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형광등 불빛 대낮 같아도…(97.07.13)

솔석자 2019. 4. 13. 16:52

형광등 불빛 대낮 같아도

 

어릴 적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강원도 두메산골 우리 동네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제삿날이라도 돌아와 양초 몇 개만 켜 놓으면 그나마도 대낮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웃에 마실 갈 때는 초롱을 들고 다녔습니다.

연기로 새카맣게 그을음이 붙은 부엌 벽에 걸렸던 초롱에 대한 뜬금없는 생각들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린 아픔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기름 닳는다고 사람들은 일찍 저녁을 지어먹고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친구들은 유난히도 동생들이 많았습니다.

무슨 애기냐구요?

그냥 넘어가지요.

 

내 초등학교<작년(去年)만 해도 국민학교라 불렀다> 4학년(1967년) 가을 쯤이었던가?

강원도 두메산골 우리 집에도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대개가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때였음에도,

그 날은 해가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코흘리개 삼남매는

 -지금은 장성하여 시집가고 장가가서 자식들의 그맘때를 보는 나이들이지만-

날 빛보다 더 밝은형광등 불빛 아래서 한바탕 손을 잡고 뛰어 돌아가며

쪼끄만 것들이 어울리지 않게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깔깔대다가

불빛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가리(?)를 맞대고 배깔고 쭈욱 엎드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산수 숙제를 했습니다.


밝은 불빛 아래서 처음 공부하는 그 기분은 그 전에 아버지가

빨강색 앉은뱅이 책상을 사오셨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젠 더 이상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 동네라서 학우들에게 멸시당하는 듯한 자격지심은 없을 것입니다.

길 가 전파사 앞에 서서 흘러나오는 백열등 불빛에 넋을 잃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너무 신나는 일이라 우리 집 전기 들어온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아니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그 때 그 기분에 집집마다 들어가서

우리 집 전기 들어와요하고 싱겁을 떨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십중팔구는 그랬을 것입니다.

 

전기를 공급받게 되자 지금껏 귀하게 대접을 받던 호롱과 등잔 받침 등은

된(뒤안) 굴뚝 옆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던 것,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던 귀한 것들이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장죽 담뱃대를 무시고 형광등 환한 불빛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도

호롱불 얘기는 벌써 없었던 일로 잊어버리신 듯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헛된 세상에서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다가 주님 내맘에 들어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신 날부터,

나는 성경 찬송을 옆구리에 끼고 예배당에 나갔습니다.

설교 들으며 결단했고 찬송 부르며 울었고,

기도하면 위로와 평안이 넘쳤으며,

성경 한절 한 절이 꿀처럼 달았습니다.


갑자기 거룩해진(?) 나를 보고 전에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저 녀석 예수 때문에 돌아버렸다고 걱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아직도 배설물 같은 것들을 부여잡은 그 친구들이 불쌍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게 되자 술친구들이, 놀기 좋아하던 방탕벽이 떠났습니다.

그래요. 내가 버렸다기 보다는 그것들이 먼저 나를 떠났습니다.

전깃불이 켜짐으로 어둠이 물러가듯 그것들은 그렇게 나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먼저 신청을 해야 하고, 매월 꼬박꼬박 요금을 내야 합니다.

이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전기 공급을 중단합니다.

형광등 불빛 대낮 같아도 그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찾은 빛을 어찌 형광등 따위에 비하겠습니까?

이 빛은 영원히 꺼지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믿는 것 뿐입니다.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생명이신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외칩니다.

내 안에는 빛이 계십니다.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


여러분도 빛을 찾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