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을보리

1897년 무성해지는 가을보리 들판

솔석자 2016. 6. 11. 18:32

1897

무성해지는 가을보리 들판

 

 

교우 도명운씨가 평양 서문안 회당에 가서 본즉 남녀회

원 수백 인이 한  마음으로   합력하여 큰 예배당을 우물

정자  모양으로 지었는데 간수는 십육 칸이나 되고 유리

창을 좌우로  여섯 개를 달았더라…  이  회당과  학당을

지을  때에  서양  목사의 돈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본국

교우들이  각각   연보하기를 힘쓰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몸으로  가서  역사를  진심껏하여 일을 이루게 하였으니

누구든지  일심으로  무슨  일을  하면 참 성신의 도와

                                     주심을 받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줄 알 것이오

 

                                -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중에서 -

 

 

 

                                2월  2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창간

                              5월   2일      남감리회 고양읍 교회 설립

                              5월   5일      엡윗청년회 조직(연환회)

                              617일      남감리회 광희문 교회 시작

                              7월   8일      이승만, 배재학당 졸업

                              910일      남감리회 조선 지방회 조직

                             1011일     국호를 대한으로 고침

                             12월   8일     남감리회 조선선교회 조직

                                                동대문 부인진료소 설치

 

 

윤치호에 대한 이야기(14)

 

  북쪽으로 지경을 넓히는 일꾼

 

  1897년 정월 윤치호는 파리에서 불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콜리어 선교사와 함께 귀국했다. 그는 그동안 기도했던 선교의 일이 이제 하나씩 이루어지자 몹시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윤치호는 2월에 콜리어와 리드를 동반하고 개성을 시찰했다.

  그리고 교회, 학교, 병원 등을 세울 계획을 하는 한편 그의 이모부 이건혁씨를 소개했다. 이씨는 건실하고 유력한 인사였기 때문에 남감리교회의 선교활동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선교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그해 9월 개최된 제1회 조선지방회에서 콜리어를 개성 개척선교사로 임명하면서부터이다.

 

(유동식,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1)], 참조)

 

 

남감리회의 첫 전도인 김선달과

김흥순에 대한 이야기

 

  남감리회 리드 선교사가 조선에 파송되자 먼저 나와 기반을 닦고 있던 미 감리회의 상동교회 스크랜튼 선교사가 상동교회 교인인 김선달(본명: 金周鉉)을 소개해 주었다. 리드의 조수가 된 김선달은 착실한 일꾼이어서, 리드는 그를 전도하는 매서인으로 만들었다. 김선달의 친구 김흥순도 매서인으로 리드 목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들의 첫 선교지는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읍이었다. 거기에서 전도한 결과 189752일에는 남감리교회의 첫 조선교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72일 파주교회가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유동식,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1)], 참조)

 

 

조선의 삭개오 백사겸에 대한 이야기

 

  조선의 삭개오 백사겸은 조선의 첫 남감리교회인 고양교회의 창립과 더불어 기념할 만한 인물이었다.

  1860년 맹인으로 태어난 백사겸은 유명한 점쟁이로 성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복술로 재산을 모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선달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1897414일에는 그의 전 가족이 리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후 그는 자신의 소유가 모두 복술로 사취한 재산이라 하여 이것을 방매처분했다. 돈 삼천 냥 가운데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유용한 데 쓰려고 했지만, 불행히도 그 돈을 모두 도적맞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유동식,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1)], 참조)



 

가장 위대한 유산

 

   용인회당 엄석현의 어머니

 

   미국 선교사 해리슨씨 부인과 조선 이씨부인과 교우 도명운이 조선 부인을 위하여 수원과 용인에 있는 회당을 갔더니, 교우 엄석현의 모친이 성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어 그 근처 교우가 많이 정신 차리고 깨우쳐, 집안의 목주와 토주와 삼신 항아리를 다 불사르고 또 이웃집에서 위하는 잡신들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말하여 많이 회개가 되었더니 이달 초순에 우연이 병이 나서 위독하여 그 아들 석현이가 대신 기도하여 병이 나으매 수일간을 잘 다니다가 다시 위독하여 지매 세례 못 받은 것을 매우 원통히 말하며, 그 아들을 불러 내가 죽은 후에 내 세례를 네가 받고 예수를 단단히 믿으라고 유언하고 세상을 떠나니 보고 듣는 사람이 누가 슬퍼하지 아니하리오.

  여러 교우가 와서 장사지내고 교회에서 돈 백량을 거두어 주었다더라. 이 글을 보는 사람도 공부하여 세례받기를 바라나이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51897. 3. 3.)

 


경축 대군주(고종) 폐하 환어라*





평양 서문안 아영동 미이미(감리)교회 학생들이

대군주 폐하께서와

왕태자 전하께서 이월 이십일에

경운궁으로 환어하옵신 회보를 보고

삼월 일일에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학당에 모여

국기를 세우고

오색 등불을 달고

만만세를 부르며

애국가를 부르며

일제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 대조선국이 동양에 유명한 나라가 되고

성수무강하기를 경축하면서

밤새 다니며 모르는 백성을 알게 하고

감사하는 뜻이 충만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71897. 3. 17)

 

* 편저자주: 평양 서문안 아영동 감리교회 학생들이 고종황제와 왕세자가 일본 낭인들의 민비시해 사건 이후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였다가 경운궁으로 환궁한 것을 감격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다.


  


손순옥의 마지막 부탁

 

 

  달성회당* 교우 손순옥은 입교한 지 사년이오 나이는 육십 이세라. 입을 열면 구주의 십자가를 말하고 앉은즉 손에 성경을 놓지 않고 교우와 더불어 권면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다 얻음이 분명하다하더라.

  그러나 작년에 갑자기 세 동생을 잃어버리고 또 이어 두 자제를 앞세우고도 너댓 식구를 위한 가장의 역할을 하매 근심이 얼굴에 가득하고 생각이 복잡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하더니, 하나님 앞에 기도를 간절히 하더니 성신의 은총이 충만하여 정신이 전보다 백 배나 총명하여져 신약문답을 죄다 외우고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여져 모든 것을 감사하며 지내더라.

  그리고 어버이 사랑과 나라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어 분명하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힘 자라는 데까지 극진히 도와주며 물건을 사는데 에누리가 없고 거래에 분명함으로 주의 영광을 빛내더니, 양력 이월 이십팔일 주일에 양천 개안모루*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은 곧 진갑날이라, 먼 길을 무리하게 다닌 관계로 병이 나서 그 병이 점점 심해짐으로 친척이 약으로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효과가 없으매 그가 하는 말이 깨끗한 가운데 더러운 세상 약으로 추하게 함이 마땅하지 못하니 목사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성찬이나 즉시 받게 하여 달라고 거듭 부탁하고 찬미와 기도로 낮과 밤을 지내니 목사님은 수원, 용인 등지에 전도를 가신 때문이라.

  삼월 십이일에 세상을 떠나되 즐거운 마음뿐이요, 그 밤에 한 교우의 꿈 중에 주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며 후일에 만나기를 부탁하였으니 우리 보기에는 천당 가는 증거가 분명하더라. 교우가 다 가서 찬미와 기도로 예배하고 상여와 관은 교회에서 담당하고 십육일에 예배당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용산 땅에 안장할 때에 미국 감리교회 시 목사*가 집례하고 교우 육십 여명이 몹시 슬퍼하여 갈 길을 찬미하며 천당 가는 영혼을 위로하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81897. 3. 24.)

*편저자주: 달성회당- 현재 서울 상동교회

*편저자주: 양천 개안모루- 현재 강서구 등촌동 근처

*편저자주: 시 목사- 스크랜튼의 조선 이름 시란돈(施蘭敦)의 성




새로 난 사람들

 

   잔다리* 교우들이 힘을 합쳐 예배당을 지으려 하는데, 아랫 잔다리에서 터를 잡아 여섯 칸 집을 벌써 세워 거의 마무리 단계이고 이른 봄에 마무리만 되면 예배를 시작하겠다더라.

  이화학당 여자 교우 중에 한 부인이 있는데 입교한 지 오년이요 나이는 이십오세라. 입을 열면 하나님을 찬송하고 앉으면 구주의 십자가를 말하고 교우와 더불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월 이십일일에 우연히 병이 생겨 도무지 낫지 아니하니 병원으로 가서 치료하되 병이 점점 심하여져 회생하기가 어려울 듯하더니 구세주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병이 점점 쾌차하여 지금은 온전하게 되었으니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제물포 교회*에는 작년 연환회 이후로 학습인이 삼십 오인인데 그 중에 세례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이 있고 세례받을 만한 사람도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교우는 작년 섣달에 교회에 들어왔더라. 근본이 술에 취하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이 술을 일절 아니 먹으니 가족들이 하는 말이 예수교는 참 사람 고치는 교라하면서도 예수를 못 믿게 비방하되 이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독실히 믿고 신주를 내다가 불태우려 하매 친족들이 빼앗아 갔다니 이런 사람은 참 새로난 사람일러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101897. 4. 7.)

 

*편저자주: 잔다리- 서울 마포구 세교동(웃 잔다리- 동교동, 아랫 잔다리- 서교동)

*편저자주: 제물포 교회- 현재 인천 내리교회




 

 

서로 기도하고 돕는 일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요, 백성의 근본은 농사요, 농사의 풍흉은 비와 이슬이 적중한 데 있고 우로의 은택을 주사 만민으로 하여금 살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사람들이 그 은혜를 감사하지 아니하고 항상 죄를 짓는 고로 하나님의 노여움이 그 위에 계신지라.

  인도국은 무슨 죄로 흉년이 들고 재앙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거니와 작년에 비가 오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더라. 근일에 소문을 들으매 우리 조선도 가뭄으로 곡식과 채소들이 다 타서 백성의 근심이 분분하고 비 오기를 날로 바란다 하니 우리가 듣기에 실로 안타까울 뿐이더라.

 

  일전에 여교우 하나가 종로 회당에 와 말하되 지금 가뭄이 막심하고 하지가 벌써 지남에 농사하는 백성의 사정이 가련한지라. 우리 교중 형제들은 날마다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하고 인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였으니 이러한 교우는 참 형제 사랑하기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라. 우리들도 이 백성을 위하여 참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기를 바랄지니라.

 

  인도국 인민에게 연보한 일

 

  우리가 우리 회보에 인도국 흉년 든 실상을 대강 게재하였더니 모든 분들이 불쌍한 마음으로 연보금을 계속하여 모아 보냈으니 진실로 치사할 만한 일일러라(연보금 수입).

  이화학당 여교우들이 칠원 사십삼전이요,

  종로 대동서점에서 칠십 일전이요,

  외국 부인이 이십 오원이요, 또 오원이요, 또 오원이요,

  배재학도들이 연속하여 수입한 것이 이원 오십삼전이요,

  요전에 수입한 것은 일전에 인도국 을럭 지방에 있는 미이미 교우 중 한 분에게 보내었으니 이 돈도 또한 그분에게로 즉시 보낸 터이요,

  평양 교우들도 인도국의 백성을 위하여 은화 십원을 보조하였기에 우리가 전과 같이 보내거니와 각처 교우들이 그동안 매우 힘써 보조하였기에 다시는 더 기대하지 못했더니 이 교우들이 못내 인도국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때를 불문하고 이같이 보조하였으니 우리가 더욱 감사하노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211897. 6. 23.)

 

 

 

참 믿음

 

   

  이무영의 신앙

 

  지금 궁내부* 물품사장으로 있는 이무영씨는 우리 교회 중 사랑하는 형제라. 음력 유월 이십 구일은 그 대부인(어머니)의 대상(1주기) 날인데 그 형제가 망극한 마음과 지난 일의 회포를 억제할 수 없는지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구세주를 믿은즉 다른 사람과 같이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 지낼 수는 없거니와 부모의 대상을 당하여 효자의 마음이 어찌 거저 지나가리오.

  이에 교회의 여러 형제를 청하여 모시고 대청마루에 등불을 밝혀 달고 그 대부인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며 예배드렸더라. 그리고 대부인이 생존하여 계실 때에 하나님을 섬기던 모습과 신앙으로 권면하던 말씀과 현숙하신 모양을 생각하며 한바탕 통곡을 하니 교우들도 이무영씨를 위로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함께 밤을 지낼세, 그 모친을 위하여 참 마음으로 생각하는지라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이후에 다른 교우들도 부모의 대.소상(추모일)을 당하면 또한 이무영씨와 같이 하기가 쉬울 듯하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281897. 8. 11.)  

 

  

*편저자주: 이 때의 시대적 상황이 전통적인 유교의 의식 속에서 제사에 대해서 철저하던 때였다. 그러나 관직에 있는 신분으로 주위의 모든 제약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자기 어머니의 1주기 큰 제사를 추모예배로 드리는 신앙적인 결단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관직과 집안으로부터 받을 온갖 어려움을 다 감수하고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그의 모습은 진실로 거룩하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참된 효도였다고 생각된다.

 

*편저자주: 궁내부- 황실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불교인에게 전도한 일

 

  전도자 이승은에 대한 이야기(1)

 

  시골 여러 곳을 다니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수목은 무성하고 산악은 험악한데 풀 속에 희미한 좁은 길이 있는지라. 좁은 길을 십여 리 정도 들어가니 길도 차차 넓어지고 멀리 보이는 문도 또한 넓은지라. 마음에 생각하되, 적은 죄인이 큰 죄에 빠지러 가는 길인가 의심하여 두루 살펴본즉 다른 길은 없고 그 길로 갈 수밖에는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들어가니 이것은 만의사라는 큰 절인데 참 지옥 갈 자들이 지옥 간 자들을 섬기는 곳이라. 마음이 불붙듯 하여 중들을 다 모으니 남승이 칠인이요, 처사가 사인이요, 보살이 일인이라. 다 모은 후에 하나님께 축원하고 우선 십계명의 제이계명과 요한복음 삼장 십육 절부터 이십 일절까지를 보고 말한 후에 중들을 살펴보니 안색이 떨떠름하여 마음이 찔리는 듯한 모양이라.

  이은승이 더욱 손을 흔들며 소리 질러 말하여 형제들아, 저것은 다 쓸 데 없는 우상이니 섬기면 점점 죄를 더 지으려니와 유일무이하시고 참신 되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오늘날까지 부처 섬기던 죄까지라도 다 사하심을 얻으리라. 형제들이 지금 지옥에 결박되어 갇힌 것을 보니 참 답답하도다. 지옥은 곧 절이요 죄는 곧 부처라. 어찌하여 여기에 빠져서 계속 있으려 하느뇨?” 하니 중들은 기쁘게 듣는 모양이나 부처에게 든 정을 떼지 못하는 눈치가 있고 한 칠십 된 보살이 이 말을 듣고 나아와 원컨대 손님은 이 절에서 쉬면서 이 좋은 말씀을 더하여 주옵소서하는지라.

 

  이은승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그곳을 떠날 때 보살이 섭섭한 마음이 간절하여 계단 아래까지 따라나와 전별하며 나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오니 나로 하여금 이 다음에 또 한 번 말씀 듣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여 주소서하더라.

 

  그 절에서 떠나 뒤를 돌아보니 또 한 길이 눈에 보이는지라. 차차 올라가니 이 산은 그곳 사람들이 아흔아홉 구비 되는 바사리 고개라 하더라. 그 고개를 올라가다가 마음에 얻은 것이 많이 있으니 이것은 진보된 경지요 또 비유라.

  그런고로 시골 여러 곳을 다닌다 함은 곧 이 세상에 두루 행한다는 말이요, 좁은 길로 들어간다 함은 교회에 들어왔단 말이요, 십여 리를 더 들어간다 함은 몇 해가 걸렸다는 말이요, 차차 길이 넓어진다 함은 시험이 차차 생긴다는 말이요, 할 수 없이 큰 길로 간다 함은 시험받을 수밖에는 할 수 없다는 말이요, 절 이름이 만의사라 함은 시험에 빠지매 만 가지 의문이 생긴다는 말이요, 지옥 갈 자들이라 함은 세상 악당들을 가르쳐 한 말이요, 요한복음 삼장 십육 절로 전도하였다 함은 예수의 은혜와 성경으로 마귀 시험을 이기었다 함이요, 절을 떠나니 한 길이 눈에 보인다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사 시험 중에 한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이니 고린도전서 십장 십삼 절을 보시오. 아흔 아홉 구비 어려운 고개라 함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한 번 회개한 후에 다시 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행하는 일에 시험 고개가 많다는 말이오니 누구든지 스스로 간증들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311897. 9. 1.)  



 

 

대군주(고종)께 성경을 드린 일

 

  재작년(1895) 가을에 대행황후(조대비) 계실 때에 궐내에 잔치를 배설하고 서국 부인들을 부르사 연향하실 때 정동 보구여관 병원에 있는 여인 교우 한 분이 서국 부인과 함께 입시하였더니 능히 서국 말을 통함으로 왕후께서 매우 사랑하시고 좌우에 있는 궁녀들도 서로 친한 사람이 있는지라.

  금년 대군주 폐하 만수 성절을 맞이하여 그 여 교우가 금자 놓은 신약 한 권과 홍비단으로 표지를 싼 찬미가 한 권을 친하였던 궁녀에게 주어 공손히 대군주께 드리라 하였더니 폐하께서 받아 보시고 기뻐하사 좌우에 함께 한 신하에게 주시며 공부하라 하시니 하나님의 빛이 대궐에 비췸을 볼너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311897. 9. 1.)

 

 

엡윗청년회 이야기(1)

 

  엡윗청년회의 시작

 

  성경에 가라사대 두 사람이 서로 도와주면 이기고, 노끈이 세겹이 된즉 끊기가 쉽지 않다’(4:9-12)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 엡윗청년회의 동심 합력하는 본 뜻과 같도다. 어찌하여 그 이름을 엡윗이라 하였느뇨? 의미 있는 이름이니 엡윗을 주후 1739년에 감리교회를 창설하신 요한 웨슬리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영국의 한 지명이더라. 어찌하여 그 지명으로 청년회를 시작하였는고 하니 그곳은 곧 요한 웨슬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난 땅이라.


  청년들은 무론 남녀하고 노인에 비하여 기력이 강건하며, 심사가 활발하고, 열심도 있는 고로 무슨 일이든지 합력만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지라.

  그런고로 노인들은 뒤로 잘 보살펴주고, 청년들은 앞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면 교회가 크게 진전되고 흥왕하여 갈 것이라. 사람의 힘만으로는 오랫동안 그 일을 유지하기가 도저히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성신의 도우심을 힘입어 일 주일에 한 번씩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기도회를 실시하였으니, 이 회가 처음으로 시작되기는 1888년이요, 세계 각국에 없는 곳이 없으며, 중앙회는 미국 시카고에 있고, 총재는 곧 4년전에 오셨던 나인듸 감독이라.

  그리고 조선에는 189755일 제 13차 연환회에서 죠이 감독이 시작하기를 결정하였으며 위원들은 도원시* 목사와 노블* 선교사와 부인 페인*씨로 하였으며, 대조선 중앙회 회장은 도원시 목사로 특별히 정하였더라.

  진실로 이 회는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제물포 전도인 김기범 권사와 배재학당 교관 노병선씨와 달성회당 전도인 이은승 권사를 주사 합력하게 하셨으며 또한 임원과 국장들과 회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게 되면 이 회가 일취월장하여 대대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줄을 진실로 기도드리노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341897. 9. 15.)

 

*편저자주: 도원시(趙元時, G.H. Jones)

*편저자주: 노블(魯普乙, W.A. Noble)

*편저자주: 페인(Mrs. Paine)

 

 


제물포(내리)교회와 달성(강동)교회 엡윗청년회 창립

 

   95일은 주일인데 오후 2시에 남대문안 달성회당(현 상동교회)에서 엡윗청년회를 창립하였으니, 제물포 목사 도원시씨가 회의를 진행하여 회원 중에 임원을 선택하고 여러 회원 앞에서 청년회 규칙을 읽고, 회원은 반드시 교인 중에서만 구성하도록 하되 15세부터 35세까지 허입(許入)하고 회의는 매주일에 한 번씩 모여 의논하되 매주 목요일로 결정하니 달성회당 회원은 44명이더라. 인천 제물포교회에서도 또한 창립하였는데 회원이 28명이요, 정동교회에서도 장차 조직한다 하더라. 이때 상동교회 엡윗청년회의 회장은 이은승 권사가 되었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331897. 9. 8.)



 

윤치호에 대한 이야기(15)

  

   시월 삼일(음력 구월 팔일) 주일에 처음으로 정동 새 회당에서 예배드렸는데 달성회당(상동교회)과 동대문안 회당(동대문교회)에 다니는 형제들과 이화학당 자매들이 다 모여 남녀노소가 여러 백 명이나 되더라. 아침 열 시에 시작하여 거의 열두시 되어서야 끝났더라.

  오후 두시에 다시 모였는데 전 협판 윤치호씨가 회당의 세운 뜻에 대하여 연설하기를 동양의 다른 종교들은 학자가 산림에 숨어서 홀로 자기 일신만 착하게 하는 교도 있고, 산 속에 절을 짓고 세상 사람을 상관지 않는 교도 있으니, 이 교들은 다 세상 물욕에 쫓겨 가는 종교로되 우리 그리스도 교회는 경성 안 제일 번성한 네거리에 회당을 설립하고 좋은 성경 말씀으로 내왕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니 우리 교는 참 세상 물욕을 쫓아내는 교라고 매우 강조하여 말씀하였더라.

   제손씨가 뭇사람들을 권면하되 개명한 나라의 율법과 정치는 다 성경에서 나온지라. 우리나라 백성들도 속히 성경의 교육을 받아야 남녀간에 서로 의심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요, 잡신 우상을 섬기는 폐가 없을 것이니 교우들은 교회에서 행하는 일을 밖에 나가서도 행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잘 되리라하고 말씀하니 듣는 사람이 다 귀를 기울이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371897. 10. 13.)

 

 

독립 경축회(대한제국의 시작)

 

   윤치호와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대한국 광무 원년 십일월 십일일 상오 열한시에 각부대신 이하 여러 관원들과 독립협회 회원들이 독립관에 모여서 대조선 대군주께서 대황제 위에 나아가심과 국호를 대한이라 하신 뜻으로 축하연을 열게 되었더라.

  그곳에는 전국 백성의 경축하는 기쁜 마음을 표시하여 독립관 앞에는 푸른 소나무 가지로 홍예(타원형)문을 세웠으며, 노란 종이에 대한독립경회라는 여섯 글자를 오려 붙이고 양편에 태극기와 협회기를 세웠더라. 그리고 차일을 높이 치고 마당에는 멍석과 돗자리를 깔았으며, 의자 수백개를 정리하여 놓았는데 모인 사람으로 가득하더라.

  회장 안경수씨가 개회한 후에 외부대신 조병식씨가 연설하되 우리 무리가 지금 대한국 대황제의 신하와 백성이 되었으니 참 나라를 위하여 오천년 만에 경축할 일이라고 하였더라. 이어서 외부협판 유기환씨가 대한국의 전진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나라가 축복 가운데 오백 년을 누리다가 지금은 대황제의 나라가 되고 국호를 대한으로 고쳤으니 정부 관료가 되어 마땅히 백성을 사랑하여 정사를 공평히 하고 상벌을 분명히 하며, 이웃나라를 신의로 교제하여야 가히 대황제의 나라가 되겠다하더라.

  다음은 전 협판 윤치호씨가 국호를 대한이라 고치심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되 우리나라가 지금 제국이 되고 국호도 고쳤으나 산천의 풍토와 국가의 정치와 신민의 행위가 조금치도 전보다 다른 것이 없고 고친 것도 없는지라. 대황제께서 이미 내리신 조서에 말씀하시기를 구습을 고치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라 하셨으니 우리나라 신민이 되어 불가불 고칠 것은 사농공상의 직업을 바꾸라 하는 것이 아니요, 구습에 물들어 나태하고 어떤 일이든지 겉모양으로 하는 체 하는 것을 아주 버리고 사람마다 무슨 벼슬을 하든지, 무슨 장사를 하든지, 진심으로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자연히 부강할 뿐 아니라 참으로 대한민국 신민이 되리라하였더라. 그 후에 다과와 실과를 나눔에 앞서 일제히 만세를 불렀더라.


  오후 두시에 다시 외국 사람들을 청하여 연회를 하니 각국 공, 영사와 외국 부인들과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씨와 사범학교 교장 헐버트씨와 일어학당 교장 장도씨와 일본 수비대장 상파 소좌와 여러분이 독립관에 모여 경축회에 참여하였는데, 안경수씨가 잔을 들어 축수함에 서재필씨가 통역하고, 이도재씨가 연설함에 윤치호씨가 통역을 하였더라. 이 연회는 오후 네시에 끝났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13)

 

 

자력으로 평양교회를 세우다

 

   한명인, 김정길

 

   양력 시월 십팔일에 장로사 시란돈(Dr. Scranton)씨와 교우 도명운씨가 평양 서문안 회당에 가서 본즉 남녀 회원 수백 인이 한 마음으로 합력하여 큰 예배당을 우물 정자 모양으로 지었는데 칸수는 십육 칸이나 되고 유리창을 좌우로 여섯 개를 달았더라.

  또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새로 학당을 설립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아이들 교육하기를 날마다 힘쓰는데 이 회당과 학당을 지을 때에 서양 목사의 돈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본국 교우들이 각각 연보하기를 힘쓰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몸으로 가서 역사를 진심껏하여 일을 이루게 하였으니 참 교우들은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아래로 세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밖에까지 나타내었으니 감사하고 또 생각할 것이 누구든지 일심으로 무슨 일을 하면 참 성신의 도와주심을 받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줄 알 것이오.

  기쁜 일은 성 밖에 사는 한명인씨와 김정길씨가 힘을 다하여 학습인 중에 연보 돈을 거두어 따로 대동강 건너 봉룡동이라는 곳에 회당 네 칸을 날아갈 듯이 지었는데 넓이가 광활한 고로 수백 명이라도 능히 들어가겠으며, 그 재목인즉 수십 년 자란 느릅나무였다.

  이 재목은 진실로 희한한 재목이요, 이 재목으로 말하면 그 동리 사람들이 마귀당을 짓고 전후좌우로 또 수목을 무성히 가꾼 것으로서 마귀당을 헐고 예배당을 세울 때 바로 그 재목을 베어 사용했으며, 다른 수목들은 예배당 울타리 모양으로 두어 한 모양을 더 새롭게 하였으니 이 일을 볼진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배당을 짓고 또 영혼 구하기를 위하여 예비하여 주신 재목인 줄 알고 감사하오며, 그곳에 학습인이 삼십 여명이나 되었으니 그곳 사람들은 참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두신 교우들인 듯한고로 감사하거니와 또 믿고 바라기는 이 밭에 떨어진 씨가 싹이 많이 났으니 이 싹의 덩굴이 차차 뻗어 삼천리까지 덮히기를 바라오며, 예배 후 삼일에 장로사 시란돈씨와 목사 노블(W.A. Noble)씨와 성내 여러 교우들이 함께 새로 지은 회당에 가서 찬미와 기도한 후에 미이미교회 예법대로 그 회당을 하나님께 바치고 기쁜 마음으로 주의 영광을 찬양하였더라. 두 주일 후에 시란돈씨가 돌아갈 때 교우들이 대동강 나루까지 나아와 작별하는 데 아쉬워 섭섭해함이 친형제 같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421897. 11. 11.)

 

 

교우 죽산군수 김흥수씨의 행적

 

   김흥수씨는 본래 남양 사람으로 이왕에 청국에 가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를 믿던 사람이라. 김씨가 죽산군수로 있는 수년 동안을 아주 지혜로움으로 선정을 베풀었더라. 그는 항상 백성을 만나는 대로 말씀을 전하고 가족을 사랑하여 앞에 앉히고 성경을 강론하더라.

   한번은 그 고을에 부군이라 하는 귀신이 있는데 이것은 그 고을 사람들이 오백여 년을 섬기던 우상이더라. 하루는 그 부군을 잡아 오너라하였더니 관속들의 말이 여러 대 섬기던 큰 귀신을 잡아올 수 있사옵나이까?” 하거늘 군수 왈 귀신 위하는 본의는 고을이 태평하기를 위함이로되 귀신이라 하는 것은 본래 허망한 것이요, 만일 귀신이 영험과 의리가 있을 것 같으면 재작년 동학난리도 막았을 것이요, 작년의 병도 방비하였을 터인데, 사람이 많이 죽고 집들이 다 불타도 한 번도 지시하는 일이 없었으니 이 귀신은 공연히 오백여 년을 남의 전곡을 먹은 도적이오, 이러한 의리 없는 귀신은 천참만육(天塹萬戮, 수없이 베어 여러 동강을 내어 참혹하게 죽임)함이 마땅하다하고 자기 손으로 불태웠으며, 항상 근읍에 있는 교우들을 믿음으로 권면하여 각 장터로 다니며 연설하더라.

  한 번은 죄인을 잡아 왔는데 이는 믿는다는 사람이라. 그러지 아니하여도 항상 교우는 비방을 받는데 원(군수)이 만일 괄세하고 보면 비방이 더할지라. 군수 왈 네가 유다를 아느냐?” “모르나이다” “네가 예수를 파는 유다로다. 너를 속하신 주를 알지어다. 그러나 아직은 네가 예수의 도리와 규칙을 모르고 다만 보기에 동학하는 의병인 줄 알고 그와 같이 행악하였으니 잠깐 용서하거니와 만약 내가 말씀을 다 가르친 후에 또 죄를 범하면 큰 형벌을 받으리라하고 내어 놓은즉 이 사람이 자기 집에 돌아가 회개하였다 하니 이 군수는 형벌로 백성을 두렵게 할 뿐 아니라 참 의리로 백성을 굴복케 하더라. 다른 일도 많사오나 다 기록지 못하오니 만약 그 선치(善治)한 일을 보시려거든 독립신문 129호를 보시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421897. 11. 11.)

 

* 편저자주: 독립신문 129

죽산 군수는 삼년 못 받은 결세를 징수할 때에 백성을 매 한 대 치지 않고 하나도 가두지 않고 순리로 다 받았고, 백암리 장과 광혜원 장에 종종 나가서 백성에 대하여 사상과 백성 노릇하는 직분을 연설하고, 국문으로 백성의 자녀들을 정성껏 권면하고 백성의 집에 친히 다니면서 청결히함이 위생에 유익하다 하고, 도로를 잘 수축시키고 민간에 폐가 되는 것을 조칙(詔勅)대로 다 없애 주고 짚신을 사서 가난한 백성의 처자들을 주어 신게 하고 민간으로 관속이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어떠한 사람의 편지가 본사에 왔더라.

 

 

딸의 믿음

 

 

  용인 교우 김준희의 딸

 

  이 딸은 나이 십칠 세인데 성전에 연보를 드리기 위하여 밭 두 이랑에 배추를 심고 자기 손으로 특별히 힘써 가꾸더라. 배추가 다른 데와 비교하면 더욱 장하고 값을 잘 받게 되었으니 생각하건대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보시면 이 아이의 연보는 비록 적으나 부자의 많은 연보보다 더 많은 줄로 아실 것이요, 이 아이는 참 복 있는 자로다, 과부는 이 아이같은 친구를 얻었으니 기뻐할 것이요(눅21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은 부끄러워할 듯하니(행5장) 우리는 이 아이와 같이 마음을 다해 연보하면 참 예수께 칭찬을 받을 듯하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431897. 11. 20.리은승)

 

 

나라를 생각하며 애통해 함

 

양흥묵

 

  십일월 이십일일 주일날은 마침 명성황후의 국장시기라. 서양의 선교사들과 본국 형제들이 특별히 황후를 생각하며 비통한 마음과 나라를 위하여 사랑하는 정성으로 장로회 교우들과 미이미 형제들이 함께 정동 새로 지은 회당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목사 아펜젤러씨가 마태복음 16장을 읽어 드리고 교우 양흥묵씨는 로마서 십 삼장의 말씀으로 설교하되 우리가 마땅히 임군을 잘 섬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임군을 내시고 또 황제가 되시게 하셨으니 임군의 명령을 거역함은 곧 하나님의 뜻을 거스름이라하고, 목사 원두우씨는 말씀하되 명성황후께서 병환이 계셔서 천명으로 승하하시고 국장을 당하였더라도 나라 백성이 되어 사람마다 비감할 것이어늘 하물며 역적의 손에 변란을 당하심이리오. 우리가 오늘 한 곳에 모임은 황후를 위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라를 도우사 교회가 흥왕케 하시기를 원한다하고, 신문사장 제손씨의 말씀은 예수교를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 같지 아니하여 육신이 죽는 날은 곧 영생하는 때로 알고 믿는 고로 다른 사람의 한 번 죽으면 남은 생이 없는 줄 알고 애통하는 것보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형제들은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거든 교회가 흥왕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더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441897.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