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묻어버릴꺼나
짚신 장수 두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짚신을 삼아 장에 가지고 나가 팝니다.
그런데 아버지 것은 잘 팔리는데 아들이 만든 짚신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손님이 와서는 들고 살펴보다가 결국 옆에 있는 아버지 것을 사 가지고 갑니다.
아들도 팔기는 하지만 아버지에 비하면 변변치 않습니다.
아들은 답답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어째서 내가 만든 건 구경만 하고 사가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왜 그런지 떠오르질 않는 것입니다.
생각다 못해 아들은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필시 거기에는 아버지만 아시는 노하우(know how)가 있을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제가 만든 짚신은 어째서 사람들이 잘 사가지 않고 아버지가 만드신 짚신만 찾는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아마 ‘너 스스로 터득하거라’하는 깊은 뜻은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부자 사이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혼자만 아는 비법으로 짚신을 많이 팔아 많이 벌었고,
아들은 그냥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게 그렇고 그랬습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러 아버지도 늙어 임종을 맞아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짚신이 잘 팔릴 비법을 가르쳐 주겠노라며 귀좀 대라 하고는 마지막 숨을 몰아,
“터얼(毛)!” 그 한마디 하고 숨을 멈췄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내가 삼은 짚신은 털을 매끈하게 다듬었기 때문에 잘 팔렸고,
네 짚신은 털을 다듬지 않아 지저분했기 때문에 잘 안 팔렸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에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마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악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면서도 비결은 부자간에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진작 가르쳐주고 서로 나누면 둘이 같이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벌고 부자 사이에 정(情)도 더 깊었을 텐데,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 비결을 알려준다는….
설마 여러분 가운데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은 안 계시겠지요?
어려운 시절을 맞이하여 모두들 힘들어하는 때에 자기만 아는 기발한 그 무엇이 있어 좋은 시절을 보내며
다른 사람의 불행에 희열(?)을 느끼지는 않는지요?
함께 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함께 기뻐하면 얼마나 보람있겠습니까?
우리네 기도는 참으로 거룩합니다.
이웃의 불행을 위해 간구하는 그 기도는 간절하다 못해 애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의 분위기에서 가슴을 찢으며 통회하던 방금 전의 모습들은 어디로 갔는지요?
먹거리 없어 죽어 가는 형제들을 위한 기도 후에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찌 그리 풍성한지요?
음식을 대하면서 조금 전의 기도는 완전히 잊었는가 봅니다.
그래도 또 기도하겠지요.
생각없이, 머리없이 조잘대는 앵무새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테이프가 돌아가며 예정된 기계소리를 내는 녹음기처럼…
입술 발린 기도 그 자리에 그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기뻐하시며 주실 것입니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십시오.
마음만 비우면 못 나눌 것은 또 무엇입니까?
혼자만 가졌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꽁꽁 감추고 자자손손 대대로, 죽어 가치 없는 유산(遗产)으로 남겨두렵니까?
광문 활짝 열어 닦고 광내어 자랑하고 알려 모두가 누리게 하십시오.
먹거리로, 냉수 한 사발로, 배움으로 기갈 들린 이들은 기쁨으로 사랑 칭송할 것입니다.
'빼랍속 사금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하나님의 사람 빌립집사여! (0) | 2019.04.16 |
---|---|
강태공(姜太公)의 곧은 낚시(98.01.04) (0) | 2019.04.16 |
만일 내가 나무라면...(98.02.08) (0) | 2019.04.14 |
철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98.02.01) (0) | 2019.04.14 |
말짱 도루목이라고들 했을지라도…(98.01.25) (0) | 2019.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