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제사의 현대적 조명
이 종 우 목사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당연히 구약성경을 그 배경으로 한다. 예배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은총이다.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인간은 자기를 지어주신 하나님께 경배드려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단을 쌓는다. 비록 저들이 영적 눈이 멀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류문명의 어느 곳에도 신을 향한 예배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그 대상이 우상이든 심지어 사단이든 인간은 초월적 신에게 경배하고자 하는 종교적 본능이 있다. 그것은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1. 제사와 예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인류역사기록의 최초의 예배사건은 아벨과 가인이 각기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일들이다(창4장). 그러나 예배의 집단적 성격을 감안할 때 공적 형태를 갖춘 예배 행위는 셋 때부터라고 짐작된다. 아담이 아벨 대신에 얻은 아들 셋을 낳은 직후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 26)고 기록하고 있는데, 카일(Keil)은 이 말씀을 공적 예배를 드렸던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확실한 예배 형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는 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배의 본질적 요소는 만남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만남이 이뤄질 때 거기에 예배라는 행위가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불러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50:5)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이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인간은 진노받아 마땅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무한한 간격을 연결하여 그 만남을 가능케 해야만 한다. 그 간격을 이어주는 매개적 사건이 곧 제사이다.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는 것이 곧 예배이다. 그러므로 제사 자체가 예배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사는 예배를 가능케 하는 중보적 행위이며, 인간은 제사를 통하여 신께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중에 그 누가 제사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다.
제사란 구약에는 짐승의 피 흘림을 통하여 드렸는데 그것은 곧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했다. 그렇다. 천하 인간 중에 그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예배는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사건이 그 기초가 된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듯이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고 할 때 진정이란 말은 "진리"라고 하는데 곧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예배하라는 뜻이다.
2. 구약의 5대 제사와 그리스도
구약성경 특히 레위기 1-7장에는 5대 제사들의 규례들이 나타난다. 그 각각의 의미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각 제사들이 그리스도께 대해 의미하는 바를 보면,
(1)번제(the Burnt Offering) :
제물을 완전히 불살라 드리는 제사였다. 히브리 말의 뜻 자체가 제물의 연기가 "올라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헌신과 십자가 죽으심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번제가 되신 것이다(빌 2: 6-8).
(2)소제(the Grain Offering) :
"곡식의 제사"란 의미인데 그냥 드리지 않고 곡식을 볶아서 가루로 빻아 드렸으며, 또는 그것으로 구운 빵(전병)을 만들어 드렸다. 곡식은 모두 가루가 되어졌고 태워져야 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봉사를 의미한다(막 10: 45).
(3)화목제(the Fellowship Offering) :
평화를 위한 제사란 뜻이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그 앞에 나아갈 수 없었는데 이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들의 화목제물로 희생되심을 의미한다(엡 5: 2).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다(요14:27,20:19).
(4)속죄제(the Sin Offering)와 속건제(the Guilt Offering) :
양자가 다 죄를 해결받기 위한 제사인데, 죄악들의 성질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속죄제의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종교적인 성격의 죄로서 고의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죄를 포함한다.
속건제의 죄는 여호와의 성물이나 남의 물건을 범한 죄 등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해 죄를 해결받는 것을 의미한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모두 [죄]란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 말은 속죄제와 속건제는 모두 죄를 그대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예수님의 머리, 어깨위에 우리 죄를 다 맡겨 드린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죄짐을 다 지시고 하나님 앞에서 불살라 지신 것이다.
다른 제사에서 드려지는 냄새는 모두 하나님께 향기로운 것이었지만(번제--레1:9,13,17; 소제--2:2,9; 화목제--3:5), 속죄제와 속건제는 어느 것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죄가 향기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죄를 태우기 위해 죽으심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화목제적 성격으로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으나 속죄제적 성격으로는 향기롭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낯을 돌리셨던 것이다(마 27: 46).
3. 구약제사의 현대적 조명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희생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피 흘리는 제사(sacrifice)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미치는 제사(the Sacrifice of eternal once)를 드리셨기 때문이다(히 9: 27,28). 이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저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서 완료되었다(히 9:23, 24;4:14).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고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언제나 하나님께 즐거이 예배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또 하나의 희생적 제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적 삶이다.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이나 화목을 위한 제사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이란 점에서 "산 제사"(living sacrifice)라고 일컫는다(롬12: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셨던 제사와 같이 우리 자신이 바로 소제가 되어 하나님 앞에 주님의 교회와 이웃을 위해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소제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아야 하며 반면에 반듯이 소금을 쳐야 한다(레 2:11-13). 우리들의 봉사생활에 탐욕과 정욕의 누룩, 이기심과 쾌락의 꿀은 제해야 하며, 소금같이 부패하지 않고 희생되어 사랑의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전한 희생의 번제로 불살라져야 한다. 하나님을 본받아 세상의 죄와 구별되어 거룩해야 하며(벧전1:14),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린 것처럼(요17:4) 우리들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다 타지 않은 제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가인의 제물과 같지는 않은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 세속 정권과의 타협을 불허하고 여호와 유일신교를 위해 이세벨의 권력과 싸우다 불병거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 하나님을 힘으로 하여 살며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했던 선지자요, 시인이요, 왕이었던 다윗, 이런 분들은 모두 번제와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성별된 삶을 살다 간 분들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케 하는 화목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고후5: 18).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마5: 9/현대어 성경)
속건제와 속죄제는 모본의 성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만의 독특한 중보적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한 중보의 제물이 될 수 없다.
예배와 생활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하나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그 예배도 가증한 것이 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 23)고 하셨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행위를 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한 번제로써, 온전한 소제로써, 화목제물로서, 생활을 통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예배와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다(시5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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