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사라의 두번의 웃음

솔석자 2018. 5. 19. 14:56


사라의 두번의 웃음


하나

  

 아주 신앙적으로 난 사람(?)이 아니고는 보통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을 식별하기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사람을 섬길 자세가 된 사람이 아니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대접하며 섬기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정성껏 아까와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줄 미리 알았건 그렇지 않았던간에, 아브라함의 손 대접하는 마음은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잘 대접을 받고 휴식을 취한 후 셋 중 한 분이 축복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다시 오겠는데, 그 때 네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로다.”

  믿기지 않는 얘기, 늙어 월경도 끊기고, 더구나 영감은 구십구세나 되었는데....

 장막 안에서 무심히 듣던 사라는 깜짝 놀란 것은 잠시, 웃고 말았습니다.


 중국 성경에는 그 웃음을 안쌰오(暗笑)’라고 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은근히 웃다. 남몰래비웃다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능하신 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신 분,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너무 자주 우리는 잊어버리고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삽니다.

 사라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이야기지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어김 없이 사라는 늙고 노쇠한 영감태기,백 살이나 먹은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하여 그렇게 되리라 한 기한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늙어 난 아들, 지금으로 치면 증손자나 고손자나 될 만큼 아버지와 자식간의 차이는 99살이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대견하겠습니까? 그 나이 되도록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아 보는 늙은 모친 사라의 마음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언제 비웃었는가?’싶도록, 어쩌면 뻔뻔스러울정도로 사라는 다 잊어버리고 기뻐 웃었습니다.

 중국 성경에는 또 이 웃음을 씨쌰오(喜笑)’라고 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덧붙여 씨쌰오안카이(喜笑顔開)’라고 했는데 이것은 희색이 만면하다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하면서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는 사라의 모습에서 일년 전 그 축복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몰래 비웃었던 불신의 마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이 잘못을 알고 반성한다는 것이고 또 그런 미성숙한 상태에서 온갖 시련을 만나며 그것들을 경험하는 가운데 성숙하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알면서도 실수하고 자기에게 유익하기만 원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생활 태도, 그리고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속고 또 속아도 여전히 믿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안쌰오(暗笑)가 아니라 씨샤오(喜笑)를 원하시는 그 사랑을..

   


'빼랍속 사금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0) 2018.05.19
가장 큰 중매장이  (0) 2018.05.19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0) 2018.05.19
장로님 귀는 당나귀 귀  (0) 2018.05.18
영원한 비밀은 없다  (0) 201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