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년(去年:작년) 십이월에 허을 의원에게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오기를 기다리더니, 금년 오월 십오일애 답장보오니 대한 듯 기쁘오며, 수만리 밖에 있어 피차 자주 소식을 듣지 못하와 섭섭하지마는 이곳에 있는 김창식은 허을 부인과 박서방 내외 생각날제 마다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는 내 마음이 기쁘기가 만나본 것 같소이다. 아마도 허을 부인도 이 편지뿐 아니라 때때로 조선 교우를 위하여 기도하겠나이다. 그러즉 우리 피차 마음은 오직 하나님과 한 구주께 있고, 기도한 후에 마음에 기쁘게 하는 것도 또한 성신이니, 우리가 육신은 각각 나라에 있으나 마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라에 같이 있소이다. 예수 그리스도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같지 않소이다.
세상 나라는 세상 사람마다 거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 사람마다 거할 수 없소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데리고 거하였고, 또 예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을 때애 모세와 엘리야가 베드로에게 나타남과 같이, 내가 때때로 허을 의원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구주와 한 가지로 있는 것 같소이다. 구주가 항상 아해를 사랑한 것 같이 허을 의원이 항상 아해를 사랑하시고 전도하는 말씀이, 지금도 두 세사람 모여 앉으면 허을 의원 입으로 가르치던 말과 손으로 가르치던 형용이 잊히지 않고 이야기하나이다.
허을 의원이 사년 전에 나와 로서방과 같이 평양에 올 때에 언약하신 말씀이,
"평양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하나님을 공경할 줄 모르매 우리 세 사람이 불가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 악한 사람이 다 변하여 선한 데로 돌아오게 하고,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좇다가 세상 끝날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가서 영원한 복을 받고 영원한 영화를 받자" 하고, 우리를 데리고 평양에 와서 여러 가지 군축을 받을 때에 조금도 무서워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께 영생하는 상 받기를 생각하고 힘써 전도하고 병든 사람을 많이 고치고, 또 그뿐 아니라 허을 의원 제자 중에 진실한 사람이 있사오니 허을 의원이 비록 세상을 일직이 떠났으나 우리로 더불어 언약한 일대로 다 이루고 천국에 갔으니, 우리도 허을 의원 가르친 대로 이 세상에서 행하다가 끝날에 속히 허을 의원에게 가서, 피차 행하던 말을 하겠소이다.
허을 의원은 주의 말씀대로 행하고 우리를 그대로 행하라고 가르쳤사오며, 우리가 그대로 행하고 성경의 뜻대로 주를 힘입어 가면 허을 의원을 반갑게 보고져 하나이다. 허을 의원이 아무 사람이라도 만나면 전도하는 말이,
"노형! 하나님을 알겠소? 하나님이 우리를 내시고 기르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겠다" 하며, 또 손으로 천당길과 지옥길을 그려놓고 하는 말이,
"사람이 죽은 후에 길 둘이 있으니, (1)천당 가는 길이오 (2)지옥 가는 길이오니 노형들이 어디로 가겠소?" 하면 듣는 사람이 감격하여 복종하는 이가 많고, 또 각 사람이 제 집에 돌아가서 허을 의원의 자비함을 칭송하는 사람이 많소이다.
그러므로 평양 교우들의 말이, "허을 의원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사랑하였으매 천국에 가서도 우리를 사랑하겠다" 하고 이야기하오며, 또 허을 의원이 살았을 때에 한 가지로 다니며 한 가지로 군축받은 사람이 지금도 있기로 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나이다.
나와 오서방이 옥에 갇혔을 때에 허을 의원이 옥에 들어와 우리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던 일이 지금도 현연하고, 또 리항성과 김치선 두 사람이 허을 의원과 한 가지로 전보국에 다니며 서로 사귄 정이 지금까지 변치 않고, 또 김락성과 조병오 두 사람은 허을 의원이 기도할 때나 혹 구경갈 때나 항상 손을 잡아 한 자리에 앉치우고 사랑하던 정이 지금도 온전히 있고, 또 조준영과 주겸조 두 사람은 허을 의원이 친히 불러 세례줄 때에 성경의 오묘한 뜻을 물어도 보며 가르치던 정이 지금도 성경 책을 볼 때마다 점점 더 깊어가고, 황정모는 난리 때에 서울가서 위로받은 정을 지금까지 생각하고 회당 집 보기를 자기 집 보듯 하고, 또 조한규는 허을 의원이 눈병을 고쳐준 후로부터 지금까지 회당을 떠나지 않고 진실한 교우 되고, 허을 부인이 병을 볼 때에 같이 다니던 작은 아해 구응소는 난리에 집이 없어지고 또 이질에 모친이 죽고 지금 구십리 밖에 가서 매우 살기 어렵소이다.
이 여러 사람이 허을 의원의 행적을 친히 보고 본받기를 힘쓰며, 전도 많이 하여 지금은 다른 사람도 많이 교회에 들어왔소이다. 그런즉 평양 새문안 병원과 아여동 회당은 허을 의원이 고생 받으며 설립하던 공로가 지금까지 있소이다. 우리 무리가 두 해 동안에 서국 교사 없이 허을 의원의 가르친 말씀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여 지금까지 있더니, 금년 초삼일에 영국 의원 파월씨가 왔으니 매우 든든하고, 또 우리 교우들이 항상 말씀하기를 허을 부인 다시 보기를 원하오며, 박서방 내외는 다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보고져 하오며, 또 내 아들 영진이는 쉐웃과 한 해에 낳았으매 많이 자랐습나이다.
내 바라는 것은 부인과 쉐웃과 박서방 내외가 길이 평안함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나이다.
주강생 일천팔백 구십륙년 오월팔일 교제 김창식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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