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모름지기 이름하여 별식이라는 것은…(97.06.22)

솔석자 2019. 4. 13. 16:22

모름지기 이름하여 별식이라는 것은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가 여물기 전의 춘궁기(春窮期)

4~5월의 약 두 달간을 보릿고개라고 불렀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나물을 듬뿍 넣고 쌀독을 긁어 끓인 나물죽,

보리쌀이 모자라 밥그릇에는 감자가 가득,

감자를 빼고 나면 밥은 흡사 돌산에 바윗돌을 뺀 뒤의 흙자리 같았습니다.

강냉이 밥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

고구마 줄기도 쪄먹고.....

 

식량이 다 떨어지면 사람들은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벗겨 속껍질을 씹고,

아이들은 송구를 빨며 아이스케끼라고 위안을 삼았던 시절,

사람들은 질기디 질긴 목숨 죽지 못해 산다는 저주스런 한숨을 뱉으며

나무그늘 아래 허기져 누웠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고 노래하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픈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들이 말입니다.

 

그 일들이 거짓말 같게 들려지는 지금,

북쪽에 우리 형제들이 굶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또 거짓말일걸하면서 전혀 믿으려 않았었는데...

엊그제 텔레비젼(電視)에서 방영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힘 없이 그늘에 떼로 탈진하여 퀭한 눈으로 누운 아낙네들,

밭가운데 쓰러져 죽어가는 젊은이,

남의 눈 아랑곳 않고 웃옷을 벗어제치고 이를 잡는 아낙의 모습에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 대예배를 마치고 친교의 시간에 함께 나눈 점심식사의 차림표는 쌈밥이었습니다.

싱싱한 상추가 상에 오르고, 참치 오이김치에 된장을 얹고 싸서 볼이 터지도록 아구아구 먹었습니다.

물론 식사하기 전 우리의 기도는 경건하였고 각 사람들에게는 굶주린 형제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상추쌈이 한 쌈씩 들어가면서 그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숱한 기도는 앵무새 흉내같은 형식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교인들과 마주 한 자리에서,

형제들의 굶주림을 생각하며 주일 점심 한 끼 강냉이밥을 먹으면 어떨까요?”하고 제의했더니

보릿고개를 겪으신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

좋겠지. 강냉이에 팥을 섞어서 밥을 하면 그거 별미지하시는 것입니다.

 

추억은 아픈 것이라도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

제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권사님의 추억은

강냉이밥을 먹어야 했던 그 때의 비참함까지도 아름다워 어쩌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났다고 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추억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별식은 특별한 먹거리라서 별식이지요.

맛 없는 별식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별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더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구요.

별식도 한끼의 식사입니다.

별식을 먹을 때마다 잠시만이라도 진지하게 이것도 없어 굶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고,

또 지금 그렇게 굶어가는 형제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