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울타리 밖으로

솔석자 2019. 4. 12. 00:11

울타리 밖으로

 

어느 화창한 봄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작은 아이 녀석의 손에는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비닐 주머니가 들려있었습니다.

요즈음 초등 학교 정문 앞에는 부화장에서 부화시킨 병아리 중에서

건강하지 못한 병아리를 싸게 사다가 파는 장사꾼들이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용돈 중 일부를 아껴서 병아리 세 마리를 샀습니다.

 “다녀왔습니다!”하는 아이의 인사도 손에 든 주머니 속의 병아리 소리들만큼이나 들떠 있습니다.

엄마는 비닐 주머니 안에서 연신 삐악거리며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병아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빈 밀감 상자를 준비했습니다.

아이는 병아리를 밀감 상자 안에 넣어 두고 물그릇과 모이 그릇을 넣어 주고는

턱을 괴고 옆에 앉아 자리를 떠날 줄 모릅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먼저 병아리의 안부(?)를 물어 봅니다.

조금만 울어도 배가 고파 그렇다고 하면서 안달하고 조바심을 합니다.

식구들 모두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입니다.

한 번은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을 들어섰는데 아이가 작은 소리로 신경질적으로

엄마가 노래를 부르니까 병아리가 잠을 못 자잖아!’하고는

검지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대고는 조용히 하랍니다.

온 식구들이 느닷없는 새 식구인 불청객(?) 병아리 세 마리 때문에 초비상 사태입니다.

 

어느 날 무심코 마루에 올라서서 들여다보았더니,

, 글쎄 날개가 자랐네요.

새삼 신기하기도 하구요.

! 이것이 생명이라는 것이구나.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되듯 병아리도 마냥 병아리로만 있지 않고

점점 닭의 모습으로 자라가리라는 불변의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병아리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구요.

들어가고 나오면서 이 녀석들, 얼마큼 자랐나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요.

이젠 제법 울음소리도 건강해졌습니다.

꽁지가 나오기 시작했구요.

다리도 깡통 하니 좀 길어진 듯 싶습니다.

 

오늘 오후, 또 전처럼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데

그 중 제일 작다 싶은 녀석이 느닷없이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러기를 무려 여남은 번이나 하다가

한 순간 부리를 상자 난간에 걸치더니만 작고 앙증스런 날개를 푸드득거려

애써 상자 위에 장하게 올라섰습니다.


! 이게 웬일입니까?

지금까지 종종거리던 자기 보금자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넓은 세상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삐악거리며 자기가 개척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자기가 올라간 곳에서 보니 상자 안으로 자기 친구들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다시 상자 안으로 들여보냄을 받은 그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도약을 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나갈 수 있습니다.


친구들은 그 기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생각이 없습니다.

현재에 만족하며 그냥 살아갑니다.

세상 밖, 거기에는 더 큰 무엇이 있는데...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닌, 차원(次元)다른 어떤 것이........ (9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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