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을보리

1881년/ 열려지는 빗장/  윤치호에 대한 이야기(1)

솔석자 2016. 5. 27. 17:50

1881

열려지는 빗장

 

조선의 마지막 가을

모두가 절망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월     신사유람단 일본 방문 신문물제도 시찰

                                   윤치호, 유길준과 함께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동행

                                   윤치호, 일본 기독교 계통 동인사(同人舍)에서 수학

 

                       12월     영선사(營繕使) 김윤식(金允植), ()의 북양대신

                                  (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과 조 미수호(朝美修好)

                                   에 관해 협의

 

 


윤치호에 대한 이야기(1)

 

   새로운 세상으로 부르심

 

   국가 운명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조선 정부는 고집스런 유생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국제정세에 따라 개화의 방향으로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마침내 18811, 조준영,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일본에 파견하여 70여 일 동안 일본 정부의 행정기관과 산업시설 그리고 군사 및 치안, 세관 직제 등을 시찰케 하고, 당시 일본과 세계정세를 파악하도록 하였다.

   이때 윤치호는 18세의 청년으로 유길준과 함께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동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신사유람단이 귀국할 때에 함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일본에 남아서 당시 일본의 개화사상의 지도자이며 기독교인인 나까무라가 설립한 동인사(同人舍)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명치유신 이후 급변하는 일본을 바라보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1930111일자에 게재되었던 윤치호의 신사유람단에 대한 회상을 들어본다.

 

   서력 일천팔백팔십일년이니 태황제 십구년 신사(辛巳)년이외다. 그때 청년 재상 민영익(閔泳翊)씨 집 사랑에 이모(李某)라고 하는 중이 있었지요. 이 사람은 본시 볼모로 일본에 가 있다가 일천팔백칠십육년인가 일본유신 이후 조선서 처음 일본으로 갔던 수신사(修信使) 김기수(金綺秀)가 다녀올 때에 일본말을 잘 하므로 데리고 귀국하여, 민영익 뒷 사랑에 있으면서 일본 사정을 잘 알고 일본의 개화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였으므로 민영익씨의 총애는 물론 상감께서도 여러 번 불러보실세, 그의 발의로 일본의 신문명을 시찰하고자 양반 십이인을 선정하여 일본으로 보내었소.

   이것이 소위 십이 신사(十二紳士)의 일본 유람인데, 그들은 각기 두 사람씩의 수행원을 거느리게 되었소. 수행원이라는 것은 지금 서생(견습생)과 마찬가지로, 견학을 시킬 작정이었겠지요. 십이 신사 중에는 박정양, 홍영식, 조병직, 어윤중씨도 있었는데 나는 유길준씨와 한가지로 어윤중씨 수행원으로 뽑히었소. 우리 일단은 육로로 부산에 이르러 통역으로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 몇을 데리고 안녕환(安寧丸)이라는 자그마한 기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지요. 지금 생각하니 기선으로는 말할 수 없이 작은 배였지만, 그때는 처음 보는 배라 이런 배도 세상에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지요.

   유람단 일행은 각기 방향을 달리하여 혹은 내무성, 혹은 외무성 등 여러 곳을 나누어 약 사오 삭() 동안 견학을 하고 그해(1881) 가을에 귀국하였는데, 수행원이 십사인이나 있었지만 별로 열심을 내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직 유길준과 나만이 떨어져서 일본말을 연구하기로 하고 유길준씨는 경응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고 나는 동인사(同人舍)에 입학하여 일본말을 배우기 시작했소. 그 때 내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지요. 우리는 우선 일본말부터 배워야 가장 가까운 일본에서 신문명을 수입할 수 있으리라는 선견이라 할는지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오.”

 

   여기에서 윤치호는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양반이라는 신분 때문에 아직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