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 같은 쌀을 씻으며……
콩밭을 매면서 나라 생각하다가, 매야 할 밭은 매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콩을 다 뽑아버렸다던 어느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엉뚱함을 지나 아주 심각한 중증 정신병 환자(?)로 취급받을 수 도 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지요.
무엇에 집착하여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경험을 말씀하신 그 목사님도 제가 보기에는 행복한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저도 행복하니까요. 우스운 얘기지만 저도 목사님과 유사한 경험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방앗간을 경영합니다. 떡도 만들고 고춧가루도 빻고 기름도 짭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이지만 저희 방앗간은 ‘베들레헴’과 ‘겟세마네’라고 주장합니다. 베들레헴과 겟세마네는 둘 다 성경에 나오는 지명(地名)으로서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으로서 ‘떡집’이라는 뜻이 있고, 겟세마네는 예수님께서 고난의 밤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 기도하신 곳으로서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저에게는 세상의 삶을 위한 사업장이고 동시에 ‘예수사랑 선교회’의 작업장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일을 하면서 선교에 대한 착상을 하고, 또 그 착상이 구체적인 구상으로 들어갈 즈음이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어느 날, 떡을 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쌀을 담갔다가 떡을 시작하려고 쌀을 건지면서 또 착상이 떠올라 그것이 무르익어 ‘무아지경의 경지(?)’에 돌입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쌀을 다 건져 그것을 고춧가루 기계에 부어버린 후였습니다. 고춧가루로 붉게 범벅이 되어 있는 기계에 부어진 하얀 쌀은 기가 막히도록 아름다웠으나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입이 벌어지도록 엄청난데 떡을 주문한 사람이 그 꼴을 보았다면 아마도 ‘이기 미친나? 이기 얻다가 쌀을 쌔리 분기가, 참말로’하고 어이없어 했을 것입니다.
기계를 풀어 고춧가루로 벌겋게 주홍빛이 된 쌀을 말끔히 긁어내고는 고춧가루를 하나씩 골라내기를 무려 세 시간, 성령께서 도우심인지(?) 그 무수한 시간동안의 어이없는 광경을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고 ‘양털보다 더 희게’ ‘흰 눈보다도 더 희게’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작업 아닌 작업을 다 완료할 수 있도록 보는 이들의 눈을 가려 주셨던 주님, 아마도 그 분은 당신의 일로 미침에 기특해 하셨는지, 또 행여나 이 일로 당신의 영광이 가려지지나 않을까 하는 자상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탄식하며 ‘아마 내가 미쳐가는가 보다’하고 실소를 머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은 그 작은 일들,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일들을 통하여서도 주님께서는 역사를 이루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늘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어떤 때는 무모하리만치 일을 펑펑 저지르고 다녀도 너끈히 해결해 주십니다.
주홍같이 붉던 쌀을 희게 해주신 그 분은 이미 이천년 전에 저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미쳐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당하겠습니다. - 솔석자 박영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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