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랍속 사금파리

거듭 남(重生)

솔석자 2019. 4. 12. 12:10

거듭 남(重生)

 

나는 고작 스무날 남짓을 울어제껴 자기를 나타내고자

열 일곱 해를 유충(幼蟲)으로 보냅니다.

알에서 부화하여 굼벵이가 되어 땅 속이나 초가집 지붕 같은 곳에서 살며,

아니 산다기 보다 그냥 기다린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나무에서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사람들은 굼벵이 시절의 나를 전혀 대우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주 없는 사람을 가리켜 나에게 빗대어 말하기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갈아엎다가 날카로운 쟁깃날에 걸려 올라온 나를 집어서는

햇빛 뜨거운 길바닥으로 휙 던져 버립니다.


아직도 나의 필요성 내지는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땅이 나로 인하여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땅이 나로 인하여 살아 있게 된다는 것,

나의 배설물로 땅이 기름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싶습니다.

하기야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절대 나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굼벵이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주어진 일이 있겠기에 말입니다.

그냥 주저앉아서 불평만 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날들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나는 기다림에 있어서 결코 조바심하여 서두르지 않습니다.

빨리 노래하고 싶다고 정해진 법칙에 항의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는 누가 그랬다는 것처럼,

아직 내 때가 아닙니다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 나는 크게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노래로 실록의 여름은 더욱 싱그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미로 거듭 났습니다.

 

굼벵이가 굼벵이로서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면

결코 건강하게 거듭나는 매미가 되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지 않고 땅 위의 생활에만 만족하면

그냥 본래 흙인 그대로 다시 흙으로만 돌아가 생명이 끝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신 은혜로 허물과 같은 죄짐을 벗어버리고 거듭난 우리는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매미처럼……(96.09.15)

'빼랍속 사금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숟가락 알기를…  (0) 2019.04.13
횡설수설(橫說竪說)  (0) 2019.04.12
당신은 누구십니까?  (0) 2019.04.12
울타리 밖으로  (0) 2019.04.12
차이(하나님의 뜻)  (0) 2019.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