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 외방전도 일을 시작함.
한국으로 떠날 때에 자기 선생 칼더릭 부인께 기록한 편지라.
칼더릭 부인전. 제가 선생님을 아주 잊은 줄로 아심나이까? 그렇지 아니하외다. 늘 선생님께 문안을 아뢰고져 하였사오나 너무 사번(事煩: 일이 여러가지로 번거롭고 많음)하와 이제까지 못하였사오나 어찌 선생님의 교훈지택을 잊어버릴 수 있사오리이까? 선생님의 인자 덕택으로 오늘날까지 이만큼 지내나이다.
선생님을 작별한 후 하나님께서 저같은 약한 자의 섬김이라도 복을 주사 지금 제 생전 소원하던 것이 이루려 하는 중이로소이다. 주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던 사람에게 복음을 가져갈 기회를 받아 의원 선도사로 한국으로 발행하여 가는 중이온데, 명일 개동(開東:밝을 녘)에 떠나겠나이다. 선생님께서 제자의 모든 일을 알고자 하시겠사오며 또한 저도 아뢰고져 하나이다.
제가 변슬변이야(펜슬베니아) 부인의대의학교에서 졸업하신 의사 쉐웃으로 결혼하였나이다. 그는 벌써 외방에 가서 병원을 주장하나이다. 하나님깨서 저를 도우사 외방사람 중에 천국을 흥왕케 하시오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만 살기로 결정하옵나이다.
두 해 동안에 심히 즐거운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았사오며, 로마팔장 이십팔절을 분명히 알았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닙을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하야 유익이 되느니라' 하셨으니 과연 그러하외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시매 내가 택하는 것보다 더 낫게 택하여 주시나이다. 제가 부인의 은덕을 보응할 수 가 없사오나 하나님께서 보응하시겠나이다.
사부께 문안드려 주옵소서.
일본 횡빈(橫濱:요꼬하마)에서 애턴신문에 보낸 편지
11월 12일에 린리(隣裏:이웃 동네)친척과 친구를 작별하고 만리타국 한국으로 의원선도사로 나아가며 구천리를 육일 동안에 오는데 호호탕탕한 들과 첩첩한 로키산협 사이로 지나올쌔 황황한 경치가 안목을 놀래며, 처처에 철로길이 산꼭대기에 천여척 씩 높기도 하며 강과 평지가 우리 밑에 있는 것을 보니 그 항황한 것이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고, 동행들과 서로 사귀기도 하였으며, 18일에 반구버(뱅쿠버)에 득달하여 황빈으로 떠날쌔 상등선객과 이등성객이 합하여 칠십 칠명인데 이십오인은 선도사로 가는 이들이라.
하등에는 청인 삼백 명이 탔으며 선도사들 중에 여덟가지 회에서 나아가는 이들이라도 합동하여 기도회로 모아 밤마다 기도회를 보며, 성일에는 상등에서 두번 예배하며 선객들을 일개인 씩 만나 힘써 전도하니, 이같이 정성스런 선교사 무리들을 또 보지 봇하였으며, 우리가 한 식구같이 합심하였으니 떠나기 섭섭할 터이오며, 모든 각명 교회분별지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혼 구할 목적 뿐이라.
청국인 가운데 일하기가 재미있고 첫 날에 내가 하등에 내려가매 영어 하는 청인 하나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당신은 좋은 사람이올시다. 보기에 선인 같사오며 예수의 사람 같소이다" 할 때에, 내가 한 가지 깊이 깨달은 것이 있는 것은 우리가 주의 산 편지가 되어 모든 자의 읽는 바 되었으니, 성신께서 우리에게 충만하사 우리 얼굴로 자기를 나타내며, 우리가 말 아니 할지라도 묵묵히 그리스도를 행실로 전파할 것이요, 통변관으로 청인들에게 주의 사랑을 일러주었으며, 매일 성경공부가 더욱 재미있고 우리에게 복이 되며, 륙일 날은 내가 인도할 차례인고로 인도하는데 문제는 헌신함이라.
금월 말일에는 선도사회로 모였는데 선객들과 수관들이 도혔는데 재미가 많으며, 고명하신 선객들도 방청하였는데 홍콩군수와 캐나다 태평철로회사 부회장 남오스드렐랴 이덜네잇 성공의총수 웨잇쓰께서 개회하고 연설하는 중에 선도회 일이 유익한 것을 친히 알아보고 칭탄하시며 청국 갔다가 다시 회정하는 선도사 삼분이 청국에서 행하던 일을 연설하니 듣는 자마다 재미있어 하고 유익을 많이 받은 줄로 아나이다.
12월 초 2일. 지금 우리들이 일직이 일어나 짐들을 묶고 횡빈 항구에 하륙하려는 중이온데 원견에 생선 잡는 배들이 무수하며, 우리에게 심히 이상한 것은 일본 나룻선 오십 여척이 화륜선 선객들을 맞으러 오는 중 각 선객 하나씩은 얻어 싣고 가려 하는데 우리는 친구가 배를 가지고 오셨기에 짐을 바꾸어 실리고 항구에 들어간 짐들은 짐군에게 지워가지고 해관에 가서 상고하고, 또 구경할 만한 것은 인력거라. 처음 볼 때는 심히 이상하더니 차차 사귀어 심상(尋常:대수롭지 아니함)하고 말과 같이 빠르게 가는데 매시에 이십리 가량이나 가는지라.
화륜차를 타고 동경으로 발행할쌔 동경은 횡빈서 오십리라. 차를 타고 지날쌔 모든 경치가 화려하고 공중에 새소리와 일기가 잔잔하며 사시로 피어 있는 화초와 화려한 산천도 많아 과연 극락세계라 할지라. 오래지 아니하여 일만 이천 명이 사는 동경에 득달한지라. 매시에 팔천 씩 주고 인력거를 얻어 타고 성내르 구경할쌔 유명한 절에도 가보니 금과 주석으로 아름답게 새겨놓은 것을 볼 때 복음의 특권을 무수히 감사하였으며, 그들에게 주의 구원하시는 도를 전파하기를 간절히 하였으며, 횡빈에서도 유명한 곳과 학교를 가본즉 공부과정에 복음을 합하였으며, 각처에 다니며 풍속과 사는 법절을 다 구경하였는데 한 신도의 집에 모여 기도회를 보는데 통변관으로 몇마디 권면하고 폐회하였는데 주인께서 차와 과자로 대접하더이다.
신호에서 한국 오는 일본 화륜선을 타고 오는데 통변관으로 일본사람에게 전도하였으며 십이월 십삼일 오후에 처음으로 한국이 보이는데, 한국은 반도국이요 북은 만주와 셔비리아(시베리아)요 청국과 일본 양국 간에 있어 북위선 삼십 삼도 십오푼에서 기(起)하여 사십 이도 이십 오푼에 지(至)하고, 인종은 이천만이 넘으나 섬과 마을에 인종이 드문 것 같더라.
남편(南偏)은 온화하고 북편은 합중국 일기와 방불하나 캐나다 보다는 온화하며 경성에 큰 강이 겨울에는 몇주일 덩안 얼어있으며, 산이 많고 물이 많으며 동북으로는 초목이 많고 땅이 윤택하니라. 부산항구는 대한 남쪽이니 경성서 천리라. 항구에 하륙할 때에 하듸의원이 맞으려 륜선에 오르셨거늘 함께 따라 항구에 들어가서 선도사 기도회 모인 곳에 참예하였더니, 주깨서 우리와 함께 하셨으며 유익을 많이 받았나이다.
한국 의복은 옥당목(玉唐木:품질이 낮은 옥양목)이요 겨울에는 솜을 두어 입는데, 모양은 자루와 같고 우리 바지보다 사배나 넓고 신발은 짚신과 목신이더라.
짐군은 의관을 쓰지 아니하며 어른은 상투를 틀고 남자 아해는 머리를 땋아 늘였으며, 그 얼굴색은 북아메리카에 토인과 비슷하고 수염이 덕으며 짐군들은 지게에다가 무거운 짐을 지며, 소와 말은 쓰되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이 많고, 우유 짜는 법이 없으되 타국인들을 위하여 혹 짜며, 돈은 낮은 쇠로 만들어 가운데 구멍을 내어 새끼에 꿰어 쓰며, 거처하는 집들은 거반 다 흙집이라.
방바닥은 돌과 흙으로 만들고 밑에 불을 때어 밥을 지어먹으며, 방은 사방 팔척 씩이며 집집이 방 둘 씩은 있고 지붕은 짚으로 이었으며, 방바닥에서 자고 먹으며 출입문은 장은 사척이요 광은 이척 오촌 쯤 되며 종이로 발랐더이다,
차후에 우리 일하는 것을 기록하여 보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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