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근밥 솥단지

봄보리(春麦)

솔석자 2019. 5. 21. 18:22

보리를 찾으렸더니... 밀밭입니다그려.

 

 

봄보리(春麥)

 

나는 봄보리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습니다

포근한 무게로 덮어 주던

하얀 이불마저 보이지 않고

난 밤새 속살이 시린 아픔으로

그렇게 온 겨울을 떨며 지새웠습니다

 

나는 봄보리

지난 겨울은 너무 외로웠습니다

자상한 발길로 꼭꼭 밟아 주던

농부들 정성도 적어지고

우리 동무들도 옛날처럼 많지 않아

어금니 꽉 물고 속으로만 외로움 삭였습니다

 

나는 봄보리

그 밤은 또 너무 길었습니다

추위에 떨고 외로움에 아파하며

그래도 따닷한 날 오겠지

못 참겠다 아우성치는 속살 달래며

동지섣달 긴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봄보리

이젠 울지 않습니다

주야 장장 긴 겨울 인고의 시간들이

나를 튼튼한 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촉촉이 내리는 봄비는

겨우내 마른 바람 할퀸 상처를 닦아줍니다

 

이제 나는 꿈을 꿉니다

온 들 누렇게 황금으로 익을 날을....

내 몸에서 태어날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알곡들을....

 

9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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