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칠) 今朝鮮半島(금조선반도)에 在(재)한 佛敎(불교)
○中華國(중화국)의 佛史(불사)난 以上(이상)에 槪論(개론)하엿거니와 今(금)에 朝鮮半島(조선반도)에 在(재)한 佛法(불법)을 論(논)컨대
世尊入滅後(세존입멸후) 一千三百二十二年(일천삼백이십이년) 癸酉(계유)난 卽(즉) 高句麗(고구려)小獸林王(소수림왕)二年(이년)이라
東史綱要(동사강요)에 曰(왈) 新羅(신라)奈勿王(내물왕)十七年六月(십칠년육월)에 秦王(진왕) 符堅(부견)이 發使(발사)하야 浮屠(부도)順道(순도)와 佛像(불상)佛經(불경)을 送(송)하거날 君臣(군신)이 會遇禮(회우례)로 省門(성문[接賓處])에 奉迎(봉영)하야 投誠敬信(투성경신)하고 遣使囘謝(견사회사)라 하니 此是(차시) 靑邱佛敎(청구불교)의 基點(기점)이라
翌年甲戌(익년갑술)에 阿度和尙(아도화상)이 自晉還(자진환)이여날 省門(성문)伊佛蘭(이불난) 兩寺(량사)를 剏(창)하고 順道(순도)阿度(아도)를 住(주)케 한지라
雖然(수연)이나 朝鮮佛敎(조선불교)의 流入(유입)은 已久(이구)하니 余嘗觀(여상관) 夫銕翁(부철옹[銕牛翁?])의 雲林筆記則(운림필기즉) 箕朝(기조) 貞敬王闕時(정경왕[箕朝鮮第十七王]시)난 印度(인도)阿育王(아육왕)八年(팔년)이오 周(주)厲王共和十三年(려왕공화십삼년)이라 印度(인도)의 曼殊大師(만수대사)가 遠觀(원관) 東土(동토)에 有不彰大乘之地(유불창대승지지)라 身着金襴衣(신착금난의)하고 手擎金佛(수경금불)하며 跨金毛獅子(과금모사자)하고 放大光(방대광)하야 從空以致(종공이치)하니 乃是(내시) 朝鮮南度武平之西(조선남도무평지서[今之湖南順天縣曹溪山])라 周相山氣(주상산기)하고 誅茅爲蘭若(주모위난야)하야 妥金像於壇曰(타금상어단왈) 未及五百世(미급오백세)에 邪外刼火(사외겁화)가 焚熬東方(분오동방)하리니 其時(기시) 大乘和識(대승화식)이 從此輩出(종차배출)하야 慈雲惠雨(자운혜우)가 熱惱(열뇌)를 淸凉(청량)케 하리라 預言(예언)하고 以淸凉(이청량)으로 名其山(명기산)하고 以毘盧(이비노)로 名其練若(명기련야)하엿시니[擎來金佛(경래금불)乃毗盧遮那之像(내비로자나지상)今其練若尙在(금기령야상재)] 此(차)난 朝鮮之佛像伽藍(조선지불상가람)이 實先於支那也(실선어지나야)요
鷄林古記(계림고기)에 曰(왈) 法興王(법흥왕) 十六年(십육년)은 梁武帝(양무제) 大通二年(대통이년)이라 高句麗(고구려) 沙門(사문) 阿度(아도)가 自一善郡來(자일선군래)하야 毘盧金像(비로금상)에게 敬禮(경례)하고 大師(대사)의 聖蹟(성적)을 欽歎(흠탄)하야 焚香虔禱(분향건도)러니 夜夢(야몽)에 曼殊大師(만수대사)가 其頂(기정)을 摩(마)하며 曰(왈) “爾膺夙願(니응숙원)하야 以至今日(이지금일)하니 爾爲此地(니위차지)에 開山鼻祖(개산비조)라”하고 紺色屈絢(감색굴현) 一領(일령)[卽袈裟(즉가사)]과 貝葉經(패엽경) 一函(일함)으로 貤之(이지)여날 阿度(아도) 欠伸而覺(흠신이각)하니 屈眴(굴현)貝經(패경)이 完在石上(완재석상)이라 旣蒙聖記(기몽성기)하고 不勝慶喜(불승경희)하야 告於羅王(고어나왕)하야 以朝家財力(이조가재력)으로 遂剏伽藍(수창가람)하고 額曰(액왈) 淸凉山海川寺(청량산해천사)라 하니 是實(시실) 東土佛法之總括靈府(동토불법지총괄령부)라 하고
三國遺事(삼국유사)에 曰(왈) 新羅月城東龍宮南(신라월성동룡궁남)에 有(유) 迦葉佛晏坐席(가섭불안좌석)하니 其地(기지)난 前佛時(전불시)에 伽藍遺墟(가람유허)라 今其皇龍寺址(금기황룡사지)라 하니 事係前剏(사계전창)이요
高麗(고려) 法喜居士(법희거사) 閔漬所撰(민지소찬)에 曰(왈) 釋迦滅後(석가멸후)에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이 金鑄五十三尊像(금주오십삼존상)하고 又鑄一鍾(우주일종)하야 安佛像于鍾內(안불상우종내)하고 將泛海(장범해)에 祝曰(축왈) “有緣國土(유연국토)로 徃(왕)하면 余亦隨徃(여역수왕)하야 說法度生(설법도생)하리라”
其鍾(기종)이 泛海(범해)하야 多歷國土(다역국토)하고 金剛山東安昌縣海口(금강산동안창현해구)에 來泊(내박)하니 時則(시즉) 新羅第二主南海王元年(신라제이주남해왕원년)이요 漢(한)平帝元始四年甲子(평제원시사년갑자)이오 西曆紀元后四年(서력기원후사년)이라
縣宰(현재) 盧偆(노준)이 奏於王(주어왕)하야 是年(시년)에 楡岾寺(유점사)를 建(건)하고 奉安佛像(봉안불상)이라 하고
東史節要(동사절요)에 曰(왈) 新羅時(신라시)에 五十三佛(오십삼불)이 自月支(자월지)로 乘銕鍾泛海來(승철종범해래)하야 迫于金剛山洞門外大池(박우금강산동문외대지)여날 有人(유인)이 池上(지상) 楡樹枝(유수지)에 掛鐘故(괘종고)로 曰(왈) “楡岾(유점)”이라 하니
此(차)난 佛滅後(불멸후) 九百五十三年(구백오십삼년)이라 漢(한) 明帝永平十一年戊辰(명제영평십일년무진)으로 比(비)하면 六十五年(육십오년)의 差(차)가 有(유)하니 祗園精舍(지원정사) 外(외)에난 伽藍奉像(가람봉상)이 我朝鮮(아조선)보다 先(선)한 者(자)난 世界(세계)에 無(무)하도다
三國史(삼국사)에 曰(왈) 新羅(신라)訥祗王時(눌지왕시)[劉裕(유유)宋(송)時(시)]에 沙門(사문) 墨胡子(묵호자) 自高麗(자고려)로 至一善郡(지일선군)[今善山(금선산)]하니 郡人(군인)毛禮(모례)作窟室隱之(작굴실은지)라
適其時(적기시)에 梁(양)이 遣使賜香(견사사향)이여날 群臣(군신)이 皆不知所用(부지소용)하되 墨胡子曰(묵호자왈) “差(차)난 達誠於三寶(달성어삼보)라”하고 王女(왕녀)의 病(병)을 爲(위)하야 焚香表誓(분향표서)하니 病尋愈(병심유)라 王(왕)이 厚餽(후궤)하엿고
新羅(신라) 奈勿王二十九年(내물왕이십구년)은 百濟(백제) 枕流王元年(침류왕원년)이니 胡僧(호승) 摩羅難陀(마라난타)가 自晉(자진)으로 百濟(백제)에 至(지)하매 王(왕)이 郊迎敬奉(교영경봉)하엿고
翌年春(익년춘)에 百濟漢山(백제한산)에 剏寺(창사)하니 差(차)난 百濟佛法(백제불법)에 始基(시기)오
高句麗(고구려) 廣開土王二年(광개토왕이년)은 新羅(신라) 奈勿王三十七年(내물왕삼십칠년)이니 平壤城(평양성)에 九寺(구사)를 剏(창)하야 佛法(불법)을 尙(상)하엿고
新荷(신라) 法興王十五年(법흥왕십오년)에 王(왕)이 欲興佛敎(욕흥불교)하야 群臣(군신)을 會議(회의)하니 大臣(대신) 恭謁(공알)等(등)이 極言不可(극언불가)하되 獨內舍人異次頓(독내사인이차돈)[一云朴厭髑(일운박염촉)]이 密奏曰(밀주왈) “請斬臣頭(청참신두)하야 以定群議(이정군의)하쇼셔 大聖之敎(대성지교)난 天神所奉(천신소봉)이니 佛若有靈(불약유령)이면 臣死之日(신사지일)에 當有異事(당유이사)라” 하더니 及斬(급참)에 血如白乳(혈여백유)하야 涌出十丈(용출십장)하고 日黑地震(일흑지진)하니 衆畏怪之(중외괴지)하야 不復毁佛(불복훼불)이라
後十年(후십년)[梁武帝大同十年(양무제대동십년)]에 興輪寺9흥륜사)를 剏(창)하고 出家僧尼(출가승니)를 許(허)하다
後五年(후오년)에 梁(양)이 遣使造佛舍利(조불사리)여날 王(왕)이 奉迎于興輪寺(봉영우흥륜사)하시고 異次頓(이차돈)을 爲(위)하야 法楸寺(법추사)를 建(건)하니 佛法(불법)이 大興(대흥)이라 王亦出家(왕역출가)하야 比丘(비구)가 됨으로 名(명)을 法雲(법운)이라 하고 王妣(왕비)도 出家爲尼(출가위니)하니 自是(자시)로 高僧碩德(고승석덕)이 支那(지나)와 印度(인도)에 進學(진학)하고 印度胡僧(인도호승)도 內化(내화)하난데
眞興王十四年(진흥왕십사년)에 黃龍(황룡)이 月城東(월성동)에 現(현)하거날 王(왕)이 黃龍寺(황룡사)를 建(건)하고 四天王寺(사천왕사)의 官號(관호)를 設(설)하니 衿荷臣一人(금하신일인) 上堂一人(상당일인) 赤位一人(적위일인) 靑位一人(청위일인)이 有(유)하더라
景德王十二年(경덕왕십이년)에 皇龍寺鍾(황룡사종)을 鑄(주)하니 重(중)이 四十九萬七千五百八十一斤(사십구만칠천오백팔십일근)이오 十三年(십삼년)에 芬皇寺藥師銅像(분황사양사동상)을 成(성)하니 重(중)이 三十萬七千六百斤(삼십만칠천육백근)이라
元聖王(원성왕)은 高僧(고승) 緣會[金?](연회)로 國師(국사)를 삼앗스며
哀莊王(애장왕)은 伽倻山(가야산)에 海印寺(해인사)를 剏(창)하며 道詵(도선)玉龍子(옥룡자)로 國師(국사)를 삼앗고
女聖王(여성왕)은 眞鑑(진감)으로 國師(국사)를 삼고
憲康王(헌강왕)은 智證(지증)으로 國師(국사)를 삼고
眞聖女主(진성여주)난 皇龍寺(황룡사)에 百座講(백좌강)을 設(설)하엿시니 此(차)난 新羅佛敎界(신라불교계)의 發展(발전)함이오
高麗太祖時(고려태조시)에 至(지)하야난 大興佛法(대흥불법)함으로 天授三年(천수삼년)에 十大寺(십대사)를 都城(도성)에 剏立(창립)하고 其後(기후)에 大興寺(대흥사)와 廣明寺(광명사)와 日月寺(일월사)를 次第(차제)로 建(건)하며 五百羅漢(오백나한)의 畵(화)를 嵩山(숭산 )에 奉安(봉안)하고 皇龍寺(황룡사)에 百座說講(백좌설강)을 設(설)하며 三萬僧徒(삼만승도)를 飯(반)하다 沙門(사문) 洪慶(홍경) 等(등)이 入唐(입당)하야 大藏經(대장경)을 載來(재래)여날 太祖親迎(태조친영)하엿시며 九層塔(구층탑)을 西京(서경)에 建(건)하고 天竺(천축) 三藏法師(삼장법사)를 親迎(친영)하야 龜山寺(구산사)에 寘(치)하고 燃燈八關會(연등팔관회)를 設(설)하얏고[八關은 天靈五岳名山大川龍神을 事함]
成宗七年(성종칠년)에 浮屠法(부도법)을 依(의)하야 正五九月(정오구월)을 三長月(삼장월)이라 하야 屠殺(도살)을 禁(금)하엿고 宋朝(송조)에셔 大藏經(대장경)을 送(송)하거날 王(왕)이 內庭(내정)에 迎入(영입)하야 使僧開讀(사승개독)하고 沙門(사문) 三十餘人(삼십여인)을 宋(송)에 遣(견)하야 杭州(항주)에 永明寺(영명사) 智覺禪師(지각선사)에게 受學歸來(수학귀래)함으로 朝鮮(조선)에 禪宗(선종)이 始生(시생)하엿스며
顯宗元年(현종원년)에 燃燈八關會(연등팔관회)를 復行(복행)하고 百官朝賀(백관조하)를 受(수)하엿시며 其後(기후)에 開國寺塔(개국사탑)을 重修(중수)하야 舍利(사리)를 安(안)하며 戒壇(계단)을 設(설)하야 僧(승) 三千二百人(삼천이백인)을 度(도)하고 五月(오월)에 一百獅座(일백사좌)를 內庭(내정)에 設(설)하야 仁王經(인왕경)을 講(강)하니 歲之常例(세지상례)를 作(작)하고 安西道(안서도) 屯田(둔전) 一千二百四十結(일천이백사십결)을 玄化寺(현화사)에 施納(시납)하엿스며 尙書(상서) 李可道(이가도)로 慶州高仙寺(경주고선사) 金羅袈裟(금라가사)와 佛之頂骨(불지정골)과 林昌寺(림창사)의 佛牙(불아)를 求(구)하야 內殿(내전)에 寘(치)하엿스며 二十二年九月(이십이년구월)에 毬庭(구정)에셔 飯僧三萬(반승삼만)하엿더라
靖宗二年(정종이년)에 下制(하제)하야 四子(사자)가 有(유)한 者(자)난 一子(일자)를 出家(출가)케 히고 戒壇(계단)에 所業經律(소업경률)을 試(시)하엿고 其後(기후) 十年(십년)에 王(왕)이 菩薩戒(보살계)를 受(수)하고 僧錄(승록)에 奏(주)를 依(의)하야 每節日(매절일)에난 外帝釋院(외제석원)에셔 七日間(칠일간)에 祈福道場(기복도장)을 設(설)하고 百官(백관)과 兩京四都護八牧(양경사도호팔목)은 各各(각각) 所在佛寺(소재불사)에셔 祈福(기복)케 하다
文宗元年(문종원년)에 八關齊(팔관제) 百座講(백좌강)을 內庭(내정)에 設(설)하야 國規(국규)를 作(작)하엿고 球庭(구정)에셔 僧徒(승도) 三萬(삼만)을 飯(반)하며 王(왕)이 菩薩戒(보살게)를 受(수)하니 自後(자후)로 歷代帝王(역대제왕)이 菩薩戒(보살계)를 皆受(개수)한지라 海麟(해린)으로 國師(국사)를 삼엇시며 契丹(거란)이 大藏經(대장경)응 送(송)하거날 王(왕)이 法駕(법가)로 出郊迎之(출교영지)하엿고 十九年(십구년)에 文宗(문종)의 第四子(제사자) 大覺國師(대각국사)가 出家(출가)하다 名(명)은 煦(후)오 字(자)난 義天(의천)이니 博通伍敎(박통오교)함으로 號(호)를 祐世僧通(우세승통)이라 하니 諸王子(제왕자)와 貴門巨族(귀문거족)이 爭慕效之(쟁모효지)라 其翌年(기익년)에 興王寺(흥왕사)를 成(성)하니 凡(범) 二千八百間(이천팔백간)이오 十二年(십이년)만에 竣切(준절)한지라 諸方緇類(제방치류)가 坌集無算(분집무산)이오 戒行僧(계행승) 一千(일천)으로 常住(상주)케 히고 燃燈會(연등회)를 設(설)할새 五州二縣(오주이현)에 勅命(칙명)하야 自殿庭(자전정)으로 寺門(사문)에 達(달)하도록 綵綳(채붕)을 結(결)하며 鱗次櫛比(인차즐비)하야 連亘相續(연긍상속)하고 輦路左右(연로좌우)에 燈山火樹(등산화수)가 光如白晝(광여백주)라 王(왕)이 鹵簿(노부)를 備(비)하고 百官(백관)을 率(솔)하야 施香納財(시향납재)하니 佛事之盛(불사지성)이 曠古未有(광고미유)라 越三年夏(월삼년하)에 王之第五子(왕의제오자) 窺(규)와 第十子(제십자) 璟(영)이 出家爲僧統(출가위승통)하엿고
宣宗二年(선종이년)에 百座道場(백좌도장)을 會慶殿(회경전)에 設(설)하고 三萬僧徒(삼만긍도)를 飯(반)하엿스며 王弟(왕제) 祐世僧通(우세승통)이 入宋(입송)하니 宋帝(송제)와 太后(태후)가 親(친)히 奉恩寺(봉은사)에 出迎(출영)하야 威儀(위의)가 前古無比(전고무비)라 及還(급환)에 興王寺(흥왕사)에 敎藏都監(교장도감)을 寘(치)하고 經書(경서)를 遼宋(요송)과 日本(일본)에셔 求來(구래)하니 四千餘卷(사천여권)에 達(달)한지라 天台宗(천태종)을 始創(시창)하고 越三年(월삼년)에 十三層黃金塔(십삼층황금탑)을 新鑄(신주)하며 會慶殿(회경전)에 仁王經(인왕경)을 設(설)하고 三萬僧徒(삼만승도)를 飯(반)한지라 高麗佛法(고려불법)이 極爲進興(극위진흥)하엿스니 至于未葉(지우미엽)하야 李牧隱(이목은) 姜淮伯(강회백) 鄭道傳(정도전) 金子粹(김자수) 鄭圃隱(정포은) 等(등)이 懇懇章奏(간간장주)하야 力排佛敎(력배불교)하되 不受蹂躪(불수유린)하고 太古普愚和尙(태고보우화상)은 北遊中原(북유중원)하야 湖州(호주) 霞霧山石室(하무산석실)에셔 淸珙禪師(청공선사)에게 臨濟宗正傳(임제종정전)을 承(승)하야 信物(신물)을 携歸(휴귀)하고 指空(지공)懶翁(나옹)도 王師(왕사)의 位(위)에 居(거)하더니
朝鮮李朝(조선이조)에 至(지)하야난 太祖(태조)께셔 前朝高麗(전조고려)가 佛敎(불교)의 弊害(폐해)됨을 鑑戒(감계)하야 十二宗(십이종)을 盡罷(진파)하고 禪敎二宗(선교이종)만 寘(치)하며 寺院(사원)의 官田(관전)은 沒收(몰수)하엿고
太宗(태종)은 人民(인민)의 僧尼(승니)됨을 嚴禁(엄금)하고
成宗(성종)은 仁壽(인수) 慈壽(자수) 雨尼院(우니원)을 撤廢(철폐)하야 使宮人居住(사궁인거주)하고
中宗(중종)은 緇類中(치류중) 老衰者(노쇠자)난 城外(성외)에 放逐(방축)하고 年少者(연소자)난 還俗(환속)케 하니 登階禪師(등계선사)도 妻孥(처노)를 携(휴)하고 山中(산중)에 潜居(잠거)하다가 碧松禪師(벽송선사)의 心法(심법)을 傳(전)하엿스니 是時(시시)에 佛祖(불조) 慧命(혜명)은 泡沫風燈(포말풍등)갓치 明滅(명멸)하더니
浮休(부휴) 淸虛(청허) 二大師(이대사)가 出(출)하야 道法(도법)을 闡揚(천양)하고 淸虛門下(청허문하)에 松雲(송운) 騎虛(기허) 兄弟(형제)가 有(유)하며[壬辰別錄曰(임진별록왈) 西山大師休靜之弟子(서산대사휴정지제자) 曰四溟堂(왈사명당)이니 卽(즉) 松雲(송운)]
또한 靈圭法師(영규법사)가 出(출)하야 國事板蕩之時(국사판탕지시)에 君命(군명)을 從(종)하며 勤王義師(근왕의사)를 募(모)하야 奇切偉烈(기체위열)이 有(유)하되 能(능)하 佛日(불일)을 挽回(만회)치 못하고 五百年來(오백년래)로 下風(하풍)에 居(거)하야 法侶(법려)의 寄處(기처)난 但是(단시) 深山窮谷(심산궁곡)이오 比丘(비구)의 知己(지기)난 哀猿孤鶴(애원고학) 뿐이라
碩德大賢(석덕대현)이 相繼而起(상계이기)하엿스나 國禁(국금)의 壓縛(압박)으로 道力(도력)이 人民界(인민계)에 一施(일시)치 못하고 烟霞山谷(연하산곡)에 水雲踪迹(수운종적)으로 自修自煉(자수자련)하니 道風(도풍)이 冷落(냉락)하고 法運(법운)의 蹇屯(건둔)함이 李朝時代(이조시대)에난 禁錮(금고)와 如(여)하엿더라
○今後倥侗之論(금후공동지론)이 佛敎(불교)의 歷史(역사)만 述(술)함이 아닌즉 日本佛化(일본불화)의 如何(여하)함은 姑舍(고사)하고 다만 半島(반도)에 止(지)한지라
新羅(신라)난 朴厭髑(박영촉)의 異蹟(이적)으로 謗門(방문)을 杜(두)하고 法興王(법흥왕)의 出家(출가)로 佛化(불화)가 漸進(점진)하야 大法鍾(대법종)과 巨銅像(거동상)을 鑄(주)하고 衿荷臣(금하신)과 赤淸位(적청위)의 官號(관호)를 設(설)하엿스며
高麗時代(고려시대)에난 太祖(태조)가 大興佛法(대흥불법)하야 十大寺(십대사)를 創(창)하며 八關會(팔관회)를 開(개)하고 五百羅漢(오백나한)을 奉(봉)하며 靖文二宗(정문이종)은 菩薩戒(보살계)를 守(수)하고 大僧徒(대승도)를 飯(반)함으로 法化(법화)가 蔚興(울흥)하며 沙門(사문)의 繁華(번화)함이 麗朝(려조)를 向(향)하야 第一指(제일지)를 屈(굴)할지라
雖然(수연)이나 百座(백좌)의 說經(설경)과 萬佛(만불)의 降福(강복)이 無靈(무령)에 歸(귀)하야 國運(국운)이 漸塞(점색)하고 妖僧(요승)의 弄權(농권)으로 醜聲(추성)이 聞外(문외)하고 政紀(정기)가 紊乱(문란)하야 松嶽山下(송악산하)에 麗魂(려혼)이 乖亡(괴망)하고 滿月臺上(만월대상)에 杜鵑(두견)이 啼血(제혈)하니 可勝歎哉(가승탄재)아
他宗敎(타종교)의 瑕疵(하자)를 吹覔(취멱)코쟈 함은 决非聖徒(결비성도)의 本義(본의)오 闢異斥邪(벽이척사)난 儒家(유가)의 茶飯(다반)이로되
今(금)에 石顚和尙(석전화상)이 康南海先生(강남해선생[康有爲])의 佛耶相同(불야상동)의 說(설)을 因(인)하야 基督敎(기독교)를 評(평)함으로 不能泯默(불능민묵)하야 敢陳蕘辭감진요사)하오니 實非素懷(실비소회)라
其言(기언)에 曰(왈) 佛耶敎(불야교)의 同點(동점)이 二十餘處(이십여처)인데[不暇盡記] 相反(상반)의 習(습)은 兵戈(병과)로 相視(상시)하니 譬如我園(비여아원)의 葚(심)을 竊食(절식)하고 其音(기음)을 難革(난혁)이라 하엿스니 誠是捧腹(성시봉복)이로다
宗敎哲學(종교철학)의 理(리)난 眞身(진신)을 尊敬(존경)하며 心性(심성)을 修養(수양)함으로 勸善懲惡(권선징악)의 訓(훈)과 棄惡行仁(기악행인)의 道(도)가 不謀而同(불모이동)하며 不扶而直(불부이직)하고 不言而行(불언이행)하야 相近相似者多(상근상사자다)하거날 何必佛園(하필불원)의 葚(심)을 取(취)한 後(후)에 道理(도리)를 成(성)하리오
吾敎(오교) 樂園(낙원)의 生命果實(생명과실)과 眞餠活水(진병활수)가 綽綽有餘(작작유여)하니 康氏(강씨)의 說(설)은 不待辨明而知(부대변명이지)할지라
且以世界物質(차이세계물질)로 論(논)컨대 輪舶(륜박)이 不通時(불통시)에난 海外諸國(해외제국)의 有無(유무)도 不知(부지)하엿스되 五洲各邦(오주각방)에 政治律禮(정치율례)와 舟車權衡(주차권형)과 兵家器機(병가기기)와 民生日用(민생일용)의 品(품)이 相似同樣者多(상사동양자다)함은 曷故(갈고)이뇨
人類(인류)의 慧竇(혜두)와 思想技能(사상기능)이 同一(동일)한 所以(소이)라 何必(하필) 宗敎(종교)의 理(리)만 然(연)하리오
雖然(수연)이나 康氏(강씨)의 論(논)은 但知其同(단지기동)하고 不知其異(부지기이)하니 亦一偏見(역일편견)이라 하겟고
又曰(우왈) 耶穌基督(예수기독)의 普渡衆生(보도중생)이 若是誠勤(약시성근)이여날 十字架(십자가)의 流血(유혈)은 曷故(갈고)를 因(인)함이뇨 是時(시시) 羅馬管下(로마관하)에 在(재)커날 耶穌(예수)가 特異(특이)한 神國(신국)을 立(립)하야 覉絆(기반)을 脫(탈)코쟈 하난 所以(소이)라 하고 其敎要義(기교요의)난 若能悔改(약능회개)면 卽天國(즉천국)이라 하엿스니
此(차)난 徒知其一(도지기일)이오 未知其二(미지기이)라 救主(구주)의 釘架(정가)하심은 萬民(만민)의 罪惡(죄악)을 代贖(대속)함이오 道成肉身(도성육신)은 萬世前(만세전)부터 上主(상주)께셔 預定(예정)하신 經綸(경륜)이오 釘架後復活(정가후부활)하심도 上主(상주)의 能力(능력)이시라 院門(원문)에 不入(불입)하고난 房內博物(방내박물)의 金玉重品(금옥중품)을 貫通稔悉者(관통임실자) 無(무)하고 大宴(대연)에 珍羞(진수)를 不食(불식)하고난 熊掌魚翅(웅장어시)의 眞味(진미)를 能辨者(능변자) 少(소)하나니
局外(국외)에 在(재)하야 局內(국내)의 事(사)를 知(지)힌다 함은 夏虫(하충)의 語氷(어빙)과 山蛄(산고)의 春秋(춘추)와 同(동)한지라 不順贅言(불순췌언)이오
吾儕(오제)가 法化(법화)를 論(논)함이 石顚氏(석전씨[石顚和尙])의 吾敎(오교)를 見(견)함과 無異(무이)하나 其要(기요)를 擧(거)컨대 阿褥多羅三藐三菩提心(아욕다라삼막삼보리심)을 發(발)하야 涅槃滅度(열반멸도)에 入(입)케 함이라
世尊說偈(세존설게)에 曰(왈) 法本法無法(법본법무법) 無法法亦無(무법법역무) 今付無法時(금부무법시) 法亦何曾法(법역하증법)고 凡所有相(범소유상)이 皆是虛妄(개시허망)이니 我人衆生壽者(아인중생수자)에 着(착)하면 卽非菩薩(즉비보살)이오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하면 卽見如來(즉견여래)라 한지라 然則佛說(연즉불설)은 人我山中(인아산중)에 煩惱鑛(번뇌광)을 破(파)하고 善男善女(선남선녀)가 無住相布施(무주상포시)로 非法非非法(비법비비법)에 入(입)하야 悟道(오도)를 得(득)케 함이오
基督敎(기독교)난 救主(구주)의 代贖(대속)하신 恩惠(은혜)를 蒙(몽)하며 聖神(성신)의 感化(감화)로 重生(중생)을 得(득)하고 復活眞理(부활진리)를 信仰(신앙)함으로 救靈(구령)하난 것이니 엇지 佛敎(불교)와 同(동)하다 하나뇨
康氏(강씨)의 所見(소견)은 但只(단지) 形式上規例(형식상규례)를 指(지)함이니 皮膚論(피부론)에 不過(불과)하도다
雲捿大師(明時朝人) 有言曰(유언왈) 未達其境(미달기경)에 不敢妄談(불감망담)이라 하니 佛法(불법)의 三歸四諦(삼귀사체)와 五濁六塵(오탁육진)과 三界四生(삼계사생)과 六識八敎(육식팔교)와 八萬四千法門(팔만사천법문)의 深遠微妙(심원미묘)함은 不侫(불녕)의 妄談(망담)할 바 아니로되
今以數事(금이수사)로 佛(불)耶(야) 兩敎(양교)의 如何(여하)함을 分辨(분변)하노니 亦是管窺(역시관규)라 하나이다
○一曰(일왈) 上主(상주)의 能力(능력)과 信仰(신앙)의 自由(자유)이니
佛敎(불교)난 國君(국군)의 勢力(세력)과 大家(대가)의 顧護(고호)를 依賴(의뢰)하야 寺宇(사우)를 創(창)하며 僧徒(승도)가 增加(증가)하다가 一朝(일조)에 國王(국왕)의 壓制(압제)를 當(당)하면 山崩瓦解(산붕와해)하고 水流雲散(수류운산)하야 形影(형영)도 無(무)하나니 唐(당)武宗時(무종시)에 佛舍(불사)를 毁(훼)하며 僧尼(승니)를 退俗(퇴속)케 하매 二十六萬(이십육만)의 比丘(비구)가 一時(일시)에 破戒(파계)하야 一人(일인)도 爲佛致命者(위불치명자) 無(무)하고 朝鮮太祖時(조선태조시)에 十二宗(십이종)을 盡破(진파)하며 緇類(치류)를 放逐(방축)하되 抵死守戒者無(저사수계자무)하엿거니와
基督敎徒(기독교도)난 羅馬皇利老時(로마황네로시)에 酷殺(혹살)을 當(당)하고 馬達加斯加(마다가스칼)의 迫害(박해)가 甚(심)하야 屠戮(도륙)이 極慘(극참)하되 爲主捐命者(위주연명자) 自願雲集(자원운집)하며 讚美聲(찬미성)이 不絶(부절)하고 以善敵惡(이선적악)하며 以柔勝强(이유승강)하야 含笑就刑(함소취형)하니 如此(여차)한 信仰(신앙)의 能力(능력)으로 畢竟(필경)은 羅馬全國(로마전국)을 歸化(귀화)하야 基督敎勢力下(기독교세력하)에 在(재)케 하엿스니 此(차)난 天生自由(천생자유)의 樂(낙)을 上主(상주)께 受(수)함이라 以若法界(이약법계)의 緇徒(치도)로난 萬不可比肩(만불가비견)이오
○二曰(이왈) 聖神(성신)의 黙佑(묵우)와 傳道(전도)의 熱性(열성)이니
太平洋群島(태평양군도)의 爲道受難(위도수난)함을 見(견)컨대 文身漆齒(문신칠치)하난 苗人(묘인)들이 西洋宣敎師(서양선교사)를 炮食(포식)하며 曰(왈) 白人(백인)이 有味(유미)라 하되 繼徃(계왕)하난 牧師(목사)들이 愛主愛人(애주애인)의 心(심)으로 同胞(동포)를 敎育(교육)하고 視死如歸(시사여귀)하며 熱心播道(열심파도)하야 仇讐(구수)까지 愛(애)함으로 諸島蠻夷(제도만이)가 漸歸聖域(점귀성역)하야 今則(금즉) 人肉(인육)을 啖(담)하던 者(자) 贖罪(속죄)를 得(득)하고 偶像(우상)을 拜(배)하던 處(처)에 聖殿(성전)을 建(건)하엿스니
委靡恐劫(위미공겁)하난 沙門比丘(사문비구)로난 不可同年而語(불가동년이어)오 三日生産作業(삼일생산작업)과 窮救難(궁구난)이니
耶穌信徒(예수신도)난 治産(치산)에 勤侃(근간)하며 女子(여자)를 養育(양육)하고 學校(학교)를 說(설)하야 他邦(타방)의 人民(인민)까지 敎育(교육)하며 病院(병원)을 立(립)하야 死者(사자)를 救護(구호)하고 捐金樂施(연금낙시)하야 貧乏(빈핍)을 周恤(주휼)하며 稅役(세역)에 奔供(분공)하야 國民(국민) 된 義務(의무)를 守(수)하고 天理人事(천리인사)를 順從(순종)하거날
釋迦徒弟(석가도제)난 雲遊四海(운유사해)하야 家産(가산)을 不治(불치)하며 沿門托鉢(연문탁발)하야 結緣(결연)을 空談(공담)하고 努力辛苦(노력신고)한 他人(타인)의 粮(량)을 不勞得取(불노득취)하니 遊食者(유식자)의 責(책)이 不無(불무)하고
一男一女(일남일녀)난 上主(상주)의 命配(명배)하심이오 夫婦(부부)의 道(도)난 人類(인류)의 大倫(대윤)이여날 妻孥(처노)를 不取(불취)하야 獨處絶嗣(독처절사)로 敎例(교례)의 本(본)을 作(작)하며 深山窮谷(심산궁곡)에 寺刹(사찰)을 建(건)하야 塵世(진세)를 遠別(원별)하니 國民(국민)의 義務(의무)가 何(하)에 在(재)하뇨 念佛(염불)에 無心(무심)하고 齊飯(제반)에 專心者(전심자)난 他人(타인)의 檀越(단월)만 苦待(고대)하며 絲穀(사곡)의 責(책)이 無(무)하거날 奚暇(해가)에 他人貧乏(타인빈핍)을 救恤(구휼)하리오 此(차)난 佛耶(불야) 兩敎(양교)의 別(별)이 天壤(천양)과 如(여)한지라
千古大聖(천고대성)의 行蹟(행적)을 不敢妄議(불감망의)로되 疑惑(의혹)이 不無(불무)하도다
世尊(세존)이 出家後(출가후) 十二年(십이년)에 見性悟道(견성오도)하고 佛陀(불타)가 되야 父王(부왕)을 歸覲(귀근)할새 耶輸陀羅姬(야수타라희)가 削髮爲尼(삭발위니)여늘 城外林中(성외림중)에셔 夜(야)를 經(경)하엿스며 父王家(부왕가)에 食料(식료)가 多(다)하거날 朝出乞飯(조출걸반)하엿스니 是何愛情(시하애정)이며 此何孝心乎(차하효심호)아 妻室(처실)에 寢(침)하며 父床(부상)에 飯(반)하면 無乃爲罪而然乎(무내위죄이연호)아
萬一(만일) 夫婦同室(부부동실)이 爲罪(위죄)면 因果(인과)의 緣(연)은 何(하)에 在(재)하며 父子同餐(부자동찬)이 破壞道理(파괴도리)면 决非聖道(결비성도)라 若是固執(약시고집)이 當時人(당시인)을 雖爲驚歎(수위경탄)이나 後世(후세)의 釣名(조명)을 雖免(수면)이니 不可思議(불가사의)로다
法說(법설)에 曰(왈) 人繫妻子舍宅(인계처자사택)이 甚於牢獄(심어뇌옥)하니 牢獄(뇌옥)은 猶有赦釋之期(유유사석지기)어니와 妻子(처자)난 無散離之心(무산리지심)이라 하니
妻獄(처옥)子鎖(자쇄)之說(지설)이 從此超焉(종차초언)하야 後世(후세) 白足(백족)이 釋迦(석가)를 本(본)하며 畜妻治産(축처치산)은 修道(수도)에 妨害(방해)라 하고 又曰(우왈) 哀哉(애재)라 此身(차신)이여 九空常流(구공상류)로다 革囊盛糞(혁낭성분)이오 膿血之醜(농혈지추)니 無貪惜之(무탐석지)어다 何況百年(하황백년)을 終養(종양)이나 一瞬背恩(일순배은)이라 하니
此(차)난 無我無相之說(무아무상지설)이 起(기)함이라 父母遺軆(부모유체)가 何其賤也(하기천야)오 若使無數家生(약사무수가생)으로 盡歸佛界(진귀불계)하야 不農不商(불농불상)하며 不娶不産(불취불산)하고 視身如蓰시신여사)하면 人種(인종)은 自滅(자멸)하고 倫常(윤상)이 斁絶(두절)하리니 何處(하처)에 日本(일본)셔 善男善女(선남선녀)를 更得(갱득)하리오
故(고)로 親鸞(신란)은 眞宗(진종)을 改(개)하고 西藏(서장) 蓮華子(연화자)난 紅敎(홍교)를 變(변)하엿시니 如此高見(여차고견)은 法界(법계)의 不遠(불원)함을 喚起(환기)함이라 하나이다