賀樂醫員(Dr.W.J.Hall)史蹟

제 사장. 뉴욕 성에서 일함(3)

솔석자 2018. 4. 17. 17:25

함께 일하시던 노블 목사 말씀이라


    허을 의원이 뉴욕 성에서 일할 때에 재전(財錢)이 부족한 가운데 자기의 적은 월급이라도 너그러이 보태어쓰고 자기는 흔히 능금과 마른 면보조각을 늘 먹으며, 긴한 것이라도 사지 아니하고 극히 절용하여 자기보다 더 빈궁한 이를 도와주기를 심히 즐거워하며, 친구들이 간한즉 대답하되, "내가 다 주를 위하여 하나이다" 하며, 하루는 파기전에 헌 그릇을 살 때에 물은즉 대답이, "전도하실 일군이 더 오실 터인고로 그릇을 사나이다" 하며 적은 돈을 아무쪼록 절용하는지라.

    종일 부지런히 일한 후에 자기 피곤함을 생각지 아니하고 함께 일하는 자가 다 평안하며 긴한 것이 없는가 다 알아보며, 먼저 잠든 자를 돌보아 모친이 어린아이를 돌보듯 자기 조사들을 덮어 덥게 하여 주었으니, 남을 진심으로 도와준 것을 가히 알 것은 그의 도움을 받은 자의 입에서 나온 말로 알지니라.

    하루는 내가 불쌍한 유대인의 집에 들어가면서 묻기를, "오늘 아침에 허을 의원이 오셨더뇨?" 한즉 대답하기를, "네, 오늘 아침 뿐 아니라 늘 오셔서 도와주시나이다. 그이는 과연 기이하신이올시다. 값없이 약을 주고 음식까지 갖다가 먹이시고 기도까지 하여주시나이다. 허을 의사가 뉘시오니이까? 내 동포들이 오랫동안에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데 오실 메시야는 이 어른보다 더 인자하겠삽나이까?" 이러한 무식한 유대인의 말한 것을 보아도 허을 의원의 행함을 가히 알 것이요, 힘껏 하여 성 중에 잃은 자들을 도우려고 연구하는 것을 죽도록 그치지 아니하였는지라.

    뉴욕 성에서 류하는 동안에 석의사와 친밀한 친구가 되어 늘 집에 다니며 그의 의가지락을 보고 자기도 장래 이러한 기회를 바라고 기다리는 중, 친구들은 하나님의 일에 열심과 마음을 다하여 하는 고로 장래 가속을 거느리지 아니하고 도령으로 늙을 줄로 생각하였으나, 허을 의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배필을 기다리는데 오래 기다리지 아니한지라. 듸슨 병원에서 분주히 힘쓰는데 간호원 젱킨쓰 부인과 한국에 나아오신 루이스 부인이 병원에 와서 조역하는데, 하루는 젱킨쓰 간호원이 쉐웟(셔우드) 의원을 데리고 와서 통성한 후에 말하기를, "우리 부인들 전도회사에 새로 오신 부인인데 허을 의원을 도와드리려고  모시고 왔나이다" 하니, 허을 의원이 마음에 기뻐하여 의사의 도우심을 심히 감사히 여기며 빈민들을 고쳐주는데 여러 번 서로 만나 같이 일하는 중에 이 여의사께서 감리회교인이요 선도사로 나아가려 하는데 자기 가고져 하는 청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점점 사귀어 볼수록 오래 기다리던 부인이 이제야 온 줄을 알고 선애하는 마음으로 친근히 지내었으나, 부인은 허을 의원의 근본 박애하심을 들었은즉 자기도 그와 같이 대접하는 줄 알았더니, 한 주탄일(主誕日)에 부인을 청하여 공원에 소풍갔더니 회정하는 길에 부인께 결혼을 청하매 부인이 이상히 여겨 왈, "이러한 일은 생각지 못하겠도다" 하니, 허을 의원의 생각에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고 청하였거늘 어찌 이러한 대답을 받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고 부인께 청하기를, "못한다고 급히 대답할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깊이 기도로 생각하라" 하고 여러 달 동안을 기다려 춘절에 다시 결혼을 청하매, 부인이 대답하기를, "내가 선도회사에 이름을 붙여 쉬이 떠나겠으니 오년 전에는 결혼하지 못하겠다" 하니 허을 의원은 오래동안 결혼하는 긋을 불가히 여겨 자기 친구 석의사씨로 의론하고 기도로 결혼이 오래더라도 언약하니라.


    1890년 8월 22일에 의사 쉐웃이 본국을 떠나 한국으로 발행함을 보고 서로 작별하는 것은 심히 원통하고 상심할 것이어니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아가는 것을 심히 즐거워하며 더욱 부인을 총애하여 부인이 떠나간 후에 기록한 편지라.


   부인께 기록한 편지.

    8월 26일, 우리가 서로 작별함이 오래든지 오래지 않든지, 우리에게 유익할 줄을 믿나이다. 내 마음이 전에는 자던 것이 이제야 깨었사오며 하나님을 섬기기로 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섬기기를 이미 구하였나이다. 금일에 부인께서 더욱 내게 귀중하오며 또한 내가 부인께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모둔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라가심을 보오니 더욱 존중히 여기오며, 내 마음에 심히 원하는 것은 부인을 어디든지 하나님게 으뜸으로 영광을 돌릴 곳에 게시기를 원하오며,  인정으로 말하면 내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이가 만리타국에 나아가 만고풍상을 홀로 당할 것을 생각하오면 흉격이 막혀 상심될 것이오나, 그러나 부인께서 홀로 가실지라도 홀로 가시지 아니하고 모든 어려운 것을 같이 하실 이가 함께 거하시오니 전능하신 주께 부인을 맡기옵나이다.

     9월 초5일, 지금은 부인께서 대양 만경창파에 있으니, 바다를 손에 쥐이신 주께 부인을 맡기오며, 늘 앙모하옵고 육신은 매일 내게서 멀어갈지라도 마음으로는 부인께서 매일 점점 가까와지며, 부인을 사랑함으로 내 행덕에 자던 것이 더욱 깨어 어두운데서 죽어가는 영혼을 사랑하여 구원할 마음을 하나님께서 더욱 발달케 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함이 더욱 많소이다. 석의사 내외분과 동거함이 특별한 기회올시다. 금년 겨울에는 뉴욕 성내에 하나님의 일이 더욱 흥왕함을 바라오며 신도 두 분이 성안 전도를 위하여 금화 일천오백원 씩 주시마 하신 고로 집을 세내어 전도회사와 여관을 겸하여 빈민들을 도와 악한 주사청루(酒肆靑樓:술집.기생집. 또는 매음굴의 총칭)에서 구하려 하니 주께서 신기하게 길을 열어주시니, 주장하는 메릿씨께서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며 하는 말이, "내가 돈쓰기를 원하면 하나님께 구하지 사람에게 구하지 아니한다"고 하더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 메릿씨 같은 이가 많이 일어나기를 원하나이다. 내 내종사촌(고종사촌) 두러문씨는 당신 떠나신지 한주일 만에 장로회 전도회에서 청국 난징(南京)으로 보내어 떠나갔나이다. 아직까지도 박사 뽈원씨를 뵈옵지 못하였사오니 석의사가 통상시켜 주겠나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청국에 원하시면 길을 열으시고 원치 아니하시면 길을 막으시겠나이다.

    3월 초3일, 뉴욕 뱌팔로라 하는 곳에 잠간 쉬러 왔삽는데 이곳 오기 전에 클리블렌오하요에서 전도자원학생회로 모였는데 총대위원이 륙백여명이요 의론회에서 내가 받은 것을 다 형언치 못하겠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자기에게 이끄시는 줄 이옵나이다. 청국 갈 일로 말하오면 우리 전도회에서는 금년에 의원선도사를 내보낼 수가 없다 하오나 청국 정부에서 "천원에 나아와 구라파인도 병 보고 선교 일을 할 수가 있겠다"하오니 이곳을 가면 자급하여 전도할 수가 있겠사오며, 오년 작정이라 하오나 뉴욕 성 본토 전도회사에서 일년을 더 부르나만은 외방전도로 명년 가을에 가겠다고 하였나이다.

    6월 삼일. 박사 뽈원께서 나를 선도회사 서가원으로 만나자 하였기에 갔더니 내게 묻기를, "당신이 시의사 환국한 동안에 그 대신하여 한국으로 나가고져 하느뇨?" 묻기에 가겠다고 하였으나, 감독 꾸슬께서 회정하여야 결정하겠사오며 한국 갈 의향으로 청국 가기는 폐약하였나이다.


    또 며칠 후에 편지 사연에 말이,

    선도사로 갈 길이 지금은 막혀져 가오며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서 특별히 인도하사 묻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하시오며 이곳에서 일하라고 하심인가 보오이다. 하나님께서 무소불능하시니 택하여 주시는 대로 좇아 행하오며 여러 방책을 연구치 아니하고 주의 손에 맡기어 있습나이다.

    8월 27일. 캐나다 감리교회 전도회사에서 청국으로 가라고 간청하며 내 의향도 듣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려고 돈을 거두었으니 하나님께서 이곳 전도회로 나를 보내실까 하여 막으시고 그리로 지휘하셨는지요.


    허을 의원이 한국으로 가고져 함이 당연한 것이로되 자기가 택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순종할 뿐이라. 그의 기도는 항상, "주여 내 길을 열어주시면 따라가겠나이다" 하였으니, 캐나다전도회사에서 보내심을 받아 짐까지 실었으되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그 소원의 상을 받아 친구들이 한국에 친밀한 연고를 알고 감리회 전도회사에 천거하였더니, 9월 19일에 의사 쉐웃 생일에 한 편지에 왈,

    "지금 한국 전도 소임을 맡았사오며 어제는 캐나다전도회사에서 놓임을 받았나이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하옵고 하나님께서 내 가 어디든지 인도하시는 대로 가고져 함을 이미 아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량인이 오래지 아니하여 동거하게 하시니 이같이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심과 그 전능하심 더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이제는 내가 특별공부를 시작하겠나이다. 지금 시목사와 동거하였삽난데 그 자친님도 만나보옵고 두 분을 다 좋아하나이다. 두 분께서 당신을 칭찬하더이다. 금년 가을에는 루이쓰 부인이 당신을 도우러 나가시는데 동행하기를 원하오나 가는 길이 다르니 동행치 못하나이다. 모든 사람들이 간청하기를 이곳에 있으리 하오나 하나님께서 나를 외방에 일시키시는 줄을 아나이다. 이곳에서 경험한 것은 기이하오며,이곳 있을 동안에 귀한 것을 많이 가르치고 친구와 귀한 영혼을 주심을 감사하옵고 영광을 돌리옵나이다. 구주께서 사랑하심과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니 '떠하신 구주뇨?' 할 수밖에 없사옵나이다. 주를 가까이 사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복음 참 풍족하시외다. 우리 량인으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데 쓰기를 복축(伏祝: 엎드려 빌다)이외다.


    또한 허을 의원이 성일을 극히 삼가하여 지키는 자라. 뉴욕 성에서 주일이라도 륜거매매를 하는 고로 섭섭히 여기고 자기 본행 캐나다를 칭찬함은 주일을 뉴욕보다 낫게 지킴이라. 허을 의원이 뉴욕 성에 류할 때 시험 중으로 제일 애쓴 것은 하루는 집에서 예배 륙일에 늦게 의사가 전보하였는데 '부친위병즉래'라 하였기에 곧 떠나 야경에 유틔키 성에 득달하여 물은즉 화륜거가 주일 아침 륙점종(6시 정각)에 떠나는지라. 만일 이 차에 떠나지 아니하면 주일 이튿날이나 떠나겟으나 항상 주일에 화륜거 타는 것을 가치 않다 하였거늘 어찌 이 때에 성일 어기리요 하니, 마귀가 열심으로 꾀어 왈, "네가 이 차에 가면 부친을 한 번 다시 볼 것이요 만일 이 차에 가지 아니하면 과연 늦어서 부친 살아계신 것을  보지 못할 것이요 또한 네가 효애지심이 없느니라" 하고 시험하매, 내가 방에 들어가 성경을 펴고 무릎을 꿇어, "생전 처음으로 이러한 시험을 당하였으나 이삭을 제단에 드린 것 같이 내 부친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처분하심을 순종하겠나이다" 하고 일어난즉 안심을 주시니 일일 아침에 부친께 이르니 부친의 중환이 쾌차함이 있으며, 허을 의원이 진심갈력하여 기도하던 때 즈음하여 중환이 돌렸는지라.

    우리에게 참 기묘하신 구주가 계시도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려울 때가 없으리로다. 순종함이 모든 제사보다 낳은지라. -여의사 인애로스 안더쓴 부인께서 하신 말씀-

   

허을 의원이 뉴욕 성 떠나기 전 여름에 한 일.

    1892년 여름에 허을 의원이 뉴욕 성의 주일학당 아이들을 데리고 피서간 일.

   허을 의원이 항상 어린 것들의 마음을 얻어 아무쪼록 주를 경외하는 아이들을 만들고져 하여 이런 방침을 연구하였으며, 아이들이 주일학당에 한시간 씩 오는 고로 그들에게 감복되도록 하기가 심히 부족하며, 아이들의 집 형편이 주일학당에서 받은 감화를 잃게 하는 집이 많은 고로 아무쪼록 이러한 방침으로라도 그 어린 마음에 진리를 가르치고져 하여 열 한 사람을 모아서 함께 연구한 방침을 이루려 하는데 나도 그 둥에 하나가 된지라.

    아이 일백 삼십 명을 모아 데리고 캐나다 안다리오 찰스튼 호숫가를 택하고 떠날쌔, 장막과 음식을 가지고 가며 각 아이에게 긴한 물건을 차에 싣고 떠나갔더니, 철로 앞 길에 쌓은 길이 무너진 고로 여러 시 동안이 지체가 되매 차안에서 여러 명 아이들을 간호하여 철로에서 상치 않게 하려 한즉 쉬운 일이 아니나 아무 연고없이 지체하였다가 다시 떠나간즉 바꾸어 탈 자가 벌써 떠난 고로 또 네시간 동안을 기다리게 된지라.

    량식이 거의 먹어가는 고로 어떻게 양식을 얻을 방침을 생각하는 즈음에 유틔카 성 소남기독회에 서기관 되시는 이가 지나시다가 아이들을 소남기독회에서 부비는 쓸터이니 점심 먹이라 하시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주막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인 후에 떠나 저녁에 뿌락빌에 내린즉 애천 가는 차가 하루 일차 씩 가는 고로 벌써 떠난지라. 그곳 친구들깨서 너그러이 접대하사 감리회 기도방을 다 열어주셔서 여인과 처녀들을 다방 안에서 자고, 남자들은 더러 풀 베어 쌓은 곳에서 밤을 지낸 후에 친구들에게 염려를 더욱 끼치지 않고져 하여 놀이차로 성밖에 나아가 여러 가지 운동으로 재미있게 지내고 떠나서 피서할 곳에 거의 이르렀는데, 거기서도 친구들께서 영접하시고 회당 마당에 점심을 예비하여 놓고 기다리는지라.

    그곳에서 기쁘게 지내고 이십 리는 보행인 고로 그 근처 농부들이 수레를 빌려주는 고로 더러는 타고 더러는 걸어서 예비한 곳에 득달하니, 이곳은 공터요 수목이 무성하여 피서히기 좋은 곳이라. 가 날밤에는 늦은 고로 장막을 치지 못하고 위급할 때 쓰려고 적은 정자 하나 세로 내서 모든 아이를 재우고, 이튿날은 벌에다가 장막을 치고 아이들을 떼로 나누어 한 떼에 구명 씩 혹 이십 명 씩 나누어 선생 한 사람이 주장하게 하고 아무쪼록 보름 동안을 기쁘고 유익하게 자내려고 하였더니, 일기가 불순하고 비가 오는 고로 아이들이 심심하여 더러 집 생각하는 아이가 있으나 허을 의원은 장막마다 다니며 섭섭하여 하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선생들도 그와 같이 하고, 아이들이 축축함으로 병나지 않도록 할 방침을 의논하러 다니며, 우중이라도 편히 밤을 새고 주일이 되매 날이 든 고로 아이들이 다 기뻐하여 들에서 예배를 보는데 근처에 농부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본지라.

    일일은 아이들을 위하여 선유를 갈쌔 배 십여척을 세내어 아침에는 처녀들이 가게 하고 오후에는 남애들이 가게 하여 목욕도 하고 재미있게 보름동안을 이같이 기쁘고 유익하게 함께 지내고 일개인 아이들에게 권면할 기회가 있으니 허을 의원이 극진히 아이들을 주께로 인도하려고 하며 이런 기회를 잃지 말고 힘써 하자고 하며 아이 중에 주를 믿은 자가 있으며 감복됨을 얻은 것이 주일학당에서보다 더 낳은 것은 우리가 함께 거처하여 친히 사귀어 선생과 학도에게 일하기가 매우 쉬운지라.

    허을 의원이 남을 생각함과 아이들의 육신과 영혼을 간호하여 주었으니 당연한 보응을 받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