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羊)
나는 양이다
늙어 기력 떨어진 데다
병들어 굶주리매
피골이 상접하여
발걸음 떼기 버거운
무지랭이 양들과 함께 있다
이름하여 내 선한 목자는
그 많던 양 무리 뛰쳐나갈 땐
무심하여 나가는 양 안 잡고
들어오는 양 안 막는다며
무섭게 흰 소리 치다가
나날이 떠나는 양 늘어나고
새로 들어온 양마저 슬그머니
방귀 새듯 빠져 나가는 사이
덩그라니 우리 안에 주변머리 없어
남은 듯한 기십 마리 양을 데리고
오늘도 어김 없이 습관처럼
기약 없는 배수진을 친다
자칭 내 선한 목자는
새벽잠 없는 늙은 양 몇 마리와
육신 고달픈 양들 모아놓고
사랑하니까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너희를 내 팔에 안아 보듬겠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털 깎자 바리깡 들이대고
말라 비틀어진 젖을
움키고 쥐어짜며 성 내어
왜 젖을 내지 않느냐 야단하며
언젠가는 가죽까지 벗기겠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쓰겠다
다 주어야 한다 그게 양이라 한다
부끄러워라 난
새끼도 낳지 못하는 늙은 양
그 언젠가 낳은 새끼는
어디로 갔는지 소식도 모르는데
늙어 꼬부라진 양들더러
목자는 오늘도 불임이냐 꾸중한다
믿음이란
대체 얼마나 큰 건지
어느 정도라야 정성 깃든 건지
기준은 어떻게 어디에 두는지
과부 두 렙돈 가지고는
대체 무얼 할 수 있었는지
억지로나 인색함도
이들에겐 사치일 수밖에 없는데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한 양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예물 놓고
오히려 욕될까
심히 걱정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들짐승처럼 풀 뜯고
하늘이슬 맞으며 광야에 살 걸
아는 게 병이라고
이제는 모르는 게 죄라는데
무지랭이 같은 양들도
귓구녕이 열렸으니 듣고
눈깔이 뚫렸으니 보고
주둥이로 이바구 하고
하늘 보며 큰 숨도 쉬고
때로는 가슴을 치며 울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늙고
가난하고 착한 양들은 오늘도 하늘을 본다
아픈 다리 끌찌라도 새벽을 깨우며
내 선한 참 목자 예수를 부른다
세상에 있는 양 우리가 아니라
천국의 우리를 소망하며...
2018. 12.21 새벽
瓦片 朴泳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