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근밥 솥단지

닭아 닭아 우지마라 Chicken chicken! don't cry

솔석자 2008. 7. 2. 00:46

Chicken chiken, don't cry는 말두 안되는 거라구유?

그류! 나 무식해유. 그래서유?

어? 당신 원래 강원도 감자바우 아니래요?

그런대유? 그게 머 어쨌다는거유?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쌍나발 전축을 사오셨습니다.

써라운드 스테레오 오디오라 해야 하나?

그 때 쓰리보이 원맨쇼라는 원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해도 볼 수 없더군요.

아직꺼정 관심 있는 걸 보면 아시겠지요?

아주 왕 펜이었습니다.

 

그 코메디 전축판 한 대목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은관 명창 성대모사인 듯 합니다.

우리 말로 부르고 영어로 번역하는 형식입니다.

가사는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닭아 닭아 우지 마라

 Chicken chiken, don't cry.

니가 울면 날이 샌다

 You cry moning come."

말도 안 되는 영어지만 재미있잖아요.

 

불현듯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앞마당에 삐약삐약 병아리 종종걸음 치다가 조그맣고 귀여운 부리로 물 한 모금 먹는 병아리, 그 옆에 병아리들 주위에 든든하게 보호해주는 어미 닭,

"병아리 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하는 동요는 추억 넘어로 떠내려 보내지는 건 아닌가요?

 

 

 아는 게 병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무슨 조짐만 보이면 살처분합니다.

"반경 몇 km 이내에 조류는 모두 살처분 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소름이 끼칩니다.

무차별 학살이지요. 제노사이드(Genocide).

옆에 살았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헤롯은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를 없애기 위하여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였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예수의 슬픔 가운데는 억울하게 죽은 또래 친구들에 대한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도 이렇게 죽이는데 동물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말 못하는 짐승이라서, 아니 그들도 말은 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한 것 뿐이겠지요.

귀를 열어 그들의 마지막 주고 가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연례적인 비극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낯 익은 손님들이 반가운 얼굴로 오십니다.

계면쩍은 모습으로 말합니다.

"매스컴에서 이젠 먹어도 된다네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어른들은 그래도 뜸하긴 했지만 발걸음을 하며

같이 걱정해 주셨는데, 아이들은 맘이 안 놓였던가 봅니다.

한 동안 아이들 모습을 보기 힘들었었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닭(?)치는 대로 죽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닭들이 말을 한다면,

그리고 그 말을 우리가 들을 수 있다면 이런 말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운다해도 우는 게 아니었어.

 게으른 너희들,

 얼른 일어나 부지런히 살라고 깨우는 거였어.

 그런데 지금은 피눈물 흘려 운다.

세상에. 원 세상에...

느네들 진짜 너무 한다."

 

열심히 삽시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손자 귀엽다 귀엽다 하면 할애비 수염 잡아당긴다구요.

버릇이 없어진다는 애기겠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너무 예쁩니다.

그까짓 수염 좀 잡았다 해서 손자 미워할 할아버지 있겠습니까?

 

 

 

 

 

 

   

   

 

 

 

 

 원조춘천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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