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黃昏)
주여!
시계 대용으로 세운 막대기
그림자 한바퀴 뺑 돌아
어느덧 해가 저뭅니다
처음에는 반대쪽에
그림자 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땐 좋았지요 이슬처럼 맑았구요
예쁜 꿈들만 꾸고 살았었지요
그림자 안 보이던 때도 있었답니다
정오라 한 낮이었지요
힘은 펄펄 넘치고 일하기 참 좋았지요
오죽하면 그림자 생각할 틈도 없었겠을까요
이젠 눈까풀에도 힘이 없어 자꾸 아래로 감기고
맘은 한창인데 몸이 말을 안 듣소
후회한들 소용 없지요
무슨 염치가 있겠는가마는
먼지 수북히 덮힌 낡은 성경
벽장 속애 처박아 뒀던 바로 그 성경책 꺼내
흐린 눈동자 거기 박습니다
주님! 안녕하신지요 정말 오랫만이지요
웃지 마오 남의 얘기 아니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