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그 때를 아실랑가요?

솔석자 2019. 4. 17. 16:46


그 때를 아실랑가요?


[쓰리코다(트리쿼터)가 지 몸뚱아리보다 더 큰 확성기 대가리를 싣고
신작로에 문지를 잔뜩 내민서 냅다 달리민 악을 바락바락 쓴다.
"오늘 저녁,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보실 영화는 이름하여

어머니 물개똥과 아버지 설사똥!

어머니 물개똥과 아버지 설사똥을 가지고 여러분을 모시겠사오니

후딱후딱 저녁 밥 챙겨드시고 어서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장마끝에 날씨는 어찌나 쪄 대는지,

죽어라고 매미 울어대는 미류나무 아래 공터에 천막을 치고 가설극장이 열렸다.

구경거리 많지 않던 때에 가설극장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누구에게나

못 보면 안달 나는 구경거리였다.

지금 다시 본다면 유치할 듯 싶던 용가리도

당시에는 얼마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 박수를 치게 했던지...

처음 영화를 본 날, 대문짝보다도 더 큰 사람 얼굴에 기겁을 했던 일,

학교 강당에서 "이순신" 영화를 보던 날은 영화가 끝났을 때도
여전히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 끄고 영화를 보는 탓에

환한 길을 밤길 걷듯 집으로 돌아왔던 웃지못할 일,

숨도 못 쉬고 영화를 보다가 주책없이 오줌이 마려워,

어둡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 나가지는 못하고,

영화에 빠져서 일어나기도 싫고 허여 질금질금 바지 지렸던 일,

아마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게 확실히 맞기는 맞았던 모양이라.

할아버지도 영화 처음 보셨을 때 대문짝만한 낯짝이 확 달겨들

"으악!"하고 달아났다더니만 나도 만만치는 않았다.

6학년 때 제천 의림지로 기차타고 소풍 갔다가 - 그 때는 기차타고 제천역 가서

거기서 의림지까지 걸어갔었지 -제천으로 돌아와 단체극장을 관람했었다.

특별히 때 맞춰 어린이 영화도 없어서(그래도 그렇지.) 당시 상영중인 영화를 관람했다.


웃긴다!

애들 볼 거 없으면 말지.

그 영화 프로가 장한몽이었다.

뭐냐구?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
웃기지?

다 알잖아?

같이봤으면서...


난 그 때 처음으로 총천연색(?) 영화를 봤다.

테레비 그딴 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부터인가?

쌍룡양회 사원식당에서 영화를 상영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영화 얘기다.

엄마들이 모여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얘기하고,

'꼬마신랑'이 어쩌구 저쩌구,

우리는 등교하면 박노식이 허장강이 맞짱 뜨는 얘기로 입에 거품을 물고,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헛 권총을 신나게 쏘았다.

마치 지가 무슨 주인공이나 된듯...

영화표가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지라 표를 못 구한 사람은

다 떡치는 소리가 나도록 팔뚝 욕을 하고 돌아가고

미련이 남아 아쉬운 사람은 뒷산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인지...

그러다가 종영 10분전에 문 열어 놓을 때 들어가 보기도 한다.
나?

아버지가 경비과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계신 날은 덤으로 인심 쓰며

친구들 데리고 들어갈 때도 있었고,

재수 좋아 아버지 친구분이라도 계시는 날에는 부러 "안녕하세요?"

인사를 크게 하고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맘때는 다 좋았다.



그러나...

정말 좋았던 건 아니다.
세월이 흐르니까 좋게 보이는 거다.
그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플 때가 가끔은 굴뚝 같다.


그맘때 쯤인가 나도 한 때의 이야기었지만
혼자 가슴앓이하던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만 알아라.
행여 착각들은 하지 말고...
아니다. 착각해도 좋다. 그건 자유니까...
누구나 한번 쯤은 있었을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해주라.
당신들도 그런
때 있었을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