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발전과 그에 대한 개혁주의적 비판
들어가기 전에
구약신학의 발전사를 서술하기 위해서, 즉 구약신학이 어디에서 태동하였고, 어떤 형태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시작점을 언제로 잡을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하고, 또 그 이후에 어떤 기준으로 그 시대를 나누어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시작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 굳이 가장 ‘처음’을 말하려고 한다면, 신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군데 구약성경이 인용되어 있다. 어쩌면 중간사 시대의 저술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관심의 범위를 너무 멀리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구약신학’이란 분야가 나타나게 되는 바로 전단계를 구약신학의 모태로 보고, 그 시대부터 발전사를 서술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를 그 시작점으로 잡게 될 것이다.
또,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신학자들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세속 역사의 구분점을 사용할 것인가? 세기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대두된다. 아무래도 구약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각 시대의 문화적 배경과 연관을 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서양의 사상사와 연관된 구약(성경)신학의 변천을 살피도록 하겠다. 이 방법은 게하르드 하젤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1. 종교개혁부터 계몽주의 시대 이전까지
이 시대에는 아직 구약신학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지 않은 채 성경신학이란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의 기본적 성경 해석 원리는 바로 “오직 성경”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성경신학이란 용어가 이중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1)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뿌리를 둔 신학을 가리키거나, (2) 혹은 성경 자체가 담고 있는 신학을 가리킬 수 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로써 스콜라 신학과 교회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그 운동이 성경신학의 발전을 촉진하게 된 씨앗이 된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성경신학’이란 학문분야가 생기게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 신학은 조직신학의 접근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개혁 후 1세기가 지나서 17세기는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의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교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H.A.Diest의 「성경신학」에 나타나듯이, “성경신학이란 초기 개신교 정통의 전통적인 교리체계를 지지하기 위해서 두 성경에서 무차별하게 ‘증빙자료(proof texts)’를 찾는 작업으로 이해되었다.”
정통주의에 반발하여 나타난 것이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이다. 경건주의는 “성경신학”으로 정통의 교리체계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경건주의에 의해서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의 라이벌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중-후반에는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고,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의 기초로서 인식되기도 했다. 더이상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의 시녀로서 역할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성경신학은 J.P.Gabler의 1787년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의 올바른 구분과 각 학문의 목적에 대한 올바른 정의”라는 연설로 완전히 독립 학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그러나 그의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의 분류는 그리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으로부터 계몽주의 이전까지(16-17C)를 살펴볼 때, 성경신학이란 것은 곧 조직신학의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오직 성경’의 외침은 이렇게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또는 공격하고자 하는 교리에 대해서 성경이 어떤 위치를 취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둠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사실 ‘오직 성경’이 개혁주의의 근본적 입장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개혁주의란 곧 종교개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입장임을 생각해 볼 때, 16-17세기의 성경신학의 모습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오직 성경’이 바로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인정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교리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개신교 정통주의의 시대에 성경을 자기들의 교리의 증빙 자료로서만 사용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척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들 덕분에 성경신학의 뿌리가 내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직 성경’의 원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성경신학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2. 계몽주의 시대
인간의 이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던 계몽주의 시대에는 성경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첫째, 모든 초자연을 부인하는 합리주의의 물결과, 둘째, 역사비평주의의 발전, 셋째, 성경에 적용된 과격한 문학비평이 성경 연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결국 합리주의는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고, 성경은 고대 문서들 중의 하나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Gabler는 성경신학의 세가지 방법론을 언급했는데, (1) 영감의 배제. 중요한 것은 “신적 권위”가 아니라 “그들(성경 저자들)이 생각한 것” (2) 성경신학은 성경 저자 개인의 개념과 사상을 조심스럽게 모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문학비평, 철학비평, 역사비평의 도움으로 일관성 있게 역사비평학적 방법론을 적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3) 성경 신학자는 성경의 어떤 것이 우리에게 적용되며 어떤 것이 우리에게 불필요한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성이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믿었던 합리주의에 의해서 구약(성경)신학이 점령을 당한 것은 결국 그 이전의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교 정통주의는 자기들의 교리를 성경으로 입증하는데 노력했을 뿐이어서 교회의 침체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서 교리를 반대하는 도구로서 성경신학이 사용되기까지 하자, 결국 성경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당시에 계몽주의의 바람이 불어닥치며 최고 진리의 권위는 무너지고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떠했든 간에 합리주의 신학은 성경에 대한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 합리주의 신학은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양상들의 역사성과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 종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참 종교를 정화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이며, 성경을 그릇된 개념과 미신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합리주의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미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성경을 신적 영감과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시하지 않는 한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주의적으로 짓밟았을 때에는 어디에서도 신적 용서와 치료의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합리주의적으로 구약을 연구했던 사람들이 과연 기독교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렇게 합리주의적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결국 기독교 신앙은 전혀 거기에 기초를 둘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3. 변증법적 신학 - 종교사학파의 시대
헤겔의 종교철학의 영향은 종교사학파(벨하우젠)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전의 합리주의적 성경신학을 퇴색시키고 제1차 세계대전 후 약 수십년간 변증법적 신학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보수주의에서 강력한 반동이 일어났는데, 행스텐버그 등이 합리적, 철학적 접근을 반박하며, 역사비평학적 방법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신적 계시를 믿으며 온건한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종교사학파는 사실상 구약신학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변증법적으로 구약신학을 접근했을 경우에 결국 구약신학에는 아무런 일관성도 찾을 수 없게 되고 만다. 구약은 서로 연결이 안되는 시대의 자료들을 수집한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은 다른 이방 종교를 반영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종교사학파적인 입장을 가진 구약신학자들은 스스로 구약신학의 연구를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이렇게 종교사학파가 자체 붕괴되어 버리자 그 가운데에서 보수주의자들의 대 약진이 일어난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종교사학파가 이전의 합리주의적 성경신학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라고는 해도, 그 태도 자체는 합리주의적 성경관과 거의 다르지 않다. 앞에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그들의 주장 대로라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이방신들을 이리저리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20세기 구약신학의 부흥
진화론적인 자연주의에 대한 믿음이 상실되고, 역사적 진리가 더이상 객관적인 진리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으며, 변증법적 신학에서 계시 사상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경향이 일어나면서 구약신학이 다시금 부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유주의의 역사실증주의 방법은 전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 이래로 구약신학은 황금시대를 맞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약신학이 제기한 주된 문제들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찾아볼 수가 없다. 여러 배경을 가진 학자들과 학파들이 생기고 있고, 계속되는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보수주의의 약진과 더불어 20세기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구약에 대한 연구의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무척 고무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많은 학파와 신학자들이 각자의 전제와 환경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고 있으며 편집사 비평, 문학비평 등 여러가지 방법론이 대두되어 가고 있는 이 때에 과연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결어 - ‘오직 성경’의 원리
지금까지 종교개혁으로부터 20세기까지 구약신학의 발달사를 살펴보고 약간의 언급을 더하기도 하였다. 구약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며 이 역사가 ‘오직 성경’을 주장하며 일어났던 종교개혁의 후예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생각해 볼 때 무척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합리주의적으로, 변증법적으로 보게 된 것은 바로 이 ‘오직 성경’을 외쳤던 종교개혁의 후예들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개혁주의의 입장에서 구약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성경)신학의 모든 문제는 곧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성경의 영감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로 수렴된다. 개신교 정통주의적 입장에서 성경을 증거 본문으로서 바라본 것은 그들이 비록 성경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에 의해서 결국 구약(성경)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거기에 합리주의와 변증법 철학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결국 성경의 권위는 무너지고 만 것이다.
‘오직 성경’의 원리는 성경 이외의 다른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나, 또는 어떤 다른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데 적용되는 원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전통이 이렇게 성경의 권위를 잘못 이용함으로써 성경의 권위가 파괴당하는 결과를 당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직 성경’의 원리는 오히려 신앙인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겸허히 서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태도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합리주의, 종교사학파 시대의 구약신학자들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갖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대의 구약신학은 다시금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언약 등에 관심을 잦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볼 때,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 계속되는 논쟁의 와중에 있는 구약신학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계속 예의주시해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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