하고 천량지심(天良之心)을 좇는다고 해서 어찌 공부자(孔夫子)와 같은 성인이 된다 하겠소?

 

  신천옹이 대답 왈,

  성인이라 함은 거룩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정을 기억(記憶)하여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키며, 깨끗한 양심이 거룩하고 청결(淸潔)하면 화평(和平)하고 온유(溫柔)하여져서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될 것입니다. 거룩한 심덕(心德)이 공부자(孔夫子)만 못할 것이 없습니다. 총명(聰明)과 지혜는 그 사람의 기질을 따라 우열(優劣)과 현우(賢愚)가 있는 것이니, 누구든지 공자와 같은 기질만 있다면 또한 공자의 사업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도가 못마땅히 여겨 대답하지 아니하니, 신천옹이 또 가로되,

  공부자는 온량(溫良)하시며 공검(恭儉)하시고 겸양(謙讓)함으로 성인이 되셨습니다. 요순(堯舜)을 조술(祖述)하시며 문무(文武)를 법하사 성현을 지금까지 이으시고 미래(未來)의 학문(學問)을 열으사 요순(堯舜)보다 더 어질다 하였사오니, 과연 그에게는 아주 작은 정도의 그릇함이 없겠습니까?

 

  진도 왈, 성인의 덕행(德行)이 능히 하늘과 견줄 만한데, 어찌 잘못하는 일이 있겠소?

 

  신천옹이 공손히 말하길,

  논어(論語)에 가로되, '유비(柳比)라 하는 제자가 공자를 만나보고자 하거늘 공자가 병들었다 하시기에 뵙지 못하고 장명자(將命者: 명을 받든 사람)가 문에 나아가거늘 공자가 비파(琵琶)를 타시며 노래하사 그로 하여금 병들지 아니하심을 보이셨다 하였으니 성인의 도리가 어찌 그러합니까? 설령 유비가 죄가 있더라도 죄인을 만나 책망(責望)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인데 그리 아니하시고, 마음에 그 사람이 보기 싫으면 보기 싫다고 바로 말씀하는 것이 옳거늘, 거짓말로 병들었다 하시고 또한 비파를 연주(演奏)하며 고의(故意)로 병들었다 함을 알게 했으니 그 일이 옳다 할 수 있겠습니까?

 

   진도왈,

  그 사람의 죄를 박절(迫切)히 책망하기 어려운 고로 권도(權道)를 쓰사 가르치심인 것 같소.

 

  신천옹이 가로되,

  성인은 거짓말을 해도 상관이 없다고 하면, 성인의 제자도 역시 거짓말을 해도 괜찮겠습니다. 후세(後世) 사람들 가운데 공자를 존숭(尊崇)하는 자(者)가 나라에 벼슬하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있으면 병이 들지도 않았는데 공연히 병들었다 핑계하여 상소(上疏)한다면, 실로 임금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권도라 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찌 옳다 하겠습니까?

 

  진도가 대답하지 못하니 신천옹이 또 물어 가로되,

  공자 가라사대, '부모가 계실 때에 그 뜻을 보고, 부모가 죽은 후에 그 행실(行實)을 보나니, 삼년을 아비의 도를 고치지 아니하여야 이르되 효자(孝子)라' 하였는데,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어 자기 부모가 도적(盜賊)질을 한다든지 음란(淫亂)을 행하였다면, 삼년은 고사하고 부모가 살았을 때라도 그 행실(行實)을 본(本)받지 아니함이 옳고, 그 부모가 착한 덕행(德行)이 있었다면, 삼년은 고사하고 자기 몸이 죽을 때까지 아비의 도를 지키는 것이 옳을 것인데, 어찌하여 반드시 삼년이라고 하셨으며, 부모의 도가 그를지라도 삼년 동안은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진도 가로되,

  세상에 어찌 그릇된 도가 있겠소. 아비의 도라 하심은 반드시 덕행을 가르쳐 말씀하시는 것이고, 삼년을 고치지 않는 것이 효라 하신 것은 나 역시 의심(疑心)하거니와, 인생이 삼년 후에야 능히 그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니, 효자의 마음이 그 도중에 고칠 것이 있을지라도 참아서 삼년 안에는 고치지 못하고, 만일 고칠 것이 없으면 평생토록 행해야 할 줄 아오.

 

  신천옹이 또 묻되,

  양화(陽貨)라 하는 사람이 공자가 집에 없을 때를 엿보아 돼지고기를 보냈는데, 공자께서도 양화가 집에 없을 때를 틈타 양화의 집에 가서 사례하셨다 하였다니, 저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설령 양화를 소인이라고 친다면 선물한 고기는 떳떳치 못한 것(鶂鶂之肉:거위고기. 꺼림칙한 선물. 변변치 않은 선물을 뜻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집에 돌아와서 그 선물을 도로 보내는 것이 마땅할 텐데 받아먹기는 하였지만 그 사람을 보기는 싫어 집에 없을 때를 엿보아 회사(回謝)하셨다 하니, 이것은 둘 다 똑같이 간사(奸詐)한 사람의 일이라 할 수 있으니, 돌로 치는 자에게 돌로 쳐서 갚는 것이고, 간계(奸計)를 쓰는 자에게 똑같이 간계를 행한 것이 되는 것이니, 덕으로써 악을 갚는 일이 아닙니까? 대 성인의 도리가 어찌 그러시단 말입니까?

 

   진도가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공연스레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물정(物情) 모르는 젊은이(原文에 '요마(妖魔)한 少年)가 옛적 성인을 잘못되었다고 까탈을 잡으니 참으로 못 말릴 사람(斯文亂賊:유교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일세.

 

  신천옹이 흔연(欣然)히 웃어 왈,

 천하는 큰 집과 같고 세상 사람은 다 형제입니다.

  대사형(大師兄)께서는 이유(理由)없이 화만 내실 것이 아니라 제 말씀을 좀 들어보십시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남에 있어서 만물보다 가장 귀(貴)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靈魂)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로 능히 선악과 참 것과 거짓을 가려내며,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이치와 삼교구류(三敎九流)의 문호(文豪)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윤리(倫理)와 종교(宗敎) 도리(道理)의 체용(體用)이 어떠함과 심리철학(心理哲學)의 주객관(主客觀)이 되는 것과 천지만물의 내력(來歷)과 당연(當然)히 할 본분(本分)이 무엇이며 사후(死後)에 영혼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니,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알지 못하고 다만 세상 일만 짐작(斟酌)하는 사람은 문견(聞見)에 고루(固陋)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진도가 듣기를 마치고 안색(顔色)이 변(變)하여 가로되,

  그대의 말을 들은즉 물어보나마나(不問可知) 기독교(基督敎)를 섬기는 사람이요. 나도 서양(西洋) 기독교에 대해서 좀 들어보았는데 허황(虛荒)되고 맹랑(孟浪)하게 상식(常識) 밖의 말이 많은 것 같소.

  자공(子貢)이 가로되, '공자께서 성품과 천도(天道)를 의논하심은 듣지 못하였다' 하고,

  자로가 죽는 것을 묻자온대 공자 가라사대,

   '네가 사는 이치도 모르거든 어찌 죽는 것을 알리요' 하셨으니, 하늘의 도와 죽는 것은 공자도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그 누구가 하늘의 도를 알 것이며 천당과 지옥은 누가 보았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부터 허황한 말이요. 하나님이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아들이 있으며, 예수를 믿는 자는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라 하고 아들도 아버지라 하고 손자도 아버지라 하니 그 촌수를 누가 알며, 예수가 유대 나라에서 나신 것은 누가 확실하게 알고 있소?

  그대 같은 젊은이는 속아서 미혹되기(沈惑) 쉽겠지만, 지각이 있는 사람과 글을 읽은 선비들이야 누가 그까짓 허탄한 일과 몰상식한 말을 믿겠소?

 

신천옹이 공손하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 상식 밖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 선생께서는 물고기와 날짐승이 새끼를 치는 이치를 아시나이까?

 

  진도 왈,

  비조(飛鳥)와 수족(水族)이 다 알에서 나는(卵育) 줄 알고 있소.

 

  신천옹이 답 왈,

  각색(各色) 비조들이 다 알로 새끼를 치긴 하지만, ()은 태()로 자식을 낳고, 물고기가 다 알을 수초(水草)에 쓸기 때문에 작은 고기들이 알속에서 나아올 때에 어미 된 고기가 그 자식과 상관이 없게 되지만, 그 중에 고래라 하는 고기는 그 자식을 태()로 낳고 또한 자식을 대단히 잘 돌보며(顧護), 사람이 만일 그 자식을 잡을라치면 제 몸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그 자식을 해(害)치지 못하게 합니다.

  선생께서는 다만 한 가지만 알기 때문에 학()과 고래가 새끼를 태로 낳음은 반드시 상식 밖이라 하는 것입니다.

 

  진도 왈,

  ()을 태금(胎禽)이라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고래가 자식을 태로 낳는 것(胎生)은 처음 듣는 말이요. 참으로 그러한 이치가 있소?

 

  신천옹이 또 가로되,

  옛적에 노르웨이(羅幃國) 사람이 태국(섬라국暹羅國)에 관광을 갔을 때 태국 왕을 보고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구시월이 되면 강물이 유리같이 단단하여져서 그 위로 사람과 거마(車馬)가 육지(陸地)같이 다닙니다' 했더니,

  왕이 믿어지지 않아 말하길,

  '물의 성질은 본래 부드럽기(柔) 때문에 사람이 빠질텐데, 어떻게 육지같이 단단하게 될 수가 있으며, 인마(人馬)가 건너갈 수가 있는가? 보도 듣도 못한 일이로다' 하였으니, 이것은 열대지방(熱帶近處)에서 자라고 거기서만 사는 사람은 다만 날씨가 더운 것만 보았기 때문에 한대지방(冷帶近地)의 추운 날씨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로 여름의 벌레(벌너지)는 얼음()을 말할 수 없고 우물 밑에 개구리(井中之蛙)는 하늘이 작다 하는 법이니, 바로 선생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몇 십년 전에 선생이 만일 서양제국에 들어가 전보학(電報學)을 졸업(卒業)하고 돌아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철사(鐵絲) 하나만 공중(空中)에 매면 만리 밖의 소식을 삽시간에 알 수 있고, 몇 천리 밖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철사가 없이도 소식을 듣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선생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안될 소리라고 부정하며, '천리마가 있더라도 천리 밖의 일은 하루가 걸려야 알 수 있으며, 백 보 밖에 있는 사람의 말도 서로 듣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만리 밖의 소식을 삽시간에 알며 천리 밖의 소식을 서로 듣겠는가' 하여 믿지 않을 것이니, 그런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자통신을 공부했기 때문이요, 상식 밖이라고 하는 것은 전화선과 전화기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생께서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이 없다 하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어찌 통신학을 몰라서 영통(靈通)함이 상식 밖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성경(聖經)에 가라사대,

  '세상 사람의 지혜로 능히 하나님의 오묘(奧妙)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하셨으니, 미묘(微妙)한 지경은 성인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비록 하나님께서 내신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하늘의 도와, 죽는 것을 알지 못함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데, 공자가 가르치신 일이 없다 하여 기독교의 천당지옥설이 허황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필부(匹夫)의 모자란 짓거리일 것입니다.

  유대 선지자와 헬라(希利尼) 성현들은 몇 백년 후세사(後世史)를 마치 눈으로 직접 본 것 같이 말씀하며, 하나님이 부르셔서 친히 계명(誡命)을 주신 자도 있는데, 편벽(偏僻)되고 고루(固陋)한 문견(聞見)을 가지고 허탄(虛誕)한 말씀이라 하는 것과, 천국과 지옥을 누가 보았느냐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논리(論理)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한 것은 접어두고라도 유서(儒書)로 말씀할지라도 '삼후재천(三后在天)'이라 하고 '문왕척강(文王陟降)이 재제좌우(在帝左右)'라 하였으니, 문왕(文王)의 덕행이 높으사 그 영혼의 오르락내리락 하심이 하나님 좌우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어찌 천국이 아니며, 걸주(桀紂:걸왕과 주왕)같은 임군의 영혼이 하나님 좌우에 오르락내리락한다 함은 없으니, 악한 자가 천당에 가지 못함은 가히 알 것입니다.

  또한 천국이 있는 줄 믿으면 지옥이 있는 것은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매사를 그렇게 눈으로 본 후라야 믿는다면 자기 조상(祖上)도 없다고 해야 옳고, 후세에 유교를 존숭하는 자가 공자 맹자를 없다 하고, 불교(佛敎)를 믿는 자가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없다 하며, 선술(仙術)을 배우는 자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없다고 함이 옳을 것입니다.

  후세 사람들이 다만 옛적 성현의 글과 행적(行跡)을 보고 그 성현이 세상에 있던 줄을 믿는 것은 동서양 사람이 똑같습니다. 어찌 눈으로 봐야만 믿겠습니까?

  사람의 영혼이 육신에 있을 때에 살았다고 하며, 말씀도 하고 일을 경영(經營)하는 것이니, 영혼의 형체를 볼 수 없으나 분명히 아는 것은 보지 못하는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으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만민(萬民)의 죄(罪)를 대속(代贖)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보지 아니하고 믿는 자는 복을 더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선생께서도 보지 못하는 중에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의 영원한 복과 지옥의 고초(苦楚)도 보지 못하지만 있는 줄 믿으시면 복을 많이 받으실 줄 믿습니다.

 

  진도가 말이 끝났어도 묵묵히 대답하지 않자, 백운과 원각이 곁에 있어 앞 뒤 대화 내용을 다 듣고는, 진도가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로되,

  신천옹의 말씀이 당연한 것 같소. 사람의 지혜라 하는 것이 이미 보는 것을 미루어 보지 못하는 이치까지 아는 것이 만물 중에 귀한 줄 믿소.

 

  신천옹이 또 가로되,

  진선생께서는 그래도 이해(理解)하지 못하십니까? 사마군실(司馬溫:北宋의 학자)의 말에 가로되, '천당은 착한 사람을 위하여 설시(設施)하고 지옥은 악한 사람을 위하여 설립한 곳이라' 하였으니, 사마온공(司馬溫公)은 유도(儒道)를 행하는 선비지만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짐작하였는데 진선생의 고명하심으로 어찌 이를 의심하십니까?

 

  진도 왈,

  만일 정녕 천국이 의심할 것 없이 있다고 치면 누가 그곳에 가기를 원치 않겠소. 먼저 그대에게 있는 성경에 무어라고 했는지 봅시다.

 

  원각이 가로되,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지요. 소승은 아는 것이 없지만 부처님의 말씀과 불경의 이치를 보면 어찌 천당과 지옥이 없다 하겠습니까?

 

  신천옹이 가로되,

  대사(大師)께서는 예전부터 불교를 숭상(崇尙)하셨기 때문에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믿으시는데, 이왕(已往)에 아예 허무(虛無)한 불교를 버리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시겠습니까? 변변치 않은 음식(蔬食菜粥)과 기름진 음식(膏粮玉食)이 다 같이 음식이긴 마찬가지지만, 귀하고 천함(貴賤)과 아름답고 악(美惡)함이 있는 것이니, 훌륭한 음식을 만나기 전에는 거친 음식(草食)을 먹겠지만, 좋은 음식(玉食)을 보고도 의심하여 먹지 않는다면 참으로 이보다 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사의 뜻은 어떠신지요?

 

  원각이 답 왈,

  부처님은 도솔천궁(兜率天) 회명보살(誨明菩薩)이십니다.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도(人道)로 환생하셨으니, 처음 태어나셨을 때에 사대천왕(四大天王)이 와서 조회(朝會)하고 구룡(九龍)이 물을 토하였으며, 또 나실 때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치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쳐 가라사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오직 내가 홀로 높다(唯我獨尊)'고 하셨으니, 세상에 어찌 불교보다 더 큰 도가 있겠습니까? 소승은 불교가 음식 중에 옥식(玉食)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천옹이 가로되,

  대사께서는 참 고루(子誠齊人: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하십니다. 한낱 불교의 허무하기 짝이 없는 교리만 믿고 진실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는 알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태초(太初)에는 이 세계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닷새 동안에 전능(全能)하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육일 째 되는 날에는 사람을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으며, 그 중에서 의복과 음식을 마련하게 하셨으니, 이 세상은 당초부터 하나님이 조성하신 것이며, 부처님도 이 세상이 생긴 후에 세상에 나신 성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과 육신과 총명과 지혜를 주셨기에 불도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천상천하에 자기만 높다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까?

  또한 날 때에 이상한 징조가 있었다는 것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나라 고현(苦顯)사람 노자도 태어나자마나 좌우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으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치고 한 손으로 땅을 가르쳐 말하기를 '천상천하에 오직 도가 높다' 하고,

  관윤자(關尹子:관령윤희. 중국 즈나라 때의 철학자)도 날 때에 그 집 육지에 연꽃이 피어 빛이 선명하였다고 했는데, 아무리 성인이라도 처음 날 때에는 말 못하는 아이일 뿐인데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 허탄한 신화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되신 성자로서 세상에 강생하실 때에 석가여래 같이 남녀가 교정함으로 잉태한 것이 아니라 성신(聖神)께서 동정녀(童貞女) 마리아 몸에 감동하사 스스로 잉태하셨으며, 탄생하시던 날 밤에 무수한 천사 천군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였으며, 동방의 박사들은 밝은 별을 보고 찾아와 절하며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으니 어찌 석가여래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원각이 공경하여 왈,

  불경에 가로되, '이 세상은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로 된 것이라 당초에 보광마니향수해(寶光摩尼香水海)에 종종광명예향당(種種光明蘂香幢)이라 하는 꽃이 있으니, 그 꽃속에 무수한 세계가 생겼는데 간디스강의 모래보다 더 많은지라.' 그중에 사바세계(娑婆世界)라 하는 세상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요 이 세계 중에 사대부주가 있으니 동성신주(東聖神洲)와 서우화주(西牛貨洲)와 남염부주(南閻部洲:南贍部洲)와 북구로주(北瞿蘆洲)가 되었고, 우리가 사는 지경은 남염부주에 속합니다. 이 세계가 다 부처님의 도술로 되었는데 어찌 하나님이 창조했다 하십니까?

 

  신천옹이 답 왈,

  제가 비록 불교의 이치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 내력을 논한다면 불조(佛祖) 석가모니는 근본 카필라(迦毘羅)국의 위성(衛城)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이요 마야부인의 소생입니다. 석가(釋迦)는 씨족이요 모니는 이름이니 인도어로 능인적묵(能仁寂黙)이요, 아명은 싯달타(悉達)이며 별호는 고타마(喬答摩)입니다. 

  천성이 총명(聰明)하고 마음이 맑고 고결(高潔)하여 태자로 있을 때에 세상 영화에 뜻이 없었는데, 하루는 궐문밖에 나아갔다가 늙고 병든 자를 만나고는 홀연히 생각하되 이 세상은 한낱 괴롭고 더러운 허화(虛華)시라. 사람이 어찌하면 질을 변화하며 고초를 벗어나 윤회 중에 빠지지 아니하고 불생(不生)불사(不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을까?’ 그 묘법과 비결을 얻기를 항상 생각하다가 이십구세에 이르러서 결단하여 부모처자와 부귀영화를 버리고 달아나던 중, 길에서 한 걸인을 만나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주고 걸인의 남루한 옷으로 바꾸어 입고 산중으로 다니며 스승을 구하는데, 항상 오음마니발미호(唵摩尼八爾吽)라 하는 경문(經文)을 외우니 그 뜻을 번역하면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 육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데, 점점 음식을 줄여 하루에 쌀 한낱 씩만 먹어도 결국에는 유익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궁중에 돌아가 태자 직분을 행할까생각도 해 보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다 세상 유혹에 빠지는 망상인 것 같아,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아 주야로 묵묵히 생각하고 잠도 자지 아니하더니, 홀연히 부처가 되는 이치를 깨달아 가로되, '세상 모든 고난이 다 욕심에서 좇아옴이니, 일체의 욕심을 거절하여 끊고 묵묵히 생각하며 마음을 닦는 것이 부처 되는 근인(根因)이라. 죄악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 공허적멸(空虛寂滅)한 지경에 이르면 영영(永永)히 윤회(輪廻) 중에 고난을 면하고 부처가 될지니 하나님의 권능도 쓸데없는지라.'

  생각이 그 지경에 이르자 크게 기쁘고 기분이 상쾌하여 마치 여러 해 갇혔던 죄인이 하루아침에 감옥에서 풀려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불교를 창립하여 도를 전파하는데, 사십오년 동안에 날씨가 좋은 때는 육십명의 제자와 함께 사방에 다니며 전도하고, 여름 장마철에는 절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후에 아란타(阿蘭陀)라 하는 제자에게 의발(衣鉢)을 전하고 구시라(拘尸羅)국에서 입적했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논하자면, 사체(四諦)와 팔진(八眞)과 삼귀(三歸)와 오계(五戒)가 있습니다. 사체(四諦)는 사람이 세상에 나매 항상 핍박과 고난을 받는 것과, 사람의 고난이 정욕을 인하여 온 것과, 사람이 정욕을 이기면 열반(涅槃)에 근본이 되는 것과, 열반에 들어갈 사람마다 도를 이룬다 하는 것이고, 팔진(八鎭)은 불도(佛道)를 믿는 것과, 집을 떠나 정욕을 거절함과, 참말로 불법을 외우는 것과, 참 행실로 중노릇하는 것과, 참 법으로 의식을 도모함과, 참 힘씀으로 육신을 이김과, 참마음으로 불결함을 버림과, 참 묵상함으로 참선법(參禪法)을 행함이요, 삼귀(三歸)는 돌아가 부처에게 의지함과, 돌아가 불법(佛法)을 의지함과, 돌아가 중에게 의지함이요, 오계(五戒)는 살인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라 함이라.

  또한 불서(佛書)에 가로되,

  '이 세상이 태초에 십이풍륜(十二風輪)으로 창조가 되었으니, 풍륜(風輪) 중에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五行)이 있고, 풍륜(風輪) 위에 칠금산칠향수(七禽山七香水)가 있고 향수(香水) 밖에 철위산(鐵圍山)이 있고, 철위산 밖에 제 팔 염해(塩海)가 있고, 염해 가운데 보광마니향수해(普光摩尼香水海)가 있고 향수 가운데 종종광명예향당(種種光明藝香幢)이란 꽃이 있고, 꽃 위에 이십중 화장찰해(華藏刹海)가 있고, 그 중에 제십삼층 남섬부주가 있으니, 곧 이 세계라. 삼천대천세계가 무수한 간디스강의 모래와 같이 많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었다 하면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은 당초에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입니까? 반드시 만드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한 예향당(藝香幢)이란 꽃은 아무 권능과 지혜도 없는 일개 무지한 초목일 뿐인데 어떻게 세상을 창조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유도(儒道)에 이른바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생()하고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생()하여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기(二氣)로 만물이 자연히 생긴다 함과 같은 말입니다. 자연(自然)이란 말은 저절로 된다는 것이니 세상에 어찌 저절로 생긴 물건이 있겠습니까?

  이제 집을 예로 들어본대도, 벽돌과 주초(柱礎)와 동량(棟梁)과 창호(窓戶)가 다 저절로 되어 백성들이 살게 되었다 하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천지는 곧 집과 같고 강해(江海)산악(山岳)과 일월(日月)성신(星辰)은 집안의 물건과 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부처님도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사람에 불과한데 어떻게 세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원각이 놀라서 가로되,

 선생의 다문박식(多聞博識)과 고명한 말씀에 실로 탄복(歎服)할 지경입니다. 묻겠습니다. 부처님은 당초에 사람이 아니요 도솔천궁(兜率天宮) 회명보살(誨明菩薩)로 비록 천축국(天竺國)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이 되었으나 십년 고행으로 성품을 보고 도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었으니, 천상천하에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어찌 도솔이 없다하십니까? 옛적에 달마존자(達摩尊者)는 나무 표주박을 타고 수만리 푸른 바다를 건넜으며, 석가세존(釋迦世尊)은 죽었다 하나 관 속에서 발꿈치를 들어 죽지 않았음을 보이셨고, 부처님 미간에는 흰털이 있어 옥호금광(玉毫金光)이 동방 일만팔천 세계에 비취었으며, 십홀방장(十笏方丈)에 오천 사자(獅子)의 자리를 베풀었고, 콧구멍에 능히 수미산을 감추었다 하였으니, 사람이 부처가 되지 못함으로 도술을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어찌 권능이 없으시겠습니까?

 

  신천옹이 가로되,

  대사의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허황(虛荒)되어 기가 막힙니다. 사람이 말로만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아마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바다도 건너 뛸 수 있을 것이며, 하루 백천번씩이라도 천국에 올라가겠지요. 어찌 그 허탄한 말만 믿으십니까?

  도승의 이적을 말씀하셨는데,

  신라의 원효대사는 석촉검각산(西蜀劒閣山) 암자의 중들을 구원할 때 쟁반을 던졌다고 했으며, 공주를 아내로 얻을 때에 철침(鐵針)을 삼켰고,

  고려의 진묵대사(眞黙大師)는 생선국을 먹고 용변을 보니 모든 물고기가 환생하여 물로 뛰어들어갔다고 했으나, 부처님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한산습득(寒山과 拾得)은 문수와 보현(文殊普賢: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후신(後身)으로 신이한 도술이 많되 불가설의(不可說儀) 네 가지가 있다 했는데, 그것은 중생계(衆生界)와 허공계(虛空界)와 불세계(佛世界)와 룡세계(龍世界)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은혜(恩惠)로 도(道)를 깨달은 성인이지만 오히려 할 수 없는 것이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도무지 없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콧구멍에 능히 수미산을 감출 수 있으심은 물론이고 한마디 말씀으로 능히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그 권능이 또한(足히) 한마디 말씀으로 세계를 없어지게 할 수도 있으십니다.

  사도 요한의 복음에 가로되,

  '주의 행적(行跡)을 낱낱이 기록할진대 그 책을 둘 곳이 이 세상이라도 부족하리라'하였으니 예수님의 기행(奇行)과 이적(異蹟)은 한량(限量)없이 많아 이루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적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이 복종하면 거룩한 도의 참 이치를 알지 못할까 염려(念慮)하셔서 이적은 항상(恒常) 은밀(隱密)하게 행하시고 참 이치를 주장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셔서 만물 중에 가장 귀하게 하셨으니, 만국만민(萬國萬民)의 큰 아버지가 되십니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부모(父母)가 먼저 계셔서 부모의 뼈와 살을 이어받아 육신이 생겼으니 낳으시고 기르시는 은혜가 한량없으시니 어찌 효도하고 공경(恭敬)하여 자식의 도리(道理)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형제는 한 부모의 혈육(血肉)을 받아 동기간이 되었으니 어찌 우애(友愛)롭게 지내지 않겠으며, 임금은 만백성을 다스리는 대왕이요 우리의 부모시니 어찌 충성(忠誠)하지 않을 것이며, 부부(夫婦)는 하나님이 맺어주신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아름다운 배필(配匹)이니 어찌 즐거워하여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이웃 사람들은 다 형제와 자매이니 어찌 서로 믿고 의지하여 교제(交際)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이른바 오륜삼강(五倫三綱)의 도와 고금천지(古今天地)에 떳떳한 이치입니다. 불교가 비록 크다 하나 삼강오상지도(三綱五常之道)를 능히 행치 못하는데 어찌 족히 대도(大道)라 칭하겠습니까?

  그런고로 신라의 강수(强首:통일신라 때의 유학자. 문장가)라 하는 문장은 한 세상의 유명한 달관(達官)이로되, '불교는 세상 밖의 교()라 숭상할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인륜과 천륜을 좇는 자는 행치 못할 교라 생각합니다.

 

   원각이 말이 끝나자 못마땅하여 왈,

  선생이 불경을 다 보지 못함이올시다. 은중경(恩重經)의 말씀은 부모의 은공(恩功)을 가르친 것이요, 또한 불서(佛書)에 가로되, '천지(天地)는 날로 더불어 동근(同根)이요 만물은 날로 더불어 동포(同胞)라' 하였으니, 불교가 지극히 착함으로 초목(草木)과 곤충(昆蟲)까지 살해(殺害)치 아니하거늘 어찌 윤상(倫常)의 도리가 없다 하겠습니까?.

 

  신천옹이 답 왈,

  대사께서는 제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고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요.

  불교인들이 육도윤회(六度輪廻)의 말씀을 헛되이 믿음으로 계견육축(鷄犬六畜)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자기의 조부모(祖父母)가 죽은 후에 혹시 육축(六畜)이 되었는가 의심함이요 또 곤충까지 살해치 않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람이 만물 중에 귀하다 함은 특별히 허령지각(虛靈知覺)이 있기 때문이며, 천지간에 삼대륜(三大倫)이 있으니 천륜(天倫)과 인륜(人倫)과 물륜(物倫)입니다. 불교인은 삼대륜을 알지 못하고 분별(分別)할 줄도 모르니 어찌 가련하지 않으며, 어찌 종교라 하겠습니까?

  천지가 나와 한 뿌리라고 주장하니 천지가 생길 때에 부처가 함께 태어나지 못하였는데 어찌 동근(同根)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천륜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만물이 나와 동포라고 하니 사람이 어찌 나무와 풀과 짐승들 보고 형제라고 부르며 곤충과 물고기와 자라들더러 자매라 칭하겠습니까? 이것은 인륜을 분별치 못하는 것입니다. 어찌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원각이 묵묵히 생각하다가 깨달아 가로되,

  그러하면 삼대륜의 이치를 자세히 가르쳐 주시지요.

 

  신천옹이 답 왈,

  천륜과 인륜은 차차 말씀드리겠고,

  대저 물륜이라 하는 것은 초목금수(草木禽獸)를 가르쳐 말하는 것이니 초목은 다만 생혼(生魂)만 있어 음양수토(陰陽水土)의 기운으로 생장(生長)하다가 사람이 베어버리면 아무 소리도 없이 말라죽을 따름이며, 각각(各各) 종류의 씨를 좇아 무성(茂盛)하는 것이요, 금수(禽獸)는 다만 생혼(生魂)과 각혼(覺魂)이 있어서 배가 고프면 먹을 줄 알고 맞으면 아픈 줄을 깨달아 능히 소리도 지르며 기회를 보아 도망할 줄(被禍)도 알되 오직 허령지각(虛靈知覺)이 없는 고로 배워도 발전(發展)이 전혀 없나니, 까마귀나 꿩(烏鵲)의 집을 두고 볼지라도 태고적에 집을 짓던 모양과 지금 시절에 지은 집이 그저 같아 조금도 진보된 것이 없고, 까마귀는 몇 만년을 지나도 능히 검은 옷을 벗지 못하며, 백로는 몇 천년을 이어 내려왔어도 능히 흰옷을 변치 못하나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수(禽獸)를 내실 때부터 그 성질을 이렇게 마련하신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물륜(物倫)이요,

  인륜(人倫)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람에게 생혼(生魂)과 각혼(覺魂)과 영혼(靈魂)을 주심으로 능히 천리(天理)와 지리(地理)도 깨달으며 이왕에 지나간 상고사(上古史)과 금세(今世)에 당연(當然)히 행할 직분(職分)과 내세(來世)에 어디로 돌아가는 것을 다 아는지라.

  사람은 특별히 영각성(靈覺性)이 있으므로 물리(物理)를 궁구(窮究)하며 학문을 닦을수록 지혜가 늘어가나니, 태고적 사람은 나무열매(木實)를 먹고 동굴(洞窟)에 거(居)하였었는데, 유소씨(有巢氏:새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사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집을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었다는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 때에 비로소 나무를 얽어 깃들이는 처소를 만들었으며, 제요 때에는 집짓는 제도가 진보되어 토계삼등(土階三登)에 모자를 부전(茅茨不剪:이엉으로 지은 한 채의 집)하였고,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더욱 진보하여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은 위에만 사람이 앉게 하고 아래에는 오장기(五丈旗)를 세우게 지었으니, 동물 중에 특별히 다른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사람됨이 대단히 존귀(尊貴)한 것은 위로 하나님을 존경(尊敬)하고 구세주(救世主)를 신봉(信奉)하여 천륜(天倫)의 이치를 순종(順從)하며 아래로 초목금수(草木禽獸)와 곤충어별(昆蟲魚鱉)을 제어하고 다스려 물륜의 이치를 궁구하고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효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여 오륜삼강의 도리를 극진히 행하고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사업을 다하며 내생(來生)의 영혼까지 구원하여 천당복지의 무궁한 영화를 받는 것이 사람의 당연한 직분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부모처자와 형제자매와 군신상하를 일제히 거절하여 헌신 같이 버리고, 심산궁곡(深山窮谷)에 불당(佛堂)과 암자(庵子)를 건축(建築)하고 주야(晝夜)로 부처앞에 참배(參拜)하며 아미타불관세음(阿彌陀佛觀世音)을 쉴새없이 부르고 마음을 밝히며, 성품을 본다 하여 참선 공부를 힘쓸 때에는 사람의 윤기(倫紀)와 세상의 의리를 아주 잊어버리라고 하니, 사람마다 불교를 행한다고 보면 윤상(倫常)이 끊어지고 인종이 민멸(泯滅)할 것입니다. 어찌 다시 불교인이 되겠다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대사는 깊이 생각하여 쓸데없는 목석(木石)으로 만들고 금은으로 단장(丹粧)한 우상(偶像)에게 합장배례(合掌拜禮)하지 말고 광명정대(光明正大)하고 호호탕탕(浩浩蕩蕩)하신 하나님의 참 진리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원각이 능히 대답(對答)하지 못한다.

  어느덧 해는 서산(西山)너머로 기울어지고 새들은 숲속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드는데 멀리 마을 초가집에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니 각각 유숙(留宿)하는 집을 찾아 들어갈 때, 다음 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期約)하는구나.

  참으로 궁금하구나. 이들의 나누는 얘기들이 어찌 될는지, 아래 회(回)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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