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말이 무슨 죄가 있으리요마는…

솔석자 2019. 4. 13. 16:00

말이 무슨 죄가 있으리요마는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고 제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내 구주로 모시기 전, 그러니까 나의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나였던 그 때에는

버리지 못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자랑할 만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별 쓰잘데기 없는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그 때는 상당히 좋았던)을 끌어안고설랑은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내 안에 주님이 들어오신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탁월한 선택인지,

그 분이 날 먼저 찾으셨음인지 그때는 정확하게 분별되지는 않았었지만,

단 하나,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배설물 같고 분토같이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으로 나는 새로 태어난 기쁨으로 감사가 충만해졌습니다.

이전에 내가 즐기던 헛된 것들을 아직 붙들고 미련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안타깝고 그들이 불쌍할 수 없어 그들을 보며,

결국엔 핀잔과 조롱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내 안에 충만한 평화의 비밀을 전하는 일에 나는 침을 튀겼습니다.

정말 뜨거웠고, 기쁨으로 봉사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젊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에게는 천관녀라고 하는 사랑하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유신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다른 일은 마음에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으레 그곳으로 가서 늦도록 그녀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런 아들을 불러,

네 화랑의 몸으로서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하려면 열심히 심신을 수련하여야야 할진대

이렇게 방탕하니 어떻게 장부라 할 수 있겠느냐?”하고 엄하게 훈계하셨습니다.

유신은 어머님의 말씀에 자기의 지금까지의 행실을 깊이 반성하고

이전의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 속에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녁, 유신은 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곤하여 말 위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말이 멈춘 기척에 눈을 뜨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상에 배였는지라 주인이 그리로 가길 원하지 않았는데도 영리한 말이 멈춘 곳은 천관녀의 집이었고

그녀 또한 늘상 그랬던 대로 당연하게 그를 반겼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유신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별안간 칼을 빼어들어 단칼에

사랑하는 명마의 목을 치고는 야속한 눈으로 쳐다보는 천관녀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말이 무슨 죄가 있으리요마는 무안함을 감추려는 의도이기보다는

자기의 결심을 사랑하는 말의 목을 자름으로 굳힘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골백 번 결심을 하고, 골백번 말머리를 자른대도

이전의 잘못된 행실을 다시 범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후로 자기의 그 결단의 의지대로 행실을 바로잡고 심신을 수련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고 부흥케 한 훌륭한 장군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십자가 밑에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들과 분토만도 못하게 여겼던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주워 모으고 싶어하는 욕망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기도하며 다짐했던,

말 목을 자르는 것과 같은 결단의 시간’, ‘소명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