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보리(春麥)
나는 봄보리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습니다
포근한 무게로 덮어 주던
하얀 이불마저 보이지 않고
난 밤새 속살이 시린 아픔으로
그렇게 온 겨울을 떨며 지새웠습니다
나는 봄보리
지난 겨울은 너무 외로웠습니다
자상한 발길로 꼭꼭 밟아 주던
농부들 정성도 적어지고
우리 동무들도 옛날처럼 많지 않아
어금니 꽉 물고 속으로만 외로움 삭였습니다
나는 봄보리
그 밤은 또 너무 길었습니다
추위에 떨고 외로움에 아파하며
그래도 따닷한 날 오겠지
못 참겠다 아우성치는 속살 달래며
동지섣달 긴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봄보리
이젠 울지 않습니다
주야 장장 긴 겨울 인고의 시간들이
나를 튼튼한 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촉촉이 내리는 봄비는
겨우내 마른 바람 할퀸 상처를 닦아줍니다
이제 나는 꿈을 꿉니다
온 들 누렇게 황금으로 익을 날을....
내 몸에서 태어날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알곡들을....
9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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