賀樂醫員(Dr.W.J.Hall)史蹟

제 오장. 외방전도 일을 시작함(2)

솔석자 2018. 4. 19. 00:39

아편(H.Z.Appenzeller) 장로사께서 허을 의원이 한국에 득달할 때에 하신 말씀

   

    일천팔백 구십일년 십이월에 인천항에 하륙하매 박사 조원시(George Heber Jones)께서 영접하러 내려가 함께 상경하는데 두 사람 중에 말 한필 밖에 얻을 수 없으매 체번(替番:번의 차례로 교대함)하여 타지 아니하고 족히 팔십리를 걸어 내 집에 득달하니 즐거움으로 영접하매 내 손을 잡고 '아멘'이라 함을 지금까지 생각하겠고, 득달한지 수일 후에 자기가 할 일을 의론하는지라.


    모든 선도사에게 긴요한 자격이 세가지 있으니,

    (一) 깊이 신령함. 하나님을 믿음이 크며 성경은 하나님의 묵시로 주신 것을 믿으며 사죄함을 받아 하나님 후사가 됨을 성신께서 증거하여 주심을 마땅히 받은 자요, 도덕에 온전히 경험하여 본 자요, 자기에게 도가 있는 줄 분명히 아는 자요, 이런 경험이 없이는 무익하니 허을 의원을 오랫동안 사귀지 아니하였을지라도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혀 그리스도인 된 것이 분명히 나타나며, 그리스도인으로 경험함이 똑똑하고 기도로는 간절하고 찬송함의 열심이 있는지라.

    (二) 방언을 능히 배울 재질이 있을 것. 타국 방언을 배우기 어려움은 배운 자 외에는 알 수가 없느니라. 모든 풍속과 생각이 다른 것을 배우려 한즉 정신이 산란하고 진리의 기쁜 소식을 전파할 마음은 가득한데 언어가 불통인즉 방언을 배울 때까지 답답할 때가 많으나, 허을 의원은 이 어려움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힘대로 하며, 밤이 들도록 불을 켜고 수고할지라도 한국 방언에 문법과 그 근원과 동사의 뿌리를 캐려 함이 아니요, 오직 중병으로 고통하는 자를 도와주려 함이라. 한국 방언에 헤아릴 수 없는 동사라도 곤고하여 하지 않고 단잠을 이루지 아니하며 일직이 일어나 기도와 성경을 먼저 배운 후에 방언을 배우는데, 빠르지 아니하며 늘 즉심으로 배우나 답답하여 하는 줄을 말 아니하여도 있는 줄을 알겠도다.

    (三) 선도사 문견(聞見:듣고 보고 하여 깨달은 지식.견문)이 똑똑할 것. 어려운 일을 무서워하지 아니할 것인데, 허을 의원이 세가지 가운데 온전한 모본이 되리라. 내가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는 허을 의원과 사귈 기회가 없었으나, 일천팔백 구십삼년에 다시 돌아와 모든 일에 친히 사귀어 본즉 모든 일에 그의 문견을 의지하겠고, 허을 의원이 나온지 오래지 아니하여 의주까지 전도 차로 가기를 말하니, 곧 대답하고 조장로사와 같이 떠나 일천 오십리를 가는데 한국에 나아온지 불과 석달이 되었더라.

    일천팔백 구십이년 년환회에 허을 의원이 보단하였으며, 평양에 교회를 설립하기로 동의하매 감독 말날루께서 허을 의원을 북방 전도사로 직임을 맡기매, 년환회를 마친 후에 평양에 와서 열심으로 전도할 뿐 아니라 완고히 거처할 곳을 경영하고 재전을 거두어 집을 사고 교회를 설립하기로 작정하고 친구의 도움을 받는데, 미국 친구와 영국 덕국 청국 친구에게까지 도움을 받아 오래지 아니하여 지경 두 곳을 샀는데, 그 집 이름은 초당 집과 서문안 집이라.

    평양교회를 설립할 때 감독 말날루께서 칠백원을 거두어 허을 의원에게 보내니, 의원 마음이 더욱 감사함으로 그 돈으로 교회 재전을 삼아 심히 삼가하며 절용하여 고치는 부비와 처음 그리스도 학교와 병원과 선도 일을 설립하고, 모든 일 이루고도 별세하실 때 륙백원 류재(留財:간직해 모아둔 재물)가 있어, 허을 부인의 소청으로 이 돈으로 허을 병원을 짓기로 결정하고 발월 의사가 지금 허을 의원의 일을 맡았으며 지금 데리고 올라가는 중이라.

    허을 의원이 시작한 교화에 우리가 기초를 세워 그의 시작한 일이 늘 진보할 것이요, 비록 삼년 동안에 우리 무리 중에 있었을지라도 그의 설립한 일은 찹 아름답고 교회를 위하여 살고 목숨을 버렸으니 그의 일은 영원히 살 것이니, 인정으로는 섭섭함을 형언치 못하되 그의 성덕과 정성과 진심이 우리에게 향기로운 기름이 되었도다.


처음으로 북방 순행 차로 나아감. 조장로사 말씀.


    일천팔백 구십이년 삼월에 떠나는데 병원조의 한서방과 의주서 나아온 한국인 동행을 얻어 떠나가는데, 짐을 말에 실었으나 많이 걸어가기를 예비하고 떠나 북경 길까지 나아가더니 풍악소리가 나매 곧 가까이 가보니, 초목으로 만든 우상과 형상을 그려놓고 그에게 제물을 드리는 것을 보고 마음에 심히 비창하여 발을 돌이켜 행할쌔 마음에 결정하기를, 우리가 힘껏 하여 우리 불쌍한 한국을 밝힐 것이라 하고 떠나갔는데, 행장은 앞서 가고 행객은 걸어가는 중에 행장을 따르지 못하여 여러 가지 곤고한 것을 당한 후에 북방에 득달하여 주막에 들어가니, 주막을 다스리는 여인이 항상 말을 많이 하고 그 소리는 벌의 떼라도 잠잠케할 만하고, 방이라 하는 것은 어찌 좁은지 키큰  의원은 다리를 문 밖으로 내놓았으며, 추하기는 전라도 근처와 다름이 없고 석반을 먹고 자려 하매 방바닥에서 자지 아니하던 자가 돌 위에 누우려 하매 허을 의원 말이, "교형이여, 돌자리와 털자리의 분간이 과연 이제야 다른 줄을 아시나이까" 하며 겨우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 이슬비를 맞고 종일토록 행하는데 진흙이 발목까지 빠지되 조금도 곤고함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청아한 음성으로 찬송하매, 찬송 음성이 중천에 날며 한국인들은 괴상히 여김으로 듣고, 모든 개는 허경(虛驚:괜히 놀람)하여 뛰어 달아나는 것을 보았고, 고양서 전도를 시작하여 짐을 풀어놓고 성서도 팔고 또한 외방의사라는 소문이 잠시간에 퍼져 병인들이 모여 들어오니, 허을 의원이 불쌍한 이들의 경상을 보고 그 고통을 능히 덜어주는 능력이 있음으로 병인을 고쳐주는 것을 보니 내 성인스러운 친구의 선도사 심명을 알겠으며, 영혼 고치는 것은 내 직책이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그곳서 참 즐거이 지내고, 또 그곳을 떠나 파주에 이르니 산꼭대기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고 평지에 내려와 북방을 행하고 떠나오는데, 륙일 날 송도에 이르러 전에 이르렀던 주막에 들었는데 일기가 심히 춥고 하늘이 구름으로 가리워 캄캄하며 설한풍이 일어나매 떠나지 못하고 류하는데, 주막 안에 영접도 받일기와 같고 모든 사람과 모든 물건이 다 언다 하는 소리 뿐이요, 먹을 것도 아니 주고 불도 아니 때어주니 견디지 못하여 운동으로 덥게 하려고 눈이 오는 중에도 나아갔는데, 조그마한 산 위에 큰 원희원이 뵈이거늘 왕 대왕 시절에 궁궐이 섰던 자리라. 오백년 동안을 버려두어 그 부강하던 식구에 자취도 없는지라.

    광풍은 점점 더 일어나  일기가 사람의 마음과 같아서 모여 들을 사람은 없지마는 몇 사람을 량방에 모으고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를 전파하고 낙담될 일이 많으되 성인 형님은 조금도 낙담치 아니하더라. 송도를 떠나 서흥으로 올쌔 전도도 하며 병도 고쳐주는데 날이 저물어 서흥은 이르지 못하고 진닥막이라 하는 곳에서 주막에 들어 밤을 지낼쌔 주인이 자기 방을 친히 내어주고 잠그지 아니한 돈궤까지 두고 방을 내어주더라.

    봉산서 동선령 고개를 넘어갈 때는 참 설한풍으로 고생한 것을 다 입으로 형언치 못하겠으며, 대풍을 안고 황주까지 오는데 극한이 심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대동강에 이르러, 허을 의원이 목숨을 버린 평양성에 이르러 친구의 집에 들달하여 류하는데 조석을 물론하고 구경군이 들어오니, 성경을 가르치며 병인을 고치고 칠일을 즐거이 류하고 책방을 열매 하루 팔십권을 파니 군수가 금령을 내려 책 팔기를 엄금하나 우리는 그 명령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성서를 팔되 공부를 가르치려고 몇 사람을 모았더니, 우리가 떠난 후에는 다 헤어져 없어졌으나 성경 백여권을 두고 떠나니 이백여권의 성경이 자기황(自起磺:불을 일으키는 황)과 같이 일어나 모든 악한 것을 다 없이 하기를 믿노라.

    평양서 떠나 의주로 발행하여 한주일 동안을 동거한 후에 의원은 회경하고 나는 북방으로 더 들어갔는데 동거할 때 이 형님의 행적에서 내 마음에 기념된 것은 온유한 성심과 다정한 성심과 깊은 교린지의와 즐거운 마음과 담대한 마음이 겸하였으며, 티방 선도사의 모본될 만함은 지극히 어려운 가운데라도 참아 견디는 것이 내게 기념함이 되었고, 무엇이든지 못하는 것이 없고 재질이 많아 다른 이가 못하는 것이라도 다 하며, 손재주가 가능하여 깨어진 그릇 깁기와 사람의 대혈맥까지 기워주었으며, 없어지는 것도 더 늘어 있게 하며, 의주 있을 때에 우리의 식물이 없어져 가는데 하루는 장에 가서 구경하더니 생굴 한사발을 사가지고 들어와 진찬(珍饌:진수성찬)과 같이 알고 먹었으며, 허을 의원이 떠나기 전에 한국 음식으로 식사하라리라 하고 결정하고 하루 두끼는 한국음식을 먹는데 어느 때 과연 한국음식을 받아놓고 기쁜 얼굴로 냄새가 독한 것이라도 먹더니, 한 주막에 들어 석반을 먹은 후에 후원에 나아갔는데 가죽이 많이 널려 있기에 무슨 가족이냐 물은즉 개가죽이라 하기에 고기는 어디 있느냐 하니 대답하되, 존객들에게 석반탕으로 드렸다 하기에 번역하여 들으니 개육탕은 비위에 과연 너무 과하여 몇 날은 한국음식을 물리치더라. 의사로 말한즉 병인이 어디 있든지 상거를 막론하고 가서 보아주며 곤한 줄을 모르고 지극한 정성으로 보아주는 의원이라.


    미국신도 신문사장에게 허을 의원이 하는 편지

   

    삼월사일에 조장로사씨와 함께 이천백여리 내지에 들어가는데 말 몇 필에 책과 약과 음식을 궤에 넣어 말 좌우편에 달고 가운데 빈 데는 잎을 펴고 보를 만들어 곤하면 타게 하나 말이 보행에 지나지 못하여 거반 걷게 되며, 한국은 행로에 쓰는 것이 부담말과 사람이 메고 다니는 교군과 달구지라. 우리 본교향에 빨리 가는 차에 비하면 어찌 더딘지요만은 사람을 만나기로 위주하였으니 역로에 가까이 있는 마을과 촌에 들어가니 한국인의 애인경대는 과연 너그럽고 외방의원을 믿어 외방의원은 모든 고치는 능이 있는 줄을 알고 생시 소경과 귀먹은 자와 벙어리까지라도 고치는 줄 아는지라.

    한 사람이 하루 일직이 와서 급히 부르기에 나아가 보니 이십 세 된 아들이 열증으로 고통한다고 하기에 빨리 따라가되 상거가 멀어 지체가 되었는데 집에 득달하매 그 부친이 나아와 하는 말이, "별세한 지가 한 시가 되었다"고 하며 들어오기를 간청하매 들어가니 외아들이 죽음으로 애통하여 하는 경상은 참 볼 수가 없고, "원하시면 죽음이라도 살리실 수 있으니 살려주시면 명하시는 대로 시행하겠다" 하기에 내가 말하길, "내가 노형과 동고하나 죽은 이를 살릴 권능이 없다" 하고 예수께 갈 것을 가르치며 후세를 예비하라고 가르친 후에 떠나올 때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내가 말을 내매, '헛 된 것이 아니로다. 반드시 나의 뜻을 이루어 나의 뜻을 행하리라' 하심이 이룰 줄을 알고 왔사오며, 또 하루는 위중한 병인을 구하여 달라고 하기에 가서 본즉 병이 위중하여 사람의 생각에는 살지 못하겠고, 하룻 밤만 지나고 가겠기에 약과 간수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살활지권(殺活之權)을 맡아 다스리는 하나님이 계시니 마땅히 신기한 결과를 바랄 것이오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큰 의원께로 인도하여 구속하심의 기쁜 소식을 전하매, 그 부친이 마태복음 한 권을 사며 신실히 보겠다고 하더이다.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던 자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기에 기쁜 것은 경험하여 본 이 외에는 알 자가 없겠나이다.

    몇 주일 후에 이 촌으로 다시 돌아올 때에 처음으로 영접하는 이는 이중 병들었던 소년이라. 심히 고마워하며 성경공부하였다고 하며, 사백여 명 인수가 다 이 의원이 그 사람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여서 성경 읽는 것을 들은 고로, 사방에서 모여들어 밤중까지 구원하심과 하나님께로 갈 길을 물으며 함께 류하기를 간청하나 못하였으며, 다시 돌아올 때에는 추수할 것이요 비록 내외법(內外法)이 있어 자기 집 식구 남자 외에는 보지 못하나 의원 선도사는 집에 들어가기가 어렵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신기하게 열어주시나이다. 병자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팔았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파하니 도를 들으려 하는 자 무수하며 곡식은 익어가나 추수할 일군이 없는지라.

    우리가 역로에 항상 한국음식을 먹는데 밥과 매운 김치와 마른 자반과 탕과 저육(猪肉:돼지고기)과 콩과 우육(牛肉)이라. 불견정식이라 하였으니 참 그러하외다. 하루 백여리 외에는 더 못 가오며 회정할 때에 뜻 외에 용전이 많이 들어 돈이 부족하여진지라. 돈 얻을 곳도 없고 상거가 아직도 먼지라 극히 절용하여 하루 두끼 씩만 먹어도 부족하며, 구정 쯤 되어 풍우가 일어나되 다른 곳 같으면 기다리겠지요만은 이때는 총총이 가야 하겠기에일백 이십리를 비를 맞으며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주막에 들어 시장도 하고 피곤도 하고 젖은 옷을 바꾸어 입지 아니하고 비가 새는 집에서 밤을 류하고, 돈 두돈을 가지고 륙십리를 걸아와 말 먹일 돈이 없었으나 천당의 은행소를 믿어 돈을 받으려 하니 빌닙보 사장 십륙절이라. 말 먹이는 곳이 삼리나 더 가야 할 터인데 마침 이곳에서 전에 알던 일본의원을 만나 사정을 고하매 쓸 것을 주마 하니, 우리는 그 의원이 근처에 온 줄도 모르고 잠깐만 지체하였더면 길이 갈리워 못 만날 것이로되 하나님이 도우셨나이다.

    주를 의지하는 자는 어려워할 때가 없으리라. 우리 신묘하신 구원주시로다.                                       교제 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