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을보리

1900년 혹한을 준비함

솔석자 2016. 7. 4. 17:55

1900

혹한을 준비함

 

농부가

 

누천여년 묵은밭이 삼천리에 가득하니

몇농부의 쟁기질로 어찌일시 개간하리

각농부가 한일양식 주인처분 얻는대로

몸과마음 다드려서 일경백묘 하여보세

오호동린 형제들아 서린노농 본을받아

황천풀은 길을덮고 개간한밭 굳어지네

 

-전도자 이은승의 찬송시 중에서-

 

 

                                 2월   3일       미감리회 신학반 수료(17)

                                 415일       남감리회 종교교회 시작

                                 517일       한글 신약성경 발간

                                 523일       노블(W.A. Noble), 주기도문 번역

                               12월              신학월보 창간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6)

 

  아펜젤러에게 보낸 옥중서신

 

  존경하는 선생님께

  이제 신정과 구정이 다 지나가고 봄의 계절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번창과 축복과 행복이 특별히 선생님과 모든 기독교인 가정에 일 년 내내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사모님께 새해 인사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친의 편지를 통해서 선생님의 소식과 선생님께서 저를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신다는 것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연히 선생님께 저의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보내려고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저 감사, 감사하다는 말만 한다는 것은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주일 전쯤 전 총리대신이셨던 윤용선씨께서 그 직위에 계셨을 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저를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으며, 소위 정부 관보에 여섯 종류의 범죄자들을 제외한 모든 수형자들을 칙령에 의해 풀어주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여섯 종류의 범죄자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음모자, 살인자, 강도, 절도자, 간음자 그리고 사기꾼 등입니다. 이 포고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제가 곧 풀려나리라고 믿었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윤씨는 자리에서 해임되었거나 아니면 사임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간수들이 그들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늘 그렇듯이 제게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관보가 발표된 지 3일 만에 칙령은 바뀌었습니다. 저에 대해서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정부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으며 나아질 희망이 조금도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지금 풀려나갈 것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만, 비록 세상의 권세 있는 모든 자들이 나를 대항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저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며, 이 비참한 곳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하여 저는 책들을 읽고 약간의 시들을 지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잊을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사실은 저의 연로하신 아버지와 모든 가족들이 겪는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펜젤러의 일기 중에서, 1900. 2. 6.)

 

 

한기두 형제의 마귀 쫓은 역사

 

  함경도 안변 영풍 땅은 첩첩산중으로 인가와는 아주 동떨어진 곳이라. 그곳은 층암절벽에 화전을 일구어 감자나 심고 들짐승으로 벗을 삼고 세월이나 보내는 곳이더라. 그런데 거기 사는 한기두라는 형제는 성경 말씀을 들은 후에 예수씨가 참 자기를 구원하신 구주이심을 알고는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더라.

  그는 농사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일이면 모든 일을 다 그만두고 가족과 더불어 주일을 지키는데, 기도하는 법과 찬미 몇 편을 배워 입으로는 외우나 일자무식함으로 성경을 읽지 못함을 항상 한탄하더라. 그래서 찬미 책 한 권을 사서 배우는데 저고리에 책 주머니를 만들어 찬미 책을 넣고 밭에 가나, 장에 가나, 어디를 가더라도 짬이 나는 대로 열심을 다해 공부하더라.

  하루는 수십 리 밖 처숙모 집에 갈세, 그 옆집 툇마루에 한 실성한 듯한 사람 하나가 걸터앉아서 한씨를 보고 하는 말이,

   도깨비 큰 지게 위로 천주학 하는 놈 넘어간다

하거늘 한씨가 못 들은 체하고 처숙모 집에 들어가 앉았더니, 이웃집 여인이 와서 이르되,

   “저기 툇마루에 걸터앉은 이가 내 아들이요, 마귀 들린 지가 한 달은 되었는데 불경도 여러 번 읽고 굿도 하였으나 고쳐지지 아니하고 그냥 두면 산으로 달아나 돌아다니며 애, 어른을 분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살림살이를 다 부수고 다녀서 쇠고랑으로 채워 잡아두었더니, 오늘 그대를 보고 하는 말이 이상할 뿐 아니라 내가 들으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귀신이 싫어한다고 하니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고 가시오

하거늘 한씨의 말이,

   우리 예수교 하는 집에는 마귀가 다 도망하는데, 그것은 예수교 하는 사람이 무서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니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마귀가 나가려니와 사람은 귀신을 나가게 할 수 없소이다. 내가 예수를 믿으나 무식하여 성경도 모르고 이런 일을 겪어 보지도 못하였으니 할 수가 없소이다

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처숙모와 그 여인이 문을 닫고 못 가게 하며,

  사람을 살려주고 가시오

하거늘 한씨가 마지못하여 함께 가니, 마귀 들린 자가 또 말하되,

 천주학 하는 놈 넘어간다

하고 소리 지르거늘 쇠고랑을 벗기고 방으로 들어가서 기도한 후에 어떻게 할 방법을 알 수가 없는지라.

  주머니에서 찬미가를 꺼내어 제 십 구편(영광송)을 외우며 가르치니 그 사람이 문을 박차고 나가서 산으로 도망하거늘 여러 사람이 잡아다 놓고 복숭아나무로 때리니 온몸이 다 터져도 아픈 줄 모르고 미친 소리만 하더라. 밤이 맞도록 영광송을 외우며 가르치니 마침내 항복하는 말이,

  “과연 도깨비올시다. 아무 데 있다가 이 집 신부의 가마 뒤를 따라왔습니다. 지금은 배가 고파 가기 어렵습나이다

하니 한씨가 호령하여 말하기를,

  “네가 이 사람에게서 나가지 아니하면 예수께서 너를 지옥으로 보내시리라

고 했다.

 

  마귀가 그 사람에게서 나가고 온전케 되었으니 성신의 권능이 아니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사오리까? 어디서나 전도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성신의 권능이시니 함경도 지경(地境)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려고 이런 권능을 나타내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내옵나이다(김기범).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11900. 1. 3.)

 

 

과천 덕고개 교우 허대진의 믿음

 

  과천 덕고개 교우 허대진씨는 주후 1895년에 세례를 받고 1896년에 입교한 이후로 눈에 보이는 육신과 우상과 세상 영화를 버리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과 하나님과 천국복락을 위해 농사하던 수십 섬지기 되는 남의 제수답(제사를 위한 전답)을 돌려주더라. 이 일로 말미암아 육신의 생애가 아주 빈곤하여짐으로 근근이 연명하다가 그 동안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월에 병이 나게 되었더라.

  우리들은 그 딱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나, 초팔일에 그 형제가 찬미 기도하고 자기 자녀를 교우들에게 부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달라 하고 세상을 떠남에, 우리들이 교회 예법대로 장사하고 허씨의 처자를 위하여 진심으로 위로하며 기도하였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141900. 4. 4.)

 

 

교우 강리배씨의 거룩한 임종

 

  평안도 용강 백곳이라 하는 동리는 삼화에서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인데 주후 1898년 가을에 한 사람이 믿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 해에 백곳 마을 여섯 집이 다 믿게 되었더라. 그 후 교인들 30여 명이 1899년 시월에 예배당 네 칸을 건축하더니 날마다 교회가 부흥해 가더라.

  그 곳 형제 중에서 강리배씨가 금년 삼월 이십이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식구를 다 모으고 그 아내에게 성경을 보고 기도하라고 하니, 그 아내는 또한 진실히 믿는 사람이라. 즉시 성경을 읽고 기도하더라.

  강씨가 누워서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힌 형상을 손으로 가리키고 혀가 굳어서 말을 못하더니 오분 후에 안색이 밝아지며 웃는 모양으로 문득 한 마디 말로,

  “참 좋다

하고 세상을 떠나더라.

  그 아내와 동생은 죽은 것을 잊어버리고 천당에 가는 생각만 하며 기뻐하다가 수족을 만져보니 뻣뻣하고 입에서 찬 기운이 나오는지라. 그제야 슬픈 생각이 나고 서로 떠나는 것을 애처롭고 가련해하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151900. 4. 11.)

 

 

윤치호에 대한 이야기(17)

 

  선정 선치의 본이 됨

 

  며칠 전 원산 사람 하나가 본사에 와서 원산항 감리(사장) 윤치호씨의 치적을 칭찬함이 대단하더라. 그동안 지나간 상황을 대강 말하되 지난번에 안염사(암행어사)가 윤치호씨를 공연히 파직하니, 원산 백성들이 곳곳에서 모여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윤 감리가 부임한 후로는 백성들에게 잡다한 세금을 물린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송사를 처리하는 데도 밝고 공평하여 억울한 백성이 하나도 없거늘, 안염사가 이같은 명관을 무단히 봉고파직하니 윤 감리가 만일 올라가시는 날이면, 우리 덕원 백성들은 견딜 수가 없겠다 하고, 한편 내부(내무부)에 전보로 간청하되 윤씨를 다시 덕원 부윤으로 임명하여 달라고 하였더라.

  한편 여러 백성들이 안염사의 돌아가는 길을 막고 바라고 원하는 바를 호소하려 함에 수일을 항구 안에 행인이 끊어져 인심이 매우 흉흉하더니, 다행히 내부에서 윤씨로 다시 임명하신다는 전보가 내려옴에 백성들이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크게 잔치를 배설하고 윤 감리를 교자에 앉히고 백성들이 다투어 메고 새로 부임하는 의식으로 하는데,

  “덕원부 백성들은 읍내로 모시겠다 하고, 원산항 백성들은 감리영(시청)으로 모시겠다 하여 읍내 백성과 항구 백성들이 서로 다투는 것이 참 볼 만하더라

고 열변을 하기에 우리는 그저 들은 대로 기재하노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191990. 5. 9.)

 

 

인천 담방리(만수동) 교우들

 

  인천 담방리에는 믿는 사람들이 사오십 명인데 회당이 없어서 예배할 때에 항상 걱정이 되었더니 교우들이 열심히 연보하여 돈 사천 냥을 모았더라. 지금은 회당을 새로 건축하였으니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더라.

  교우 이학구씨는 양친을 모시고 있는데 부모의 연세가 모두 칠십여 세라. 학구씨가 예수를 믿은 후에 생각하기를 주님의 신도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니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정성으로 봉양하는 것이 옳다하여 부모의 뜻을 순종할 뿐 아니라 명절과 생일 때에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특별히 부모님께 드리니 그 부모는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친구들이 말하기를,

이씨가 그 부모님께 산 제사를 드린다

하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211990. 5. 23.)

 

 

이군선에 대한 이야기(1)

 

  인천 절골에 사는 교우 이선달 군선씨의 아내 권씨가 십년 전부터 미친 증상이 있어 약도 쓰고, 경도 읽고, 굿도 하여 재산을 다 없애고도 병을 고치지 못했더라.

  그러다 예수교회에 마귀를 이기는 권능이 있음을 듣고 회당을 찾아와서 믿기를 자청하거늘 교우들이 이씨의 집을 가 보니, 이씨의 부인은 미친 증상이 대단하여 벽을 잡아 뜯다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떨거늘 교우들이 찬미하고 기도하며 이불을 벗기니 냉수를 좀 달라 하더라.

  권씨는 냉수 세 사발을 마신 후에 같이 엎드려 기도하더니 두 주일이 못 되어 미친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고 지금은 독실하게 믿는 교우가 되었다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211900. 5. 23.)

 

 

이군선에 대한 이야기(2)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전도행전

 

  지난 두 달(3~4) 동안에 강원도 고성, 통천, 협곡과 함경도 안변, 덕원과 평안도 평양, 양덕 등지로 다니며 전도하였는데, 협곡 정덕 땅에 사는 주여백이라 하는 형제는 본래가 소경으로 점치는 일로 생업을 삼다가 예수를 믿은 후에는 이런 일을 다 버리고 항상 말하되,

  “눈먼 소경 놈이 눈뜬 성한 사람을 속였으니 이는 나의 큰 죄라

하고 이웃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전도하니 참 기쁘고 감사하더라.

   그리고 안변 여교우 한씨 부인은 금년 삼십 세의 과부로 자녀도 없이 혼자 살며 예수를 진실히 믿기로 내가 신약성경과 찬미가를 선물로 드렸으며, 한편 덕원에 이르니 원산항 감리 윤치호씨가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행함으로 사람마다 명관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며 감리가 아무 잘못없이 파직되어 간다고 하는 말을 듣고 백성들이 길을 막고 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윤씨의 치민하는 소문은 듣기에 기꺼울 뿐 아니라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오.

  그리고 통천읍, 고성읍과 금강산 신계사를 구경하니 금강산은 근본 대한 천지에 유명한 성지라. 봉우리마다 석각으로 희기는 눈빛 같고, 산 아래 동백꽃은 곳곳이 보기에 좋사와 바쁜 가운데서도 하나님 은혜로 구경을 잘 하였더라.

  그리고 안변 학익골과 새암재령과 마진개령과 안후비령으로 넘어 다녔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성경책은 모두 이백 삼십 칠 권을 팔았삽나이다(매서인 이군선).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211900. 5. 23.)

 

 

강화에 새로운 역사

 

  종순일씨 말씀대로 빚을 탕감한 일

 

  양력 4월경에 강화 홍의교우 종순일씨가 자기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또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에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의 천만냥 빚을 탕감하여 주셨으니 나도 남이 내게 빚진 것을 탕감하여 주리라하고 자기에게 빚진 사람들을 모두 청하여 성경 말씀으로 권면하여 전도한 후에 빚 준 문서를 그 사람들 앞에서 즉시 태워 버리니 빚졌던 자들이 크게 감복하여 그 영화를 하나님께 찬송하고 서로 말하되 세상 사람은 없는 빚도 있다 하여 재물을 취하려고 하는데 예수교를 믿는 사람은 자기 돈까지 포기하며 남을 도우니 참 거룩한 일이라 하더라.

 

  성전 건축을 위한 합력

 

  지난 5월에 강화 상도리 교우 황양일씨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회당을 건축할 때 이웃 동네에 사는 박진사 선수씨와 이진사 덕윤씨가 큰 서까래 재목 하나씩을 기쁜 마음으로 보조하고 민석사 경원씨는 큰 서까래 재목 두 개와 민석사 순오씨는 마루 재목 두 개를 보조하여 회당 짓기를 도와주었으니 이러한 동포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개명하기에 참 열심히 많다고 하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231990. 6. 6.)

 

 

남궁억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의 택하심

 

  팔월 칠일 황성신문 기사 중에 일본신문 기사를 실었는데,

  러시아 공사가 일본공사를 향하여 대한을 분할하자고 말했다는 것을 게재하였더라.

  그 일로 지난 구일에 경부(경찰국)에서 황성신문 사장 남궁억씨를 잡아가더니 이틀 후에 마치 적국의 두목같이 옥에다 내려 가두고 매우 엄중하게 심문하므로 사정이 어렵게 되어 상당히 조심한다고 하니 설혹 러시아 공사의 말이 틀리다 할지라도 황성신문 기자는 다만 일본신문 보도를 번역했을 뿐 조금도 잘못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무죄한 황성신문 사장을 이렇게 엄중하게 하는지 참 애석한 일이라고 민중의 여론이 분분하더라.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 4331990. 8. 15.)

 

* 편저자주: 하나님께서는 또한 새로운 일꾼 남궁 억을 선택하셨다. 민중들 위에서 그를 부르시고, 민중들 아래에서 홀로 그를 만나고 계셨다. 어두운 이 땅의 불쌍한 민중들을 위해 빛처럼 소금처럼 그렇게 살라고.

 

 

김점동에 대한 이야기(8)

 

  부인 의학사 에스더

 

  육년 전에 박유산씨 부인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내외가 함께 홀 부인을 모시고 미국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훌륭한 대학공부를 잘 하셔서 영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마침내 여의학사 졸업장을 받고 지난 시월에 대한국에 돌아오셨나니라.

  공부하는 기간이 여러 해 되었는데, 그동안 부군 되시는 박유산씨는 세상을 떠나시고 그 부인이 혼자서 계시매 섭섭한 마음 어찌다 위로하리오.

  그러나 미국에 가셔서 식견과 학식이 다 넉넉하시매 우리 대한에 무지한 부녀들을 많이 건져내어 예수교에 많이 나오게 하시기를 바라오며 또 대한에 이 같은 부인이 처음 있음을 치하하노라. 또 부인께서 홀 부인을 모시고 평양으로 가셔서 육신의 병을 고쳐주실 때에 육신의 병만 고쳐주실 뿐 아니라 영혼의 병까지 고쳐주시와 영생토록 무병하도록 고쳐주시고 하나님 앞에 큰 상 받기를 우리가 또한 바라노라.

 

(신학월보, 111900. 12.)

 

 

엡윗청년회 이야기(5)

 

  평양 엡윗청년회

 

  평양교회에서 온 편지에 의하면 평양 엡윗청년회 임원을 개선하였는데 새로 선임된 임원을 다음과 같이 기재하노라.

 

      회장 김성호

      전도국장 오석형

      인제국장 김제선

      학문국장 이태황

      다정국장 김득수

      통신국장 임정수

      회계국장 염치언


  회원수는 모두 65명이라더라.

 

(신학월보, 111900. 12.)

 

 

한창심씨 전도를 위한 연보

 

  부평 빈적리 속장 한창심씨는 삼년 전에 기독교를 믿고 본동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동네 사람을 모아서 예배하니 참 칭찬할 일이더라. 더욱 칭찬받을 것은 본 지방 목사가 요즈음 그곳을 갔더니 한창심 형제가 동화 팔원을 주며 하는 말이,

  “이 돈으로 전도인을 보내어 우리 대한 여러 지방 중에서 죽음과 같은 그늘에 있는 불쌍한 인민들을 전도하셔서 우리와 같이 밝은 빛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였더라.

  우리 형제들이 기쁜 마음으로 연보하여 예배당도 건축하고 소학교 선생 월급도 담당하는 형제도 있거니와 이 한창심씨 같이 타지방 전도를 위해 연보하는 형제는 처음 있으니 월보를 보시는 이는 한창심씨를 위해 기도하시고 또 이와 같은 형제가 많이 나오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신학월보, 111900. 12.)

 

선택된 복음의 농부들

 

  복음의 사역자를 위한 신학회

 

  대개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온 고로 요한복음 일장 일절에,

  처음에 도가 있으니 도가 하나님과 같이 계시며, 도는 곧 하나님이라

하셨으며, 또 오장 삼십 구절에,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그 속에 영생이 있는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라

하셨으니, 주를 믿는 무리들은 누구든지 마땅히 하나님의 도를 깊이 연구하고 성경을 보아야 할 것이라.

 

  우리 속담에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있고, 물은 건너보아야 깊이를 안다고 한 것같이 하나님 나라의 오묘한 이치는 공부할수록 유익함을 얻으리로다. 실로 거룩한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은 우리 교인의 직책이거니와 만약 자기가 밝히 알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우리 목사 여러분이 해마다 신학회를 열고 여러 지방의 교우 중에 선택한 형제들을 모으고 여러 과정으로 가르치더라. 이전까지는 매년 정월에 공부를 시작했으나 그 때는 흔히 일기가 혹한이라. 먼 곳에 있는 교우들이 오고 가기가 불편할 뿐 아니라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객지에서 병나기 쉽기 때문에 금년에는 특별히 십일월 이십 일부터 경성 달성회당에서 신학회를 열었느니라.

  

  선생은 시란돈 장로사와 도원시 목사와 노블 목사 세 분이 가르치시고 배우는 대한의 형제들은 상동교우 이은승, 이창학, 이국혁, 도명운, 김상배, 전덕기, 고시영 제씨와 정동교회 최병헌, 노병선, 송기용, 문경호 제씨와 제물포 교우 복정채, 장원근, 오해두 제씨와 연안교우 김기범, 하춘택, 이동혁, 강덕표, 고치일 제씨와 평양교우 김창식, 강인걸 양씨와 강화교우 박능일, 김상림, 김우제, 종순일, 김경일 제씨와 과천교우 신성덕, 박학신, 신종학 삼씨와 인천에 김동현씨와 교동에 권신일씨와 송도에 김흥수씨 모두 삼십 이명이 모였으며, 공부 과정은 매일 상오 구시부터 구시 반까지는 하나님께 찬미 기도한 후에 도목사가 디도서를 일장 일절부터 절절이 해석하여 분명히 가르치시고 여러 교우의 공부하는 단계를 두 반으로 나누었으며, 아홉시 반에서 열시 반까지 제 일반은 노블 목사가 영혼의 이치를 문답으로 가르치시고, 제 이반에게는 도목사가 교회사를 자세히 변론하신 후 열시 반에서 열한시까지 반 시간 동안은 휴식하였다가 열한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일, 이반이 합석하여 성경의 역사를 시란돈씨에게 재미있게 배우고 하오 두시 반에서 세시까지는 일반은 교회사를, 이반은 영혼론을 공부하고, 세시 반으로 네시까지는 휴식하였다가 네시로 다섯 시까지는 일, 이반이 다 합석하여 신학과 논설을 노블 목사에게 공부하였느니라(중략).

 

  이렇게 몇 날 동안을 매우 재미있게 공부하였는데, 그 중에 섭섭한 일은 노블 목사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그동안 가르치던 것을 중단하고 김창식, 강인걸 양씨와 함께 평양으로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그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거니와 과정대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자 하며 평생을 열심히 배워도 오히려 부족함이 많은데 불과 팔, 구일 간에 흡족하게 배울 수는 없지만, 서양 목사와 대한 형제들이 각자의 일이 있어 여러 날 모일 수 없는 까닭에 그들이 십팔일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이튿날이 추수 감사주일이라서 상오 아홉시 반에 전과 같이 다 모여 기쁜 마음으로 성만찬을 먹고 폐회하였더라(본처 전도인 송기용).

 

(신학월보, 121901. 1.)




 

 

복정채에 대한 이야기(1)

 

  남양 여러 지방의 전도행전

 

  1900년 봄부터 가을까지 성신의 도우심으로 세 번 전도를 다녀왔는데 그 동안 전도가 점점 진보되었음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남양군은 서울서 남으로 백 리요, 인천항에서 일백 십리요, 수원에서 오십 리 떨어진 곳이니 지형은 바다를 향해 들어가 지면이 열렸는데 서해 중에 있는 일곱 섬이 속하였고 속한 면이 십삼 면이요, 가호는 육천 여호라 하며, 군읍의 호수는 삼백여 호라 하더라. 수로는 충청남도 연해를 접하였으며 서해로는 청나라 산동해를 접하였으니 임신년 변란에 청나라 병사들이 건너와서 진을 쳤던 곳으로 마산포가 군읍으로서 삼십 리니 가히 서해의 요충지대라 할 만하더라.

 

  특산물은 소금이요, 풍속은 어두워서 무당을 숭상하고 인심은 겉모양이 순후하고 양반이 많이 사는 땅이라. 읍내에서 서남쪽으로 삼십 리 되는 향갈동에는 전 죽산군수 김홍수씨가 처음으로 읍중에 예수교를 전도하여 두 집이 믿게 되었더라. 우리 인천교회의 성경책 파는 형제들이 여러 번 다니며 백여 권을 팔았더라.

 

  금년 사월부터 주일예배를 처음 실시했는데,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읍내에서 세 집이요, 향갈동에서 한 집이요, 활하동에서 세 집이더라. 주일 낮 예배는 읍에서 보고 저녁예배는 활하동에서 보는데 모이는 사람이 십여 인씩이더라.

 

  또 마산포 근처 포막동에는 다섯 사람이 새로 믿는데 금년 구월부터 주일예배를 처음 시작하였고, 또 그 동네 한글 아는 부인이 친척집을 열심히 전도하여 그 친척 세 집이나 새로 믿게 되었더라. 또 감사한 것은 향갈동과 포막동 사람들의 말이 여름 동안에 전도인이 오시기를 가뭄에 비 바라듯이 하였노라 하고 처음 보는 부인들도 기쁜 얼굴과 반가운 마음으로 접대하며 또 작별할 때에 말하되 또 속히 오셔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또 집안 마귀도 쫓아 달라 하더라.

 

  내가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 대한 풍속에 처음 보는 남녀이면 서로 피하여 남남으로 하는 법이거늘 그곳 부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하며 또 속히 와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달라 하니 이 영화를 다 하나님께 돌리고 기쁜 마음이 째지는 듯하여 찬미 노래로 칭송하고 길에서 곤비함을 잊었더라.

 

(신학월보, 121901. 1.)

 

 

문경호 권사의 전도 이야기

 

  1900103일에 시란돈 장로사와 서원보 목사와 본토 전도인 등이 서울을 떠나 이틀 만에 경기도 광주 오양동에 도착하여 하룻동안 그곳 모든 교우들을 모아 장로사께서 설교하시더라. 그곳 처소는 규모가 작아서 남녀가 다 모이지 못하고 남자 교우는 남자 교우대로 여자 교우는 여자 교우대로 모여 각각 지도하셨더라.

  이곳 교우들은 농사는 아니하고 다만 질그릇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라. 로마서 921절에 하신 말씀과 같이 좋은 그릇과 낮은 그릇을 만든다 하더라. 교우의 수효는 67명이더라.

 

  사역을 다하고 그곳을 떠나 동심리라는 동네에서 하루를 내어 밤이 맞도록 성경을 가르치니 교우들이 매우 좋아하고 기뻐하더라. 이곳은 오양동에서 십 리가 되며 믿는 교우의 숫자는 19명이더라.

 

  그 다음 날 노루목(노곡)이라는 동네로 가서 교우들을 모으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는데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여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으로 설교하셨는데 교우들이 매우 재미있게 듣더라. 이곳은 오양동서 거리가 이십 리가 되며 교우의 숫자는 76명이더라.

 

  이곳에서 떠나 이천 덕평이라는 동네로 갔는데 이곳은 4년 전만 해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박해숙이라는 사람이 회개하여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거늘 두 해 전에 서목사께서 온 집안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셨더니 그 후에 이 사람이 동네를 다니며 전도하여 교우를 많이 얻고, 또 서로 연보하여 서양식으로 예배당을 지었는데 매우 아름답게 지었더라. 교우의 숫자는 실제 교우가 142명이요, 아직 학습인이 되지 못한 자가 30여 명이더라.

 

  이곳에서 주일을 보내고 그 이튿날 오천서 하루를 머물면서 저녁시간에 모든 교우를 모아 장로사께서 설교하셨는데 구경꾼들도 많이 왔더라.

  이곳 교우들은 이천 덕평예배당이 가까운 관계로 항상 주일마다 덕평예배당에서 지내고, 삼일 예배는 이곳 교우 중 한 집에서 모여 예배하는데 장차 이곳에도 예배당을 짓겠다고 하더라. 이 동네의 호수는 300여 호나 되는데 지금은 적은 수가 믿으나 장차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삽나이다.

 

  그 이튿날 그곳을 떠나 사십 리를 가니 죽골(죽당)이라는 동네라. 그곳에서 또한 모든 교우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치고 난 후에 몇 사람이 재미있게 간증하며 밤을 보내고 아침에 다시 모여 설교한 후 몇 사람이 입교하였고 또 매우 늙은 노인 한 분에게 세례를 주고, 그날 오후에는 매화지라는 동네로 갔더라.

 

  매화지는 죽골서 십 리 떨어진 동네더라. 그곳 교우들은 보통 때는 죽골로 예배보러 가며 혹 어떤 때는 매화지에서도 주일예배를 보는데 염려가 없는 교우 같더라. 죽골과 매화지 두 곳의 교우의 숫자는 51명이요, 세례 받은 사람이 3명이더라.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독박골로 갔는데 이곳은 매화지에서 십오 리 떨어진 곳이더라. 교우의 숫자는 45명이며 예배당을 아직 짓지 못해서 안선달이라는 교우의 집에서 예배를 보더라. 이날 오후에 장로사께서 설교하시는데 소경이 주를 부르며 좇아오는 것으로 하셨더라.

 

  저녁에 다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한 후 즉시 그곳을 떠나 죽산으로 가서 남녀 교우들을 모으고 밤이 깊도록 성경을 가르치신 후 각각 간증을 했는데 재미가 많더라. 이곳 교우들은 예수를 독실히 믿으며 진실하더라. 교우의 숫자는 25명이더라.

 

  그 이튿날 그곳을 떠나서 용인 아리실이라는 동네로 갔는데, 이곳은 산이 병풍과 같이 뒤편 좌우로 둘러있고 골이 하나 있는데 그 골 안에 30여 호가 살더라. 이곳 교우들이 수년 전 수원 감영으로 죄 없이 몇 사람이 잡혀가서 징역살이를 하다가 다행히 몇 사람은 나오고 한 사람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징역살이를 하고 있으니 매우 불쌍하고 억울한 일이더라. 그러나 성경 마태복음 510절에서 12절까지 말씀에서 예수의 일로 환난이나 핍박이나 만나는 자는 복 받으리라하셨으니 이런 교우들은 복 받을 줄 믿나이다. 이곳 교우의 숫자는 36명이더라.

 

  이튿날은 주일인데 아침예배는 아리실에서 보고, 저녁예배는 장지내로 가서 보았더라. 이곳은 아리실서 십 리가 되는데 교우의 숫자는 52명이더라. 이곳 교회를 위하여 유식한 부인 두 분을 택하여 이곳에서 집을 사서 여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성과가 좋다고 하더라.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그 이튿날 수원읍에 가서 옥에 갇힌 교우를 찾아보고 사랑하는 말로 위로한 후 곧 작별한 후 과천 덕고개로 와서 밤을 지내는데 그 동네 교우들을 다 모아 설교하시고 다음 날 아침 식전에 또 모여 기도한 후 작별하고 서울로 올라오니라. 과천 교우 숫자는 62명이더라. 이곳에서도 장차 예배당을 설립한다고 하더라.

 

  이번에 전도 된 사람은 171이요, 입교인이 5명이요, 세례 받은 사람은 4명이라. 여러 교회를 도우사 교회가 부흥케 하시는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옵나이다.

 

(신학월보, 121901. 1.)

 

 

복정채에 대한 이야기(2)

 

  담방리 교우의 믿음의 새 역사

 

  삼년 전(1897)에 우리가 촌으로 전도하러 다닐 때 하루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나도 예수 교인이 될 것이라

하느니라. 그 사람의 처지를 알아보니 참 불쌍한 사람이더라.

   그 사람은 집도 없고 살림살이도 마련하지 못하여 식구 네 명이 따로 살고 아들은 남의 집에 머슴으로 살며, 며느리는 또 다른 집에 의지하여 있고, 부모 두 분은 조그만 장사 봇짐을 지고 다니면서 얻어 먹고, 혹 어떤 때는 굶고, 추운 때는 잠잘 곳이 대단히 어려워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어찌 살림살이가 되리오. 혹 장사하여 돈푼이나 있으면 술 마셔 버리니 가난한 중에 더욱 어렵게 되니라. 이와 같은 형편에도 짐 속에 우상 상자 하나를 넣고 다니니 집안 귀신을 가득히 담았더라.

   그 사람이 가난한 중에도 귀신은 정성으로 섬기니 먹고 마실 것이 있으면 먼저 귀신에게 드리고 그 후에 자기가 먹으며, 또 이 귀신들을 공경하며 섬김으로 살림살이가 회복되어 집도 얻고 가족들을 다시 모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재미를 바라고 있었더니 정성되이 섬길수록 점점 살기가 어렵게 되었도다.


  얼마 후에 예수씨의 복음을 듣고 그 아름답고 밝으심으로 감동되어 예수를 믿어 우리 담방리 교회에 입교하기를 청하였느니라.

  처음 믿을 때에 걱정하기를,

  “집이 없어서 귀신을 불사를 곳이 없으니 어찌하리오?”

하더라. 우리(복정채)가 말하기를,

  “지금 우리 집 마당으로 가져와서 그냥 태워 없애면 될 뿐이라

하고 그 일을 도와주었느니라.

  그 사람은 무지하여 그 동안 지은 죄를 크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느니라.

 

  그때부터 하나님의 법을 지켜 술도 끊고 내외가 주일을 온전히 지켜서 춥고 더위도 빠짐없이 교회를 다니니 그때야 살림살이를 회복케 되었느니라. 일년동안 오십 이주를 빠짐없이 지키는데, 장사가 더 잘 되어 집도 사고 가족도 같이 살게 되어 사는 재미를 맛보았느니라. 그뿐 아니라 술 먹고 못된 짓을 함으로 쓴 돈을 다시 얻게 되니 네 식구가 먹을 뿐 아니라 남는 돈도 있어서 이 형제가 교회에 연보하기를 앞장서더라.


   그래서 이제는 교회의 기둥이 될 뿐 아니라 동네에서 전도하여 믿는 사람이 두 집 더 되었느니라. 이것은 타국에서 한 일도 아니고 옛날이야기도 아니니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니라.

 

  이제 이 형제와 같이 살림이 망하고 정처 없이 다니는 사람이 대한에 많으니 만일 그들도 회개하여 예수를 믿으면 어찌 이 형제와 같이 되지 못하리오. , 귀신을 숭배하여 심지어 짊어지고 다니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밥 고사를 삼아 밤낮 빌어도 은혜를 얻지 못하고 효험을 바랄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이치니라.

  또 생각하여 보건대 보이는 마귀를 불사름이 속 마귀를 내어 쫓는 표적이 되느니 대대 이 형제가 짊어지고 온 마귀와 더불어 마음의 마귀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내어 쫓았느니라.

 

  또한 생각할 것은 술 먹고 주일 날도 돈 벌겠다고 설친다고 다 돈 모으면 아무 사람이라도 부자가 될 것이라. 대개 주일 날 얻은 돈은 저주 된 돈이니 가히 얻음이라 못하며 오히려 재앙을 느릴 돈이니라. 주일 날을 거룩히 지키라. 누가 감히 넷째 계명을 지키지 않으리오.

 

  이제 귀신에 비는 자들이 주위에 있으면 권면하여 귀신에게 빌기를 그만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 하라.

  그리고 영혼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더욱 많으니 강권하여 이르기를 예수 가라사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너희 마음이 편히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더라.

 

(신학월보, 131901. 2.)

 

 

이은승에 대한 이야기(2)

 

  경기도 남동지방 전도행전

 

   19001229일은 곧 음력 118일이라. 이때에 성신의 감동 주심을 받아 시장로사의 허락을 얻어 17일 동안을 시골 몇 곳을 다녀왔으니 길에서 성령의 음성과 교회 등의 형편을 본 대로 대강 기록하나이다.

 

  내가 비오는 날 아침에 걱정되는 마음을 정리하고 동쪽을 향해 떠나갈세 동행은 예수씨요 양식은 복음이라. 마음으로 이야기하며 점점 나아가서 동문 밖을 나서 보니 총총한 집들은 마귀의 권세 밑에 있어 곳곳에서 나는 장구소리, 굿소리는 나그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며, 오고 가는 발자취는 다만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뿐이라, 어찌 한탄할 곳이 아니리오.

발걸음을 재촉하여 왕십리에 당도하니 총총히 쓴 무덤은 수를 헤아리지 못하겠는데, 이것이 모두 이전에 썩어질 양식만을 위해 수고하고 병 없이 태평하고 오래 살기 위하어 굿하던 사람의 무덤이라.

슬프도다, 그 무덤은 죽기까지도 예수를 싫다고 하던 무덤도 있을 것이요, 믿기는 믿거니와 진실히 회개하고 돌아오지 못한 자도 있을지로다. 성경에 이르기를,

이제는 너희를 구원할 때요, 오늘은 너희를 구원할 날이로다

하였거늘 어찌하여 이 말이 사람의 마음에 박히지 못하여 모든 사람이 스스로 낭패함을 보는고, 탄식하며 가다가 보니 죽은 무덤도 불쌍하거니와 산 무덤이 더욱 불쌍하도다. 슬프다. 이 사람들 구원할 이는 나와 동행하시는 예수시건마는 어떻게 이 사람들로 믿게 할꼬? 머리를 뚫고 넣어줄까, 배를 열고 넣어줄까? 이것은 다 쓸데없는 생각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으로 믿지 아니하면 쓸데없는 일이로다.

이런 생각으로 어느덧 마장(서울 마장동) 너른 들에 당도하니 싯구가 자연히 생각나는지라. 그 시를 소개하면 이러하도다.

 

농부가

 

                                       *

누천여년 묵은밭이 삼천리에 가득하니

몇농부의 쟁기질로 어찌일시 개간하리

각농부가 한일양식 주인처분 얻는대로

몸과마음 다드려서 일경백묘 하여보세

오호동린 형제들아 서린노농 본을받아

황천풀은 길을덮고 개간한밭 굳어지네

 

                                       **

일취월장 하온후에 아름다운 열매맺세

기별없이 순식간에 도적같이 임하시네

서평밭에 심은씨는 벌써넝쿨 번성하여

쉬지말고 힘다써서 좋은씨를 널리펴세

굳기전에 파종하고 파종한후 물을주세

논밭주인 오실날은 정함없이 가셨으니

 

                                       ***

알곡들을 많이거둬 주께영광 돌려보세

결실함이 풍성하니 주인오기 기다리네

주를앙망 하는이는 헛수고를 아니하네

밝은햇빛 받는대로 좋은우로 먹는대로

주인없는 이동안에 경건하여 일다하세

주위보좌 우편서서 예비하신 나라받세

 

  그 길로 광주로 가서 노루목 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니 동서남북에 수천 명의 인구가 십리 안팎에 거주하고, 장대한 산악은 성곽같이 둘러있고, 잔잔한 시냇물은 띠와 같이 둘렀는데 수십 리 되는 평야는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동에는 이천읍이 있고, 남에는 오천역이 있으며, 그 가운데 빽빽한 수림은 목책같이 산을 둘렀으며 멀리 서서 바라보니 어렴풋한 촌락은 안개 낀 바다 위에 군함을 띄워 놓은 듯 하고 우뚝한 봉우리는 용맹한 대장군이 선봉으로 나오는 듯 하여 참 산 모양도 기이하고 들판도 광활하니 그야말로 주님의 손재주를 더욱 나타내셨다 할 만하도다.

  이 광경을 보고 사람의 마음이 어찌 감동하지 아니하리오.

  산을 보니 마태복음 524절이 떠오르고, 물을 보니 요한복음 738절이 생각나는도다. 경치는 이같이 좋거니와 이곳 인민 중에 누가 복이 있어 세상 사람들에게 산성과 같이 드러낼 자이며, 이 물을 마시되 누구가 복이 있어 기리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께 나아와 마실 자뇨? 누가 배에서 생수가 시내와 같이 흐름을 얻을 자인고,

  마음으로 한탄하면서 가며 바라보니 빽빽한 수림 위에 깃발이 휘날리어 눈을 씻고 자세히 바라보니 우리 구주의 세상 구원하신 생명나무 곧 주의 십자 깃발이라. 이 깃발을 보니 온 세상을 이기신 기상이요, 또한 세상을 다스리는 호령소리도 나는 듯하며, 바람을 쫓아 날리는 모양은 동방에 빛나던 별이 박사를 인도하여 유대 왕으로 나신 아기집을 가리킨 것 같이 나를 인도하여 주의 교훈대로 다시 아기 되기를 공부하는 구영연씨의 집으로 인도하니 이 집은 수년 전에 주께서 택하시고 친히 세워주신 성전이라.

 

  기를 보고 기뻐하여 들어가 온 식구로 함께 주님께 감사하였으며, 이날 밤에 모든 교우들과 함께 기뻐함으로 상봉하고 이곳에서 삼일 동안을 지내며 교우들을 공부시킬세, 다 잘하는 이도 있고 또한 공부하는 이도 많은 중, 이상한 일 하나를 보았더라. 그곳에 참석한 한 소년이 말하되,

  “나는 믿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믿는데 우리 아버지가 외출 중이라 대신 왔습니다

하니 이 일로 보건대 이곳은 옥토와 같이 좋은 곳이라. 만일 이 때를 잃지 않고 힘써 전도하면 이곳은 경기의 중앙 전도처가 될찌라. 대개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다 싫어하는 바요, 또한 이 소년은 바보도 아니요 똑똑한 사람이라, 어찌 어디인지 모르고 왔으리오. 이곳은 과연 깨끗한 밭이라. 때 묻기 전에 일할지니라.

  그뿐 아니라 아비 된 이여, 자식에게 예수를 증거할지어다.

  먼저 믿는 식구들이여,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예수를 증거할지어다. 대개 우리 주는 한 사람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믿는 자의 구주시라.

  또 구원은 풍성하오이다. 만일 누구든지 우리 교회의 도리를 자세히 알았으면, 어찌 입을 다물고 있으리오. 이는 도리를 모르는 연고로다.

  그러나 한 튼튼한 믿음이 있사오니 이 동네에서 구영연부자분과 김원백씨가 이번 사경회에서 교회의 도리와 성경과 장정 규칙을 배우셨으니 이제는 그 근처에 예수를 모르노라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나이다.

 

  다시 걸음을 옮겨 오양동 교회에 이르러 형편을 살펴보니 심산유곡에 한 동네가 있으니 깨끗하고 한가한 은둔의 자리로다. 사면을 살펴보니 태산이 앞을 가려 세상에서 쌓던 일은 산 밖에 버려두니 다만 보이는 것은 깨끗한 하늘이라.

  기묘하다, 이 동리여, 세상에 머물지 않고 주께 있는 형제들이 예배하는 곳이로다. 안산에 늙은 소나무에도 이제는 제사지내는 사람 없어지고 동구 앞 성황나무에도 물 한 사발 주는 이 없어 슬픈 모양 머금은 듯 잎사귀에 바람소리 원통함을 아뢰는 듯하더라.


  그래서 청한한 이 동네는 우리 주를 섬기는 자의 적합한 요지로다.

  마음 속 세상사 모두 막고서 주님과만 함께 하면 이에서 큰 복이 어디 있으며 주님의 보좌 앞에 마음을 열어놓고 주께서 주옵시는 신령하고 오묘하고 능히 말할 수 없는 모든 보배를 쌓아두면 견딜 수 없이 기쁠 것이요, 예수로 우리 마음을 항상 지키면, 이 보배를 뉘 능히 빼앗으리오.

 

  이 동네로 들어가니 윤봉연씨의 집이 예배당이 되었는데 방인즉 단칸뿐이라. 가던 밤에 모든 교우로 함께 예배하니 남녀 교우들이 기쁜 마음으로 다투어 간증하니 간증은 과연 주께 받은 데서 나오는 말이라. 간증하는 법을 배우지 아니하였으나 다 기쁨으로 간증하니 법 없이 법을 이루더라. 참 재미를 많이 보았고 또 그 열심들이 나로 하여금 방 좁은 것을 잊게 하였으니 폐회한 후에 남녀 교우를 헤아리니 36명이더라. 이는 참 성신의 감동하심이라.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옵나이다. 이곳에 이틀을 머물며 세례문답과 예수서적을 공부하니라.

   원컨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곳에 큰 회당이 설립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걸음을 옮겨 동심리교회에 닿아 그곳 형편을 살펴보니 이곳 교회에는 주장하여 열심히 믿는 민대식이란 교우가 있는데 본래 세상 고락을 많이 겪은 이더라. 주를 믿은 후에 마음이 더욱 온유하고 겸손하여 자기 종을 자식 같이 사랑하며 성경을 힘써 가르치고 한 방에서 함께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며, 또한 아이들을 모아 찬미가로 한글공부를 시키고 노인이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니, 다시 아이 마음을 공부하여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증거를 보겠으며, 또한 인근 동네 교우를 권면하여 유익하도록 힘을 쓰니 참 기쁘며 문답도 힘써 공부하니 내외분이 대답에 과히 막히지 아니하며 주일을 당하면 자기 집에서 아침에는 오양동 교우와 함께 예배하고 저녁이면 오양동에 가서 예배를 참석하니 이곳은 거리가 십 리 가량이라. 그러나 다만 원하옵기는 예수가 항상 그 교우로 함께 하시고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이제 걸음을 이천으로 하여 오천교회로 갔더라.

  이곳은 이천 일대에서 일등 가는 큰 동네라. 호수는 삼백 호나 되는데 벌써 예수를 믿기 시작한 자 50명이라. 이곳서 이틀을 머물며 가르칠세, 처소는 한규동씨의 집이라. 교우는 많고 방은 척박한고로 밖에 서서 듣는 자들이 추위를 생각지 않고 다만 예수를 더 알기 위하여 밤새도록 가르쳐 달라 하니 참 기쁜 말이로다.

 

  이곳에서 떠나는 것이 마치 주린 자에게 밥을 주지 않고 가는 것 같아 도리어 섭섭하더니 마음이 견고하고 믿음이 튼튼한 교회의 기둥이 될 만한 한규동씨 부자와 이연손이 이번에 우리 도리를 잘 배웠으니 내려가서 배운 대로 모든 주린 자들에게 배부르도록 나누어 먹이기를 원하노라. 또 이곳에 큰 교당 세우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옵소서.

 

  다시 덕들교회로 가서 살펴보니 이곳은 재기발랄한 소년과 같이 열심도 있고 한마음도 되어 한 번 부르기만 하면, 모든 교우가 일시에 모여드니 참 그리스도 군대의 진중의 규모인 듯하며 교회당에서 엄숙한 모양과 단정한 태도는 과연 믿는 자의 행실이라.

  오직 교회 도리를 잘 깨닫지 못하고 참 경건이 부족하여 매우 원하였더니 이번 사경회에 속장 박혜숙씨와 또 큰 여성 안성순이가 올라와서 교회 도리와 예수사기와 장정규칙을 잘 공부하였으니 참 기쁘도다.

  이 형제들이 내려가면 모든 교우들의 마음을 주의 능력으로 낡은 것을 끝내게 될 줄을 정녕 믿고 바라노라.

 

(신학월보, 14190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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