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歲月)
희나리 고사목(枯死木)도
죽기 전에는 할 말이 많았을 걸
위세 떨치며 호령하듯
뭍 나무들 위에 어른 대접 받더니
부귀고 영화도 세월따라 흘러흘러
병들어 골골하니 풍채도 시들었네
막 크는 젊은 놈들 업신여겨 타박한다
웬수 같은 늙은이 안 죽어 지겹단다
'에구,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서도
삼줄 같이 질긴 게 목숨이여
죽지 못해 살다가 죽은 듯이 살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로
가슴 속은 병들고 썩어가도
서글픈 사랑 내리 사랑은
자손들 잘 되길 빌었으렸다
큰 산 중턱에 이파리 붉게 죽고
등걸 바삭거려 부서져도
오늘도 고사목은 죽은 그대로
태고(太古)의 역사를 말한다
-1994.08. 장백산(長白山) 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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