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근밥 솥단지

양(羊)

솔석자 2018. 12. 21. 13:29

()

 

나는 양이다

늙어 기력 떨어진 데다

병들어 굶주리매

피골이 상접하여

발걸음 떼기 버거운

무지랭이 양들과 함께 있다

 

이름하여 내 선한 목자는

그 많던 양 무리 뛰쳐나갈 땐

무심하여 나가는 양 안 잡고

들어오는 양 안 막는다며

무섭게 흰 소리 치다가

나날이 떠나는 양 늘어나고

 

새로 들어온 양마저 슬그머니

방귀 새듯 빠져 나가는 사이

덩그라니 우리 안에 주변머리 없어

남은 듯한 기십 마리 양을 데리고

오늘도 어김 없이 습관처럼

기약 없는 배수진을 친다

 

자칭 내 선한 목자는

새벽잠 없는 늙은 양 몇 마리와

육신 고달픈 양들 모아놓고

사랑하니까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너희를 내 팔에 안아 보듬겠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털 깎자 바리깡 들이대고

 

말라 비틀어진 젖을

움키고 쥐어짜며 성 내어

왜 젖을 내지 않느냐 야단하며

언젠가는 가죽까지 벗기겠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쓰겠다

다 주어야 한다 그게 양이라 한다

 

부끄러워라 난

새끼도 낳지 못하는 늙은 양

그 언젠가 낳은 새끼는

어디로 갔는지 소식도 모르는데

늙어 꼬부라진 양들더러

목자는 오늘도 불임이냐 꾸중한다

 

믿음이란

대체 얼마나 큰 건지

어느 정도라야 정성 깃든 건지

기준은 어떻게 어디에 두는지

과부 두 렙돈 가지고는

대체 무얼 할 수 있었는지


억지로나 인색함도

이들에겐 사치일 수밖에 없는데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한 양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예물 놓고

오히려 욕될까

심히 걱정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들짐승처럼 풀 뜯고

하늘이슬 맞으며 광야에 살 걸

아는 게 병이라고

이제는 모르는 게 죄라는데

 

무지랭이 같은 양들도

귓구녕이 열렸으니 듣고

눈깔이 뚫렸으니 보고

주둥이로 이바구 하고

하늘 보며 큰 숨도 쉬고

때로는 가슴을 치며 울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늙고

가난하고 착한 양들은 오늘도 하늘을 본다

아픈 다리 끌찌라도 새벽을 깨우며

내 선한 참 목자 예수를 부른다

세상에 있는 양 우리가 아니라

천국의 우리를 소망하며...

 

2018. 12.21 새벽

瓦片 朴泳淳

'시근밥 솥단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을 비워야...  (0) 2019.01.15
그 때...  (0) 2019.01.11
역설  (0) 2018.11.28
진실(真实)  (0) 2018.11.27
쉬는 시계의 독백  (0) 201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