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난 엄청난 바보였다
중핵교 댕길 때,
그 땐 다들 너무나 떵구녕이 째지도록 가난했었다.
늘 듣느니 돈타령, 어른이구 애들이구...
그저 생각한다는 게 "어디서 돈벼락이나 안 떨어지나?"다.
생활이 그러니 학교 월사금 고지서 나와도
돈 달라는 얘기가 입이 안 떨어져
언제나 앞에 나와서 손 한번 들고 서던지
흑판에 월사금 안 낸 사람 명단 한 번 적힌 후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월사금 달라 하면
으른들은 갑자기 돈 마련하느라 똥줄치 탔다.
다른 건 부끄러워 하면서도
저 배우고 돈 내는 건 이름 적히고 벌 서고
그러면서도 지가 무슨 독립운동가인 모냥 뻔뻔스러울만치 당당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가슴이 뜨끔거리며 아프다.
그 통증이 좀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영 아니올시다다.
참다 참다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오늘 제천 읍내 병원갈거니까 핵교 가거들랑 퍼뜩 조퇴맡구 와라."
그 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김종인 선생님이라고
제천에서 출퇴근하셨는데 항상 고개를 불량(?)스럽게 옆으로 기우뚱하셔서 5분전 12시라고 했다.
선생님께 가슴이 아파서 병원을 가려 한다고 조퇴를 맡아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도 선생님은
"너 병원 가거들랑 내 이름 대. 그럼 잘 해 줄꺼야."
아! 이 얼마나 자애롭고 고마우신 말씀. 불러도불러도 그 거시기한 선생님이 주체사상 따지는 누구네 거시기만 못하겠는가?
병원을 갔다.
선생님 말씀대로 했다.
진찰을 받고 아무 이상 없단다. 신체발육과정에서 가슴(?남자도)이 돌출하는 과정이란다. 글쎄 그게 뭔 얘긴지는 잘 몰라도 그 뒤에 내 젖꼭지(좀 야하지?)가 좀 커졌고 검어졌다.히히히.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댕겨 왔니?"
"네."
"뭐라 그러디?"
"안 깎아 주대요??
이런 지기랄!
그 땐 몰랐다.
나 아니고 다른 놈이라도 그렇게 대답했을 거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선생님 뜻은 제자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그렇게 하면 잘 진찰해 줄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쑥맥 같고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녀석은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어련하랴! 늘 듣고 보는게 돈타령이요 한숨이었으니...
이제 30여년이 흘러 성생님도 이미 작고하셔서 안 계시지만
개교기념일을 며칠 앞둔 지금 다시금 그 때 그 어리석었던
현문에 대한 우답을 생각하면 그 자리 다시 선 듯 낯짝이 화끈거린다.
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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