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공소시효
마른 하늘에 ‘쿠르릉’ 울려대는 때 아닌 뇌성은 무슨 이유인가요?
옛부터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은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먹장구름으로 덮히고 뇌성벽력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하나님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드린 일도, 또 앞으로 그러겠다는 뚜렷한 신앙심도 없으면서
그래도 자기를 둘러싼 두려움을 막연하게나마 전능한 힘을 빌려 떨쳐버리겠다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두 손을 모으게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남선녀들의 순수한 마음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억울한 표정 짓는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 사람들은 ‘전에는 다 그렇게 했던 일’이라면서
자기가 한 일을 도리어 정당화 시키기에 바쁩니다.
애국심으로 미화한 권세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하여,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기 위하여
한없이 힘 없고 순한 양의 모습으로 힘 있는 자에게 더 바쳐야만 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라는 말을 남기며
힘 없는 사람들을 언제까지나 비웃기라도 할 것같던 하늘을 찌르던 권세가
하늘의 심판을 받게 되니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던 사람들은 하늘의 힘을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소시효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공소시효란 어느 죄에 대한 확정판결 전에 시간의 경과에 따라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입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그 범행이 탄로나지 않고 법으로 정한 어느 기간이 경과하면
그 후에 범죄가 밝혀져도 처벌을 할수 없습니다.
그것을 완전범죄라고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놓고 감쪽같이 처리했다고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완전범죄라고 마음을 놓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죄악에 대하여 공소권을 제기하는 검사가 되실 것입니다.
그의 죄를 낱낱이 빠짐없이 고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새 사람이 된 사람은
그 죄에 대하여 더 이상 고민하고 죄책감에 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 년 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재림하시는 그 날 하나님 앞에서 변론하시는 변호사로 서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중에 살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어
심판의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주 예수로 힘 입어 살다가
주님 오시는 날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9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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