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근밥 솥단지

주홍글씨

솔석자 2007. 4. 15. 07:11

주홍글씨



스치던 바람에 등 떠밀리던 날에
그 바람 맞으면서도 그저
한 순간 무심코 지나는 바람이려니
그냥 그렇게 생각했더이까

하루 이틀 사흘 가고
한달 두달 석달 지나
 한해 두해 세해가 흘러
  반백으로 늙어서야 깨달았더이까
아니면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더이까

예전에 시인 될 수 없는 날 불러 세워
어줍짢게 시인을 만들었다가
그 붓을 꺾어 던지게 만들었던 그 바람은
 한낱 바람이 아니었더이다

오늘 또 날 불러 세운 바람의 맘
알기나 한듯 호숫가 수양버들은
하릴없이 주루루룩 머릴 감고 또 감는데
내 손엔 어느새 붓이 들렸더이다

내 죄요 내 죄요 내 큰 죄로소이다 하며
아무도 자기 가슴을 열지 않는 세상
억지로 사랑이라고 자신을 속여 감싸매
문신 새겨지듯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주홍글씨가 낙인으로 새겨질 때마다
양심의 고통으로 가슴 쥐어 뜯으면서도 말이외다

돌을 든 자가 죄가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랴
마땅한 건 그 돌이 던져진다면
큰 돌 무더기 되는 거 무난하리
차라리 돌무더기 되어
보는 이들에게 본보기 됨이 좋으리

다른 이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제 눈에 피 눈물 흐르는 걸...

瓦片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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